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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251

'오늘'을 살아가기 '오늘'을 살아가기 나의 의식은 결국 '기억'에 근거해 있게 마련이다. 모든 기억을 남김없이 지울 수 있다면, 의식도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그건 매순간 살아가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현재 일어나는 일과 기억은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두 항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지금, 여기를 살지 않고 '기억'에 따라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해석하고는 곧장 기억장 안에 저장해 버린다. 지금, 여기, 오늘이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차라리 지금 여기의 사건을 토대로 기억를 재구성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라는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건 바로 그 매커니즘 속에서다. 오늘 겪은 그 일을 통해 거듭나는 매커니즘 말이다. 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 2020. 3. 9.
세네카, 현인賢人은 운명이 아니라, 실수에서 벗어나 있다 세네카, 현인賢人은 운명이 아니라, 실수에서 벗어나 있다 매일매일 '당연한' 이야기 하는 것을 일삼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사는 게 원래 '당연'한 일들의 연속인 것을. 심지어 '당연한 것'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나뉘기까지 하니까, 나처럼 '당연한 것'을 대단히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매일 당연한 것들에 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현자', 어질 현賢, 사람 자者, '어진 이', '현명한 사람' 정도의 뜻이다. 어쩐지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나 법칙들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다시 말해 자유를 제약하는 '운명'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럴수가 없다. 쉬운 말로 그도 '인간'인데, 어찌 그렇겠는가. 다만, 그는 실수에서 벗어나 있다. 아니, 세.. 2020. 2. 26.
김연수, 『소설가의 일』 - 문장의 일 김연수, 『소설가의 일』 - 문장의 일 『소설가의 일』을 두번째 읽고 있다. 그냥 양量으로만 따져보자면, 서너번째일수도 있다. 여기저기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기도 했으니까. 그만큼 좋아한다는 이야기인데, 어째서 그런가 생각해 보면, 문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장이 전부다"라는 맥락의 말이 있다. 그것도 이 책에서 본 말인데, 정말 그렇다. 흔히 생각하고, 그걸 정리한 내용을 글로 쓴다고 믿지만, 그건 사실 환상에 가깝다. '쓰기'가 먼저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내용'은 '나'가 '생각' 하는 게 아니다. 내용은 '쓰기'가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그걸 새로운 문장으로 만드는 일 밖에 없다. 특별하다할 것이 없는 '내용'임에도, 새로운 '문장'으로 말하면 매력적으로 변한다. 그러니.. 2020. 2. 19.
우치다 타츠루 외,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 평정심과 더불어 필요한 것 우치다 타츠루 외,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 평정심과 더불어 필요한 것 나는 솔직히 저기서 호명된 '국민'이라는 주체가 조금 불편하다. 저마다 조금씩 달라서 같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호명하는 방식도 그렇고, 성공과 실패를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언설도 그렇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국민'이 되기를 (그게 어느 나라의 국민이든) 바란 적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을 몹시 좋아해서 한국에 출간된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사실 그런 것들은 표면적인 이유고, 좀 더 생각해 보면 내가 '국민'의 다양한 층위들 중에 비교적 약한 쪽에 속한다는 점이 심층의 이유가 아닌가 싶다. 만약에 xxx회사가 있고, 내가 거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 2020.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