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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연암을만나다] 출세하지 않아도

by 북드라망 2020. 10. 22.

출세하지 않아도



‘연암’하면 우정, 그중에서도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백탑청연’이다. ‘백탑청연’이라 불리는 연암을 비롯한 이덕무, 이서구, 서상수, 유금, 유득공은 모두 백탑 근처(지금의 서울 종로)에 살면서 매일같이 글 짓고, 읽고, 술 마시고, 풍류를 나눴다. 여기에 박제가, 홍대용, 백동수까지 늘 왕래했으니 상당 규모의 우정 네트워크다.




거문고를 뜯다가도 시를 짓고, 갓 하나를 놓고서도 줄줄이 문장을 짓는 이 문인들 사이에 무사가 하나 있었으니, 백동수(이하 영숙)다. 영숙은 ‘조선 최고 무사’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재능과 실력이 뛰어났음에도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당시 급제자는 많고 벼슬자리는 적었다. 서자 출신은 등용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적절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서른하나의 창창한 청년이었던 영숙은 먹고살 방도가 요원했고,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을 떠나 강원도의 기린협으로 이사하게 된다.


서울의 선비들은 이렇게 벼슬을 얻지 못하고 궁핍해지면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 위해 종종 온 가족과 함께 산골로 들어갔다. 어떻게 보면 선비가 농사를 짓다니 궁색한 모양이고, 친구들을 떠나 연고 없는 지방으로 들어가다니 슬픈 모양이고, 출셋길이 더 멀어지니 아까운 모양이다. 그렇지만 연암은 떠나는 영숙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이제 영숙이 기린협에 살겠다며 송아지를 등에 지고 들어가 그걸 키워 밭을 갈 예정이고 된장도 없어 아가위나 담가서 장을 만들어 먹겠다고 한다. 그 험색하고 궁벽함이 연암협에 비길 때 어찌 똑같이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 자신은 지금 갈림길에서 방황하면서 거취를 선뜻 정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하물며 영숙의 떠남을 말릴 수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그의 뜻을 장하게 여길망정 그의 궁함을 슬피 여기지 않는 바이다.


박지원, 『연암집』(상),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백영숙에게 증정한 서문」, 돌베개, 32쪽


2년 전 연암은 영숙과 함께 평양 등등을 여행하다가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 간 적이 있었다. 산이 깊어서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고, 갈대숲만 우거져 있는 곳이었다. 막 과거시험을 완전히 접어버린 그는 장차 그곳에 은거할 생각으로 영숙과 함께 집터를 살핀다. 그때 영숙은 연암에게 “인생이 백 년도 못 되는데, 어찌 답답하게 나무와 돌 사이에 거처하면서 조 농사나 짓고 꿩, 토끼나 사냥한단 말인가?”하고 물었었다.


그랬던 영숙이 연암협보다 더 험한 땅으로 가서 밭을 갈아 농사를 지을 계획을 세우고, 아가위를 담가 먹을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백동수의 재능을 아까워하고, 그의 곤궁함을 안타깝게 여겼겠지만, 연암은 그렇지 않았다. 궁벽한 곳에도,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삶이 있다. 그것은 더 어렵다고 할 수는 있지만 슬픈 것은 아니다. 벼슬길을 접고 똑같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연암 자신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모든 일상은 어떻게 보면 조 농사‘나’ 짓고, 토끼‘나’ 사냥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고 책이‘나’ 읽는…) 하지만 그것을 기꺼이 행할 수 있고, 무엇이 되지 않아도, 번듯한 것을 성취하지 않아도 ‘슬프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곤궁하지 않은 삶일 것이다.


글_이윤하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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