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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연암을 만나다]벗에게서 온 편지

by 북드라망 2020. 9. 24.

벗에게서 온 편지



홍대용은 이역만리에 있는 천애의 지기(知己)들하고만 절절한 편지를 주고받은 게 아니었나 보다.(자세한 내용은 ‘지기와의 이별’편에!) 조선 안에서도 홍대용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얼어붙은 비탈과 눈 쌓인 골짜기, 연암골에서 지내고 계시는 연암이다. 아무리 멀어도 조선이라 청나라보다는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서로 오고가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암은 홍국영의 화를 피해 개성 연암골로 들어가고, 홍대용은 전라도 태인 군수로 지내서, 3년이 되도록 서로 만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홍대용에게 얼굴도 어찌 변했을지 무척 궁금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미루어 짐작한다며, 편지로 특이한 안부를 묻는다. ‘형은 스스로 점검하기에 정력과 기개가 어떠하신지요?’




당시 연암의 나이는 마흔, 홍대용은 연암보다 여섯 살 위이니 건강 안부라도 묻기라도 한걸까? 아니다. 이 질문은 연암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한다. 연암은 예부터 객기가 병통이었는데, 이 객기가 근본적으로 다스린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암이 문제라 여기는 객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객기를 이겨낼 수단과 무기는 군자의 아홉가지 자태인 ‘구용(발은 무겁고 손은 공손하며, 눈은 단정하고 입은 다물며, 목소리는 조용하고 머리는 곧게 세우며, 기색은 엄숙하고 선 자세는 덕스러우며, 낯빛은 씩씩하여야 한다.)’과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사물’이라는 점, 그리고 객기와 정기는 음과 양처럼 객기가 조금만 없어져도 정기가 저절로 선다는 점, 그리고 정기는 하늘과 땅을 봄에 스스로 부끄럼이 없는 경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객기는 예에 어긋나고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싶다.


이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객기이고 저절로 없어졌다니 좋아할 일이 아닌가 싶은데, 연암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객기가 뚜렷하게 보일 때는 고칠 게 눈에 훤히 보이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고쳐야겠다’라고 문제를 해결할 의욕이라도 동시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닳고 닳아버린 탓에 감정이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고, 담담하게 맞부닥치기만 하고’, 객기든 정기든 도무지 어떤 힘도 안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정기를 함양하며, 어떻게 집의하며, 어떻게 스승으로 삼고 본받으며, 어떻게 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갈 길을 잃은 연암. 우정과 배움의 달인인 연암이 이런 고민을 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그런 연암에게 홍대용의 편지는 연암의 상태를 다시 되돌아보게 해준다.


지금 격려해 주신 별지를 받고 보니,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 땀이 얼굴을 뒤덮었으므로 잠시 이와 같이 늘어놓습니다. 아마도 반드시 이 편지를 보시고는 한 번 웃으며 “이는 필시 늙어 가고 곤궁함이 날로 심해진 것뿐일세. 만약 객기를 제거할 수 있다면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설 수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른하게 처지도록 만든 것이야 말로 객기일세.” 하실 테지요.


( 박지원, 『연암집』(중), 「홍덕보에게 답함1」, 돌베개, 162쪽)


연암은 홍대용의 편지를 읽고, 자신의 객기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할 의욕없다는 것도 객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객기를 제거한다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부끄럼없이 우뚝 서서 살아가도록 힘쓰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암은 다시 홍대용에게 묻는다. 형이 무슨 말을 할지 상상이 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형은 어떠신가요? 저도 형처럼 이 마음을 잘 다스려 객기를 제거해 우뚝 서고 싶습니다. 일깨워 주십시오.


글_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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