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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연암을만나다] 지기(知己)와의 이별

by 북드라망 2020. 9. 17.

지기(知己)와의 이별




“이 한 번 이별로 그만이구려! 저승에서 서로 만나도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를 맹세합시다.”

- 박지원,「홍덕보 묘지명」, 『연암집(상)』8, 돌배게, 342쪽


연암의 벗이었던 홍대용의 죽음을 기리는 묘지명에 나온 한 대목이다. 홍대용이 북경여행을 떠났던 시절, 중국친구들과 헤어지며 서로를 바라보며 했던 말.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까지 부끄럽게 살지 말자.


서로의 삶에 이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라! 찰나의 만남이, 살아갈 날들을 다짐하는 강렬한 순간이 되다니!!


서장관인 숙부 홍억洪檍을 따라간 북경. 홍대용은 그곳에서 천애의 지기(知己)들을 만난다. 과거를 보러 절강에서 올라온 엄성과 반정균, 뒤이어 도착한 육비, 그리고 홍대용. 이들을 유리창에서 만나 평소 익히던 유교경전으로 찐~한 우정을 나눈다. 의문이 생겼던 지점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한 수씩 시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이들 모두 잠시잠깐 북경에 머물렀다갈, 그런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들, 영혼이 통했는지, 헤어질 때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홍대용이 북경을 다녀와서 쓴 「을병연행록」을 보면, 반정균은 홍대용과 헤어질 때 수건을 적실정도로 운다. 엄성도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슬픔을 그치지 않았다. 헌데, 우리의 홍대용은 참 담담하다. 큼직한 덩치의 사내대장부 같다고나 할까? “이별을 당하여 눈물을 내는 것은 옛사람도 면치 못한 일이지만, 또한 중도(中道)가 있을 것입니다. 어찌 이같이 과히 슬퍼합니까?”하니 엄생이 말하기를, “우리는 성품이 가련한 사람이라 평생의 참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하였더니, 오늘날 모임은 떠날 때에 이르러 코가 시고 마음이 상함을 깨닫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 만일 다시 만날 기약이 있으면 또한 이같이 감읍(感泣)하는 데 이르지 않을 것이니, 이 이별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홍대용,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돌배게, 239~240쪽)


불과 며칠간의 인연으로 이별을 이렇게 슬퍼할 수 있다니. 한편으로 반정균의 마음이 좀 이해될 것 같았다. 지금처럼 카톡, 페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편시스템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연락을 취할 방법도 확실치 않았을 것이다. 함께 인생을 고민하는 친구가 생겼는데 이별이라니!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니! 이 아쉬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눈물로 답할 수밖에.


재밌는 건 이런 이별이 두세 번 등장한다.^^ 헤어지는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유리창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고. 아고. 민망스러워라. 헌데 이 친구들, 다시 만날 때도 엄~청 반가워한다. 허허;;


엄성은 이 만남이후 과거를 접고 내려갔다. 홍대용이 “군자가 세상에 나서거나 숨는 것은 시대에 따라야 하는 것”임을 살짝 깨우쳤더니 크게 깨닫고 내려갔다고 한다. 이정도로 강렬한 만남이었던 것이다.


과거를 접고 떠난 엄성은 2년 후 객사를 했다. 반정균이 조선에 있는 홍대용에게 편지로 부고를 전했다. 홍대용은 편지를 받고(시일이 한참 지난 후였겠다), 애사哀辭를 지어서 보냈는데, 그 편지가 엄성의 2주기 제삿날 도착했다고 한다. 이들은 저승에서 서로 만나 한평생 부끄럼 없이 살았음을 회고하였을까. 유리창에서처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까.


일상을 공유하고, 배움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삶에 개입했던, 친구가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공부터전을 떠난다고 영영 이별도 아니고, 홍대용과 중국선비들이 살았던 이 시기처럼 연락이 쉽지 않은 시절도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눈물이 나는 것은 더 이상 이런 강밀도로 이 친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 그랬을 수 있다^^;) 공부로 만난 인연이기에, 그 인연이 다하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도 참 쉽지 않다. 친구의 좋아진 얼굴을 보면 잘한 선택이구나 싶지만, 나는 이 이별이 아직 많이 아쉽다. 나에게 그 친구는 지기(知己)였지만, 그 친구에게 나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홍대용과 중국선비들처럼 언제다시 만나더라도 부끄러움 없이 살자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저 그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의 인연장에도 다른 강밀도의 공부의 길이 열리길 바란다. 다시 만날 때, 반갑게 얼싸안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이 마음을 잘 떠나보내야겠다.


글_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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