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 세척기 없이 살 수 있을까?
밖에 다녀오자마자 남편이 조용히 말합니다. “무서운 거 보여줄까?” 남편을 따라가서 보니 식기 세척기 한구석에 녹이 슬어있었습니다. 2년 전,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구입해서 아주 매우 정말로 유용하게 쓰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녹이 슬어버리다니! ‘그럼, 앞으로의 설거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면서 막막해졌답니다. 사람들이 흔히 3대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가전제품이 있습니다. 건조기, 식기세척기 그리고 로봇청소기죠. 저희 집에는 이미 건조기, 식기세척기 이 두 이모님이 계시네요.
사실 식기세척기가 없던 시절에도 잘만 살았습니다. 그냥 손으로 설거지하면 되지요. 저도 처음에는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는 시누를 보고 이상해하기도 했답니다. 식기세척기에 그냥 접시를 넣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애벌 세척을 해서 또 차곡차곡 넣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차피 대충 그릇을 닦았으니, 손으로 설거지하는 것이 더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식기세척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요, 아이가 한 명에서 두 명이 되니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비록 애벌 세척을 하고 예쁘게 정리를 해서 넣어야 할지라도 그렇게 넣어만 두면 나중에 짠하고 그릇이 정리되어 나오는 식기세척기! 물에 헹구고 말리는 시간을 아껴서 남은 그 에너지로 냄비나 프라이팬을 닦곤 합니다. 이렇게 이미 저희의 신체는 식기세척기에 완벽히 적응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요 며칠간 아이들 식기도 있는지라 이미 녹이 나버린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긴 좀 껄끄러워서 손으로 설거지했습니다. 다행히 그 사이에 둘째가 어느정도 커서 그런지 많은 방해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설거지 하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뜨끈한 물로 그릇을 헹구며 나는 뽀독뽀독한 그 소리!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옆에 있는 식기세척기가 조금은 불편해지기도 했습니다. 덩치가 꽤 큰 녀석 때문에 아일랜드 식탁의 절반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요, 또 물이 빠지는 호스에는 곰팡이가 피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내부 세척을 하기도 해야 해서, 꽤 많은 시간을 관리하는 데 신경 써야 합니다.
모든 편리함에는 불편함이 따르는 걸까요? 당장의 편리함 때문에 어느새 의존적으로 된 제가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당장은 식기세척기 이모님과의 동거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라는 문장을 참 좋아하는데요, 아이들이 좀 크게 되면 조금은 간결하고 단순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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