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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연암을만나다] 돌직구가 주는 것

by 북드라망 2020. 7. 30.

돌직구가 주는 것


 

친구 어머니 중에 휴대폰에 남편을 ‘내면의 평화’라고 저장하신 분이 있다고 한다. 친구가 의아해서 왜 그렇게 저장했냐고 물었더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전화를 받기 전에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하셨단다. 어딘지 모르게 웃프다. 그런데 평소 우리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기분 상하지 않게 돌려 말하는 데에 꽤 능숙한 것 같다. 우유부단하다는 말 대신 ‘착하다’라고 말하고, 이기적이라는 말 대신 ‘승부욕 있다’라고 애써 포장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 똥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똥 싸러 간다.’라고 말하는 대신 ‘화장실에 잠깐 볼일 좀…!’라고 말하는 게 더 익숙하다.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저절로 표정이 찌푸려지는 것처럼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느낌이 온몸으로 강하게 오기 때문일 거다.




재밌는 건 둘러말하기는 조선시대에도 흔히 찾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부스럼이라 부르는 대신 곱다는 뜻의 ‘곤데’라는 단어를 쓰고, 식초를 ‘단 것’이라고 부르고, 장님 대신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 자’라고 둘러말했다. 어찌 보면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을 보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좋게 좋게 말하니,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껄끄럽지 않아 언뜻 보면 ‘윈윈(win-win) 대화’를 이끌어 낼 것 같다. 그런데 이 둘러말하기에 부작용이 하나 있다.


어린 계집애가 마을의 할멈이 단 것을 판다는 말을 듣자 그것이 꿀이라 생각하고, 어머니 어깨에 매달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에이, 시다. 어째서 단 것이라 하는 거야? 하니, 그 어미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박지원 지음, 『연암집』(하), 「우부초서」, 돌베개, 58쪽


신 것도 단 것이라 하고, 진짜 단 것도 단 것이니 도무지 맛을 표현하는 데에 구별이 없어지고 혼란만 생기듯, 세상을 표현하는데 반쪽짜리 말들만 남아있게 되는 거다. 이런 사태에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이가 있다. 바로 연암의 친구 유언호이다.


그의 문집인 『연석』을 읽어보았더니 기휘(忌諱)에 저촉되고 혐노(嫌怒)를 범한 것이 퍽이나 많았다. 백가(百家)의 장점을 포용하고 만물을 감싸 안아 그 정상(情狀)을 터득한 것이 마치 무소뿔에 불이 붙여 비추어 보고 구정(九鼎)에다 그림을 그려 넣은 것 같았으며, 그 미묘한 데에서 변화하는 것은 알에서 털이 돋기 시작하고 매미의 날개가 돋아나려는 것과 같아서, 운기(雲氣)와 돌고드름까지도 만져 볼 수 있으며 벌레의 촉수와 꽃술까지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박지원 지음, 『연암집』(하), 「우부초서」, 돌베개, 60쪽


유언호는 스스로를 어리석은 남자, ‘우부’라 칭하며 보통 사람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것들을 자신의 문집에 담는다. 아마 똥과 같이 평소에는 감히 입에 올리지 않는 말들을 담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람들의 반감을 사는 어리석은 글쓰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집은 읽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찌푸림을 줄지는 몰라도 세상을 세세하게 비춰준다. 유언호는 돌직구를 던지며 찌푸리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좋은 말로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세상의 면모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유언호를 보니, 듣기 좋은 말을 둘러말하는 건 세상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글_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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