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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73

휠체어, 꼬리는 살아있다?!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오랜만에 날씨가 맑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숨막히게 느껴지던 볕이 약간 헐겁게 느껴진다. 빛은 그대로인데 온도가 약간 내려갔다. 빛이 따갑기는 마찬가지인데 후덥지근하게 몸에 엉기는 느낌이 없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온몸에 햇빛을 느끼면서 걷는다. 눅눅하고 무거운 몸을 말린다. 휠체어 뒤에 따라가면 눈을 감고 걸어도 된다. 제이가 전후좌우 잘 보면서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난 그냥 휠체어 뒤의 손잡이를 잡고 따라가면 된다. 사람들은 내가 휠체어를 밀고다니는 줄 안다. 길을 다니다 보면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면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 하긴,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고 괜한 용을 많이 썼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천천히, 빨리… 제이를 내가 운전하려고 낑낑거렸.. 2012. 9. 4.
언젠가 먹고 말거야! - 제이와 포도 포도의 계절 제이랑 나랑 자주 다니는 길에 과일가게가 하나 있다.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려면 이 가게 앞을 지나야 한다. 가게 안에는 과일들이 박스로 쌓여 있다. 가게 바깥으로까지 수박, 참외, 복숭아, 토마토 등등이 쏟아져 나와 있다. 반짝이 달린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이마에 빨간 스카프를 질끈 동여매고 소형 마이크를 입 앞에 단 아저씨가 땅바닥을 발로 쿵쿵 울리면서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몰라요! 꿀복숭아 다섯 개 삼천 원, 삼천 원!” 하면서 외친다. 어디? 정말?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쭉 빼고 가게 앞으로 모여든다. 이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휠체어 지나가기가 힘이 든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등에서 빨간불로 바뀌려고 하는데, 바뀌기 전에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 2012. 8. 28.
오빠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 제이의 눈물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오늘은 활보하는 날이 아닌데 제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쩐 일일까? 갑자기 외출할 일이 생긴 걸까? 그게 아니고… 가방 정리 하다 보니 교통카드가 없어서… 하루 종일 찾아도 없는데 혹시 못 봤냐고 한다. 제이의 교통카드는 내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어제 활동 끝나고, 제이 집 앞에까지 데려다주고 엘리베이터 문 닫히기 전에 빨리 탄다고 허겁지겁 헤어지는 바람에 교통카드 돌려주는 걸 잊어버렸다. 어 미안, 내일 돌려줄게… 내가 워낙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 내 지갑을 제이 가방에 넣고 집에 오는 때도 있다. 활동을 같이 하다 보면 물건이 막 섞인다. 흐이그… 정신 차려야지… 남의 교통카드를 들고 오다니… 교통카드 찾았으니 다행이다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는데… 제이의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 2012. 8. 21.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제이의 즐거운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올 여름 제이의 수입은 쏠쏠했다. 복지 일자리 외에 아르바이트를 조금 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란, 박물관, 공연장, 은행, 체육관 등을 둘러보면서 그곳에 장애인 시설이 잘 되어 있나 잘 안 되어 있나를 조사하는 일이다. 원래 봄에 했던 아르바이트인데, 여름에 추가로 4건을 더 하게 되었다.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 못 한 것을 제이가 받아서 더 하게 된 것이다. 이때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 중에 제이가 가장 일을 빨리, 그리고 많이 했다. 제이는 이 일을 너무나 즐겁게 신나하면서 했다. 무엇보다 돈이 되는 일이고, 서울 시내 여러 시설들을 둘러보는 게 제이에게는 ‘일’이라기보다 ‘소풍’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러라도 놀러가고 싶은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곳에 가서, 장애인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문.. 2012.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