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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251

니체, 『아침놀』 - 혐오에는 근거가 없다 니체, 『아침놀』 - 혐오에는 근거가 없다 세상에 혐오와 증오가 넘쳐난다. 그 모든 '오'(惡)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슴 구석이 갑갑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세상'이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그 세상이 내 마음이다. 내가 나의 마음으로 경험하는 세상이 그렇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근거'들을 찾아 본다. 어째서 그렇게 싫고 미운 것이 넘쳐나는 것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편타당'과 '명석판명'한 이유들을 찾을 수가 없다. 혐오와 증오는 매번 옷을 바꿔입고 나타난다. 아니,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매번 다른 것(들)이 들어앉아 있다. 그러니까, 근거는 없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혐오에 딸린 '근거'들을 증거로 착각하며 살았다. 그러니까 증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 혐오의 감정은 정.. 2019. 9. 2.
랑시에르 『불화』 - 정의는 언제 시작되는가 랑시에르 『불화』 - 정의는 언제 시작되는가 '공동의 권력이 실행되는 형태와 그러한 실행의 통제'가 멀쩡했더라면, 아니 잘 작동하고 있었더라면 누구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도,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던 요순시대가 그러했을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노래(사실은 후대의 위작이라는 설이…)라는 '격양가'를 보면 이러하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내 먹으니임금의 혜택이 내게 무엇이 있다더냐. '임금의 혜택이 내게 무엇이 있다더냐'. 아닌 말로 각자 알아서 잘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누가 그 자리에 있든 아무 상관없다. 뭐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선거' 같은 번거로운 일도 별 필요가 없으리라. 다만 문제는 이 시대의 환경이 하루가 멀다하게 '정의'를 호.. 2019. 8. 19.
블랑쇼,『문학의 공간』 - 모든 작품은 실패작 블랑쇼,『문학의 공간』 - 모든 작품은 실패작 세상에 완벽한 것은 무엇도 없다. 말인즉, 모든 것은 결국 어떤 '실패'를 안고 있는 셈이다. 각자 자기를 돌아보아도 좋다. 세상에 가장 불완전한 것이란 결국엔 '나'이다. 그것이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묻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오히려 '실패'가 작품을 완결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어떤 예술(작품)은 '보이지 않'으며, '여기어 없는' 것을 이 자리로 소환하는 포트(port)와 같은 것이 아닐까? 거기에 어떤 '실패'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이동할 수 없다. 실패 앞에서 '다시 한번', 그러니까 매번 다시 지하로 내려가고, 다시 올라와 실패하는 오르페우스의 일이다. 문학의 공간 - 모리스 블랑쇼 지음, 이달승 옮김/그린비 2019. 8. 13.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사는 일'은 대체로 암담한 것을 견디거나, 잊는 일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즐겁게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낙관주의자가 되었을까. 아니,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삶은 어두운 곳에 간신히 불을 밝히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꽤 매력적인 일이다. 내내 밝은 것보다 어둠 걸 밝히는 일이 더 즐거우니까. 다케우치 요시미의 책에는 루쉰이 죽고서야 '청년들은 비로소 자신의 고독을 깨달았다'는 말이 나온다. 그에게는 죽음마저도 어떤 '쓰기'였던 셈이다. 인간의 삶, 죽음마저 포함하고 있는 그 삶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살아가고, 죽는 .. 2019.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