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을 만나다 : 버티는 공부, 변화하는 공부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의 공부방에는 공부하기 시작하면 만나게 될 수 있는 몇 명의 붙박이 선생님이 계신다. 진달래 선생님도 그중 한 명이다.
그의 전공은 동양고전이다. 문탁에 ‘학이당’이라는 원문 강좌 프로그램이 있을 때까지는 동양고전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종의 대세였달까.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선생님들도 스스로를 ‘동양고전 서당개’라고 부를 정도, 당시 문탁에서 막 공부를 시작한 청년인 내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동양고전 공부를 추천해 주실 정도였다.
내가 느끼기에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 동양고전 열풍은 한풀 꺾인 것 같다. 숨을 고르는 중일지도 모른다. 계속 동양고전을 전공할 것 같았던 선생님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물론 동양고전 공부를 완전히 손 놓으신 분들은 거의 없다. 다만 자신의 메인 공부와 활동으로 삼는 선생님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진달래 선생님은 여전히 동양고전을 메인 공부로 삼고 계시는 선생님 중 하나다. 자리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여유롭지 않다. 머물렀기 때문에 새롭게 닥쳐오는 변화를 잘 맞이해야 할 때도 생긴다. 진달래 선생님은 지금 변화의 풍랑 한가운데 서 있다.
1. 유일하게 한 건 결석 안 하는 거
어떻게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원래는 독서지도사를 하고 있었어요. 독서지도사를 하면 보따리장수처럼 강의를 들으러 다녀요. 애들 수업을 하다 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그 분야 강의를 듣는 거죠. 처음에는 문탁에서 과학 강의를 들었어요. 그 다음 해에 ‘앎과 삶’ 세미나에 들어갔죠. 강의는 들으면 아는데 뒤돌아서면 잊어버리잖아요.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여기에서 공부는 필요에 의해서 하는 공부하고는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앎과 삶’ 세미나는 교육에 관한 세미나였는데, 내가 세미나에 들어갔을 때 『논어』, 『금강경』, 『바가바드 기타』를 읽었어요. 읽어본 책이 없었죠. 이게 뭔가 싶었어요. 그다음 해에 ‘학이당’이라고, 동양고전 세미나가 열렸어요. 첫해에 『논어』를 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죠. ‘『논어』를 왜 마흔 넘어서 읽어야 되는 걸까.’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요.
『논어』를 만나셨을 때 어떠셨어요?
그때 우리가 썼던 교재는 한자가 다 붙어 있었어요. 글자도 모르고 띄어읽기도 안 되니까, 『논어』 강의를 들을 때는 머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토도 달아야지, 내용도 써야지, 어디 하는지 따라가야지. 수업 30분 전에 일찍 와서 시험 보고 돌아가면서 읽고 해석도 했어요. 엄청 긴장했죠. 오후에는 2차 텍스트를 봤어요.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을 잘 몰랐어요. 그냥 읽으라면 읽었죠. 매년 한 해가 끝나면 이렇게 공부하는 게 힘들어서 안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러면 모여서 같이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버텼죠. 생각해 보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좀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선생님은 나간다고 하시는 쪽이셨어요, 붙잡는 쪽이셨어요?
나간다고 한 적은 없었죠. 붙잡지도 않았어요. (웃음)
힘드셨는데도 어떻게 낯선 공부를 계속하셨는지 궁금해요.
학이당에서 2년 동안 사서를 읽었는데, 그때는 공부가 재밌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오전 열 시부터 서너 시까지 친구들이랑 같이 있었거든요. 같이 공부한다는 느낌이 있었죠. 문탁에서 일을 거의 안 했을 때라서, 문탁 안 나가는 날에는 혼자 남산도서관에 가서 공부했어요. 이런 걸 처음 했잖아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첫 에세이 발표 날에 너무 떨어서 옆에서 기린 선생님이 나를 툭 쳤던 기억이 나요. 그런 시간이 있었죠.
제가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요.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건, 내가 생각보다 세상사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정리는 하겠는데 질문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에게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가 생겼더라고요. 생각을 좀 해봤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 않거든요. 문탁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죠. 내가 유일하게 하는 건 결석을 잘 안 하는 거예요. 뭘 하나 시작하면 잘 그만두지 않고요. 잘하는 건 아닌데 일단 따라가요. 그 시간이 쌓이면 결과적으로 남는 사람에게 뭔가가 생기는 거겠죠. 그냥 다른 데 한눈 안 팔고 고전공부를 10년 해왔던 결과물인 거예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내가 잘하는 건 공부나 글쓰기가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걸 선생님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건 아닌데. (웃음)
2. 공부는 공부한 만큼만 나와요
최근에 문탁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논어 카메오 열전’ 연재가 끝나셨잖아요. 축하드려요! 쓰시면서는 어떠셨어요?
뭘 쓸까 하다가, 예전에 공자 제자들에 대해 쓴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가 아닌 인물을 쓰겠다고 시작한 거죠. 쓰는 데 오래 걸렸어요. 햇수로 3년 동안 썼어요. 쓸 때는 한 달에 하나씩 쓰라고 했는데, 자료를 보다 보면 두 달은 잡아야 되더라고요. 그동안 『논어』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춘추좌전』이나 『열녀전』을 보기도 했으니까 갈수록 쓸 수 있는 게 더 많아졌어요. 그런 자료들을 분석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죠.
처음에는 주제를 잡아보려고 되게 노력했는데, 쓰다 보니까 나중에는 설명식으로 쓰게 됐어요. 그게 제일 아쉽죠. 첫 번째 글에 안평중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사람들에 사이의 우정에 대해 썼거든요. 그런데 15개나 쓰다 보니까 나중에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이렇게 쓰게 되더라고요.
그게 어렵죠. 제가 잘 못하는 거예요. 쟁점이 되려면 과감한 해석이 들어갈 필요가 있잖아요. 확 치고 들어가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논란이 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이렇게 해석이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 순간에 확 죽어버려요. ‘맞아, 이렇게 하면 안 되지’ 하면서 글이 평이해지고 논점이 사라지는 거죠. 나중에는 쓰면서 저도 알아요. 이렇게 쓰면 재미가 없다는걸요.
선생님이 튜터로 계시는 고전학교에서는 과감하게 쓰라는 이야기를 해주시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느냐는 좀 다른 문제고,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너무 멀리 가면 이상하지만, 그래도 계속 통용되는 방식으로만 쓸 수는 없잖아요. 이전 사람들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 냈으니까 지금까지 남는 거잖아요. 주자도 사서를 전폭적으로 재해석한 거고요. 특히 지금은 시대가 진짜 많이 바뀌었어요. 문제가 달라졌는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면 고루하다는 이야기를 듣죠. 그걸 깨려면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을 거잖아요. 자꾸 두들겨 봐야 어디선가 그게 풀리겠죠. 물론 욕은 먹겠지만요.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내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논어』를 일이 년 읽었을 때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아?’ 했으면 아마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자꾸 읽다 보니까 주자가 해석한 건 주자 당대의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어떻게 한 거구나,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될까요?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문제는 그 근거를 얼마큼 탄탄하게 가질 수 있느냐, 인 거죠. 공부를 해서 근거를 가져야 되는데 그건 시간만 해결할 수 있어요. 공부는 공부한 만큼만 나와요.
공부를 한 만큼 나온다는 게 무서운 말인 것 같아요.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사실 잘 몰라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나는 그냥 시간으로 때웠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냥 하다 보면 뭐가 된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공부해서 어떤 사람이 돼야겠다는 것도 없어요. 그래서 기린 쌤에게 혼났지만요. (웃음)
3. 어디까지가 '인간'일까
저에게는 페미니즘이 일종의 시대적 감각인데요. 페미니즘과 『논어』를 같이 공부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이걸 같이 하자고 할 친구도 거의 없고요.
시대적으로 보면 『논어』는 신분제 사회에서 남성 엘리트를 위한 책이잖아요. 범대중을 위해 쓴 책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한계가 있지만, 후대의 주석은 시대에 따라 『논어』의 뜻을 계속 넓히고 있죠. 우리는 뭘 근거로 뽑아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해요. 페미니즘이 좋은 주제인 것 같은데 저도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어요. 고은 쌤이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함께 하는 친구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일단 친구들에게 『논어』부터 같이 읽어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죠?
우리의 공부가 아카데미의 공부와 다르다고 하는데, 저는 내용은 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카데미 공부의 큰 장점은 훈련인 것 같아요. 잘 짜여진 커리도 있고, 밟아나가야 하는 순서가 있으니까요. 공부는 시간으로 쌓아 올린 게 있어야 하는데, 아카데미는 체계적으로 앞선 사람들이 쌓아놓은 걸 밟잖아요. 그런 시간을 확보하고 공부 방식을 체득하는 훈련을 받죠.
우리는 확장성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저렇게 하는 건 쉽지 않죠. 과정이 강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공부 방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그럼 모두 다 그런 강도로 세미나를 할 수 있냐, 하면 못 하겠죠. 좋아하는 거 같이 읽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공부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요.
이제 하반기니까, 문탁에서도 내년 공부 계획을 짜고 계시죠? 선생님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으세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요즘 외국학자들이 유학을 어떻게 공부하고 있나도 궁금하고요. 내년에 『논어』 강독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또 신유물론도 공부해서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도 고민해 보면 좋겠다 싶어요.
코로나 전부터 포스트휴먼에 관심이 많았어요. 『논어』 당대에 사용되던 ‘人’ 용법과 몇 천 년 뒤 주자 시대의 ‘人’ 용법은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공자가 살던 시대에 인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귀족을 지칭한다고 봐야 해요, 그런데 주자 대에 이르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의미와 가까워지거든요. 그러면 우리 시대에 ‘사람’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인공지능-기술과 연결된 인간의 개념을 어떻게 다시 정립할까, 거기서 어떤 윤리 문제가 발생할까. 동양고전의 가장 큰 장점이 윤리에 관한 거잖아요. 윤리가 거기까지 확장되려면 신유물론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저에게는 진달래 선생님이 처음부터 ‘선생님’이셨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신기해요.
저도 선생님들이 여전히 어려워요. 선생님들이 볼 때는 되게 답답하겠다 싶어요. 10년 공부했으면 질문을 만들어 내고 치고 나가야 되는데 안 하잖아요. 안 한다기보다는 못하는 거죠. 잘 못해요. 하던 것만 계속하고 변화에 취약하니까요. 또 그런 것도 있어요. 회사 같으면 정해진 역할들이 있는데, 이곳엔 그런 게 없으니까 어떤 때는 내가 이걸 해야 되는지 안 해야 되는지 헷갈려요.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가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게 잘 안될 때는 공부를 이렇게 했는데도 이런 것도 못하나, 그러면 공부를 왜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지금은 공부 열심히 안 하는데 이런 인터뷰를 하기가 쑥스럽네요. 문탁은 지금 우리가 어떤 공부를 혹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고전공부도, 고은 쌤의 고민처럼 지금 시대의 문제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봐야겠죠.
진달래 선생님은 스스로 변화에 취약하다고 했다. 공부는 그저 10년을 버틴 결과라고, 결석하지 않은 것이 유일하게 해낸 것이라고도 말했다. 버티거나 머무른다고 하면 변화하지 않아 고착될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 그는 동양고전을 읽는 시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게 단점이라고 말했지만, 사회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유물론에 관심이 많다. 버티는 힘이 너무 좋은 사람이 함께 공부하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진달래 선생님은 계속 그래왔는지도 모른다. 독서지도사를 위한 공부를 하다가 인문학 공부로 방향을 전환했을 때, 온몸의 저항을 이겨내고 머물렀던 덕에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닐까. 문탁에서 지금까지도 청년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기 때문에 세상에 관심이 없음에도 세상사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 없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선생님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버팀으로써 결국 해내실지도 모른다.
인터뷰_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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