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을 위해 ‘기대는 근육’을 키우고 있는 청년 5인의 목소리
―『불화와 연결』!
김고은 샘의 두번째 인터뷰집 『불화와 연결』에는 세상과 불화하(는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연결되기 위해 애쓰는 다섯 청년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전작 『함께 살 수 있을까』가 인터뷰어의 질문과 인터뷰이의 답변을 그대로 싣는 문답의 형태였던 데 비해 이번 책 『불화와 연결』은 김고은 샘의 글 중간중간 인터뷰이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는 에세이 형태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더욱 저자의 시선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는 고백도 서문에 나와 있습니다.
문답 형태가 아니라도 책을 읽다 보면, 인터뷰이들과 직접 대면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두 사람의 인터뷰 뒤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 인터뷰이들을 직접 만나 보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이들을 만나볼 수는 없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 그들의 ‘기대는 근육’을 키워가는 데 조금이나마 함께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불화와 연결』에서 직접 확인해 주세요.
** ‘깨물고 꼬집는 지혜 : 장애동료상담가 진우’의 말
“대학교 3학년 때 총학생연합회에서 주최한 체육대회가 열렸어요. 운동장을 빌렸는데 조회대 옆 계단으로만 갈 수 있게 해놓고 운동장 들어가는 문은 잠가 놓은 거예요.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활동하는 동아리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더니 열쇠가 없다고, 관리자가 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화가 났어요. 1시간을 기다리고 따져서 간신히 들어갔는데 결국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종목이 없었어요.
구경만 하지 말고, 차라리 내가 회장을 해보자 해서 4학년 때 회장을 했어요. 그리고 체육대회에 론볼이라는 종목을 넣었어요. 공을 굴려서 표적구에 정확히 위치시키면 점수를 따는 게임이에요. 이 게임에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거 없이 다 참여할 수 있어요. 저는 맘에 안 들면 바꾸는 스타일이에요. 일이 많아서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죠.”
“장애인은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뭘 좀 하려고 하면 넌 장애인이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억눌렸던 감정, 억울한 기억, 차별받았던 경험이 많이 쌓여 있어요. 그걸 해방하지 않고는 대인관계를 다시 구축할 수 없고 더 나아가서 사회변혁도 할 수 없죠. 감정해방을 통해서 충분히 억울하고 짓눌린 감정을 풀어낼 필요가 있어요.
(......)
휠체어를 초등학생 때부터 탔거든요. 축구를 좋아해서 골키퍼를 했어요. 교회 친구들과는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으니까요. 그런데 중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제 장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못 놀고 가고 싶은 곳에 못 가는 게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통합 교육이 많이 중요하다고 느끼죠.”
** ‘애쓰지 않는 느린 연결 : 지역의 이웃청년 총총’의 말
“여기[<청풍>]서는 또래 친구들이랑 같이 일을 하니까 수평적이기도 한데요. 무엇보다 재밌었어요. 같이 복작복작 삶을 만들어 가거든요. 주체적으로 산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먹고살기 위해 실험을 했던 거였는데, 당시 저에게는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는 게 다채롭게 느껴진 거죠. 매년 해야 하는 프로젝트들이 달랐거든요.
제가 왔을 땐 이미 동네 상인분들하고 관계가 쌓여 있는 상태였어요. 처음 한 일이 동네에서 플리마켓이랑 원데이 클래스를 만드는 일이었는데요. 동네 커피집에 가서 ‘테이블 하나 빌려도 돼요?’ 하면 ‘네, 쓰세요’ 하시고 또 다른 가게에 가서 ‘여기서 요가 클래스 열어봐도 돼요?’ 하면 ‘네. 열쇠 드릴 테니까 에어컨 이렇게 켜시면 돼요’ 했어요. 그냥 다 주는 거예요.
상인분들에게도 ‘같이 하실래요?’ 하면 무조건 한다, 무조건 간다, 이런 분위기였어요.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죠. 일상에서 동네 사람이라는 존재가 보일 수 있구나, 그런 삶을 살 수 있구나,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냥 지나가는 관계, 한 번 볼 사이가 아니라 쌓여 가는 관계, 계속 갈 인연이라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도 그걸 지향하면서 살고 일하기도 하고요. 근데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이번에 오시는 걸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게 진짜 되고 있구나, 우리가 이곳을 같이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감동이었죠.
강화에 살든, 살지 않든 이 세계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강화유니버스 이웃인 것 같아요. 뉴로컬 키워드를 구현해 가고 싶은, 말랑말랑하게 연결되어서 살아가고 싶은 그런 세계관의 이웃이요.”
** ‘판단하지 않는 정의 : 기후운동가 은빈’의 말
“속도가 너무 빠른 거예요. 이 사회가 요구하는 게 너무 과한 거예요. 근데 꾸역꾸역 해야 되는 거죠. 그럴 때 느껴지는 죽을 맛, 멀미 남, 조바심이 싫어서 사회 운동에, 이 안에 들어왔는데도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들 역시 비교 의식, 열등감과 싸워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힘이 어디서 올 수 있을까요? 기성 정치인들에게 요구한다고, 정책이나 제도가 개선된다고 해방될 수 있을까요? 전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선택하기엔 매력 없는, 선택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잖아요.
도움은 될 수 있겠죠. 실업 수당이 대폭 확대된다거나, 기본소득이 만들어지면 여건은 나아질 테니까요. 물론 지금은 그럴 여지가 안 보이지만요, 그래도 누군가 그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하면 되죠. 해주면 고맙죠. 다만 그게 우리의 메인 키는 아니니까 투쟁 의제로 삼지는 않아요.”
“역설적이지만 [〈청년기후긴급행동〉을 찾은 분들은] 한국 사회 체제의 악습을 온몸으로 체화한 분들이기도 해요. 저도 그렇고요. 능력주의와 자기 비관주의. 또 뭐가 있을까요. 아무튼, 그게 참 힘들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큰 거죠. 얼마나 해로운지 아니까. 내 몸에서 얼마나 잘 작동되고 있는지 그 위력을 봤으니까. 이런 삶은 안 살고 싶으니까 찾아오는 거예요.
성경 말씀에 비유하면, 예수는 건강한 이들을 만나러 오는 게 아니라 병자를 만나러 오는 거잖아요. 체제 전환이 절실한 사람들은 이 체제에 적응하고 거기서 인생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계속 불화하고 부적응하는 사람들이에요. ‘여기에 내 길이 있나?’ ‘이게 내 길이 맞나?’
저는 그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순응하지 못한 지점일 수도 있죠. 근데 뭐 어때요. 못한 거든, 안 한 거든 간에 저는 그 감각을 살리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온 마음을 다하는 공부 : 인문학공동체 살림꾼 윤하’의 말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매일을 그 중심으로 사는 것이요. 달라이 라마 책에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사람을 도와야지, 적어도 해를 끼치지 말아야지, 이런 마음을 먹는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런 게 진짜 의미 있는 삶이라고요.
지금은 여기서 살림을 꾸리면서 공부의 장을 만드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부하러 오신 분들이 이런 곳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실 때,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 싶은 청년들이 ‘이런 데가 있다니, 이게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었나 보다’라고 할 때 이 공간에 그런 의미가 있구나,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해요. 공부한다는 건 스스로 좋은 삶을 찾아 나가는 거잖아요. 여기 살림을 한다는 건 사람들이 그 길을 갈 수 있게 돕는 일이죠.”
“집을 일찍 떠나기를 참 잘한 것 같아요. 아닌 가족도 있겠지만, 저한테 가족은 무조건적인 관계이거든요. 주어진 관계, 끊어지지 않는 관계요. 그런데 가족 안에서만 살 수는 없잖아요. 가족이 제가 가장 주력하는 관계였다면 자신감이 없었을 것 같아요.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온 마음을 쏟아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여기서 해본 것 같아요.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곳이 여기 있다. 사실 나를 케어해 줄 의무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과 이렇게 지낼 수 있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통상적으로 말하는 이익이 없어도 관계라는 게 이렇게 될 수 있구나.”
** ‘문란한 신념 : 대체복무요원 길완’의 말
“혼자 깨달은 게 아니에요. 읽은 것들, 동료들과 토론한 것들이 쌓여서 제 언어가 된 거죠.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도 지지해 줬고, 민변에서 만난 사람들도 법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대체복무요원 교육센터에 갔을 때, 민변 일로 너무 바쁠 때이기도 해서 별생각이 없었거든요. 근데 친구들 네 명이 뭐라도 들려 보내야 될 것 같다면서 아이패드를 사주려고 모금을 했어요. 주변에서 사람들이 뭐라도 보내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죠. 병역거부를 할 수 있기까지 사람들의 지지가 중요했어요.”
“아이러니한 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요. 그들도 그렇고 평화운동 안에서도 그렇고 주장이 똑같아요. 양심을 어떻게 심사하냐. 저쪽에서는 거짓말 어떻게 밝혀낼 거냐는 거예요. 우리는 인권침해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고 하죠.
양심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내부 동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고, 바뀌기 쉽지 않은 생각 덩어리인데. 육하원칙에 맞춰서 “너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런 양심을 가지게 됐어?”라는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이건 군대를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사람들은 받지 않는 질문이잖아요.
저의 평화적 신념과 활동이 심문받는 느낌이었어요. 적대적인 국방부나 병무청이 추천한 심사위원들은 ‘나를 어디 한번 설득해 봐’ 이런 태도를 가지고 십자가 밟기 식 질문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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