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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의 독국유학기

[현민의 독국유학기] 독일 도착기

by 북드라망 2024. 7. 19.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던 현민샘의 유학생활을 들여다봅니다.

"집"을 찾아 독일로 떠났다는 현민샘. "그저 나는 집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집이 내 집이 아니고, 태어난 나라도 마땅한 곳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현민샘께서는 익숙한 것들을 떠나 한번도 궁금해보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고 또 오랫동안 자신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벗어나보고자 길 위에 나서게된 것이죠!

현민샘의 독일 유학기. 앞으로 많이 기대해주세요!

 

독일 도착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나는 서점을 떠났다. 그리고 독일에 왔다.

지극히 사실인 이 문장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내가 정말 충동적으로 떠났으므로. 작고, 지역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서점을, 동천동을 왜 떠났을까? 한국을 왜 떠났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곳에 두고, 스스로 멀어지기를 선택한 것은 왜일까? 등의 스스로 피어오르는 질문들에 마땅히 대답이 될 이야기들을 지금은 쓸 수가 없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에게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부모가 공부하고 결혼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비교적 유학에 돈을 많이 쓰지 않을 수 있는 복지 좋다는 나라. 페미니즘 문화의 이삼십대 언니들이 많이 유학하고 취업하는 나라.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는 거라고, 대안학교를 다닐 적에 슬퍼하던 내게 부모가 해줬던 말을 기억한다. 독일이라는 땅을 한국과 비교해 대체지나 종착지, 환상의 세계로 여기지는 않을 거다. 백인들의 땅, 니네가 얼마나 잘났냐 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시간 배워왔으니 말이다. 최악과 최선을 내가 떠나온 곳에서 모두 느꼈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냉소와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사는 것이 좋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겐 있다.

그저 나는 집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집이 내 집이 아니고, 태어난 나라도 마땅한 곳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거쳐온 모든 주거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 때마다 어색함을 느꼈던 것처럼. 집이라는 게 세상에 태어났다고, 혹은 찾아 헤맨다고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건 아직도 조금 슬프다. 독일에 오기 전 집을 못 구해서 엄청 슬퍼하는 내게 조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넌 진짜... 집을 찾는 게 네 인생의 화두가 될 것 같애. 여기서 말하는 집이라는 게 단순히 비바람 막아줄 지붕과 벽을 말하는 것이면서도 아니라는 걸 읽는 이들께서 알아주시기를. 그래도 내 친구들도 다 가난하고 집 없고 가족 찾아 삼만리면서도 아름다운 애들이고 걔네가 옆에 있어서 기분이 괜찮다.

그래서 독일에 온지 두달이 되었고 나는 아직도 집이 없다. 길거리에 나앉더라도 독일 노숙자가 되라는 친구들의 말을 새기고 도착했지만 집이 없고, 친구가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나를 약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집이 없고,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것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그건 외롭거나 상처받을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 달간 집이 없어 괴로워하고, 친구가 없어 슬퍼하고, 또 친구들을 만나 기뻐하는 시간들을 몇 번 반복해보니 이제는 내가 떠돌기보다는 머물 집이 필요하고, 친구들이 있어야 더 세상에서 잘 노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우와! 이 문장을 쓰고 나니 내가 너무 대견하다.

 



독일에서 만난 프랑스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How can I say ‘Germany’ for korean? (한국어로 독일 뭐라고 말해?)
It’s pronounce like ‘Dok-ill’ (‘독일’이라고 발음함)
What? Why? (엥, 왜?)

 

그러게. 그럼 프랑스나 스페인은 뭐냐고 묻는데 그건 그냥 프랑스랑 스페인이란다, 라고 대답하면서 검색을 했다.

독일은 영어로는 Germany이지만, 독일어로는 Deutschland인데 고대 중국에서 도이치Deutsch를 덕의지(德意志)로 표기했고, 한걸음 나아가서 덕국(德國)으로 기입했다고 한다. 누가 골랐는지 우연히 너무 좋은 한자다. 그러다가 그게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왔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외래어 표기 방식으로 인해 독일(獨逸)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기 전에는 한 번도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그리워서 떠난 것 같다. 한번도 궁금해 해보지 않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보고 싶어서.

종종 걷다가 문득 독일이 ‘홀로 독’자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무의식 중에 그래도 같이 사는 게 더 좋은 거라고 오래 편협했던 마음들이 작아지는 때가 이곳에선 있었다. 앞으로 이 곳에는 내가 독일에서 만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올 예정이다. 시작하는 글을 마치며 사랑하는 나의 친구 수련이 미국인 애인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덧붙인다.

 

... In fact, I felt the change linked to the anxiety that I might lose too much.

But change is change. Change is not about losing, but something about changing something. I always want to remember. That the flow should not be tied up. When something attacks me, I have to let it ring, not store it in my body. I need to feel accurate and transparent. I have to look at it simply and refreshingly. Always with a generous heart. I hope so.

... 사실 나는 이 변화가 너무 많은 걸 잃을 거라는 불안감에 연결되어 있어. 하지만 변화는 변화야. 변화는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바꾸는 거야. 언제나 기억하고 싶어. 흐름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걸. 무언가가 나를 공격할 때마다 나는 그걸 내 몸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울리게 두어야 해. 나는 정확하고 투명하게 느낄 필요가 있어. 간단하고 상쾌하게 봐야 해.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러고 싶어.

 


변화는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너에게도, 나에게도 온다. 변화가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왜 이제야 왔냐고 얼싸안아 춤추기도 하고, 너무 놀라 집에 없는 척 발소리를 죽이고 숨기도 한다. 세상엔 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오랫동안 변화라는 걸 맹목적으로 보았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시한 가장 좋은 변화의 방향성을 체화하느라 바빴다. 이제는 ‘변화’라는 상태의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종종 글을 쓰고 나면 타인들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쓴 편지 같은 기분이 든다. 내게 글을 쓰는 건 가장 좋은 마음을 작은 그릇에 조심조심 떠 담아 휘발하지 말라고 몸에 갖다 붙이는 과정이다. 세상을 이해해보겠다고 애쓰다 마음이 자주 극단에 머물렀다. 화나서, 슬퍼서 금방 픽 쓰러져 죽지 않으려면 삶을 유연하게 대하는 몸과 마음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세상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글을 읽고 싶다. 그런 글을 읽으면 살고 싶어지고, 쓰고 싶어지고, 그리고 종종 전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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