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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내 인생의 주역 2』 지은이들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4. 5. 20.

『내 인생의 주역 2』 지은이들 인터뷰

 

1. 『내 인생의 주역 2』는 ‘인문학 공부’와 만난 『주역』 이야기입니다. 인문학 공부공동체에서 짧게는 칠팔 년, 길게는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부하고 계신 선생님들에게 『주역』은 어떤 책일까요?


전현주 : 『주역』은 점서(占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점서를 읽으면서 군자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점서와 군자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주역』을 공부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주역』이 알려주는 점괘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점을 본다’고 했을 때 나오는 내용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전에 저는, 결정된 미래가 있고, 그것을 알려주는 것을 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점은 그러한 미래는 고려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점을 본 사람에게 괘사를 통해 지금 그가이 속한 상황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효사를 통해 그때 행동할 구체적 방향을 보여 줍니다. 점괘가 말해 주는 것은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그 상황에 적절한지입니다. 


점괘가 말해 주는 적절한 행동이 ‘군자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주역』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저는 그동안 자신만을 생각하고 세상을 좁은 눈으로만 바라보는 ‘소인(小人, 작은 사람)’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괘사와 효사들이 보여 주는 군자됨은 저의 시야를 넓게 해주었고 소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를 깨닫게 했지요. 그리고 저로 하여금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가끔 제 삶에서 만나는 일에 관해 주역점을 보고 그것이 조언하는 대로 행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통쾌해졌습니다. 군자적 마음을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게 알려준 책 『주역』. 이 책은 한 걸음씩 나의 소인적 면을 내려놓고 군자적 삶을 향해 가도록 합니다. 

안혜숙 : 지금은 건너뛰는 날이 많지만, 한때 아침마다 주사위를 던졌었답니다. 한창 『주역』을 배울 때였죠. 주사위 주역점은 한 번만 던지면 되니 얼마나 쉽고 편한지!(물론 시초점과 동전점에 비해서 그렇습니다.) 주사위를 던지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괘와 효사가 눈앞에 짠~ 하고 펼쳐질 때의 짜릿한 재미란!^^ 재미도 재미지만 처음 주역점을 배우고 나서, 시초점은 작정하지 않으면 치게 되지 않아 어쩌다 가끔 동전점을 쳐보곤 했는데, 그러다 문득 알아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주역』 괘와 효사가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말이죠. 『주역』을 배우고 익히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구나! 했지요. 그렇다고 매일 경건한 모드로 시초점이나 동전점을 치게 되진 않았고, 그냥 놀이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묻고 던졌습니다. 그날 있을 일에 대해 묻기도 하고, 별달리 물을 게 없으면 오늘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는 게 좋을까요? 오늘의 나의 괘와 효사는? 하면서 던졌습니다.  


재밌는 건 다른 날, 다른 상황, 다른 질문인데 똑같은 괘(卦)와 효(爻)를 만나게 될 때였습니다. 당연히 그 의미도 그때마다 다르게 해석되지요. 어떤 경우엔 그 상황 자체에 대한 판단―선택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같은―으로 분명히 받아들이게 되고, 어떤 경우엔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자신의 마음상태나 관계를 보게 했습니다. 때로는 질문 내용이나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괘와 효사가 나올 때가 있었어요. 왜 이런 괘가 나왔을까…? 곰곰 생각하다 보면 그런 질문 자체를 한 내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죠(이런 질문은 소인의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너 자신이 너의 마음을 알고 있지 않냐고…등등 ^^;;). 때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해석이 난감한 경우도 있었고요. 정말 그때그때 다릅니다!

 

『주역』의 메시지는 천지자연, 우주의 원리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나온 통찰을 인간사에 적용해 나온 것입니다. 나는 그저 내가 처한 자리에서 내 깜냥만큼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입니다. 매번 새롭게 펼쳐진 점괘는 지금 여기에서 마주한 내 삶의 한 국면이고, 그 앞에서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잊고 있었던 조건이나 관계, 그 속의 내 마음을 새롭게 상기하거나 보게 됩니다. 시시비비 분별하는 마음이나 사심을 발견하고, 매번 그 자리에 천지자연의 이치를 비추어 보게 하니 이보다 고급진 놀이가 없지요. 일상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하고 유익하고 든든한 점서, 제게 『주역』은 그런 책입니다.

 



김희진 : 저는 흥분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텍스트를 보고 격동될 때도 많고, 공감이 갈 때는 감정이입을 쑥~ 합니다. 그래서 문학도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하죠. 거기엔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너무 어렵거나 무미건조한 책은 잘 안 읽는데,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아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역』은 한자가 어렵고 마음을 격동시키지 않는데도 너무 재밌습니다. 주인공이 따로 없는데도 스토리가 있고, 계속 다이내믹하게 변하는 국면 가운데 그 변함을 바라보는 관조(觀照)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을 읽거나 암기하고 나면 감정의 출렁임이 가라앉는 효과가 있습니다. 흥분지수가 높은 저에게 『주역』은 수양(修養)의 텍스트입니다. 


제가 과도한 감정이입을 경계하는 이유는 제 감정의 정당성을 확인하면서 그걸 고수하려는 태도를 고치고 싶기 때문인데, 『주역』의 스토리에는 감정이입을 할 대상이 없습니다. 조건과 상황만  끊임없이 변할 뿐 지속되는 주체가 없으니 고수할 감정은 물론, 고수할 조건도, 고수할 옳음도 없지요. 시시각각 변하는 『주역』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뿐 아니라 저 자신도 변한다는 걸 보여 줍니다. 어떨 때 우리는 소인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다른 국면에서는 대인의 마음가짐을 갖기도 하지 않던가요. 어떤 때는 좋게 생각되던 조건이 시간이 지나면 나를 발목잡는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어제의 좋은 친구가 오늘은 떨쳐내야 할 동류(同類)가 되지 않던가요.

 
이 변화 속에서 내가 고수하려던 상(像)은 끊임없이 해체됩니다. 어제의 상을 붙잡고 오늘을 재단하며 흥분하는 건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주역』은 제게 더 넓고 깊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접속하며 나의 변용을 관조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이번 생에 『주역』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근영 : 『주역』과의 첫 만남은 저에겐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괘의 해석은 일관되어 보이지 않았고, 효사들은 따로 노는 듯했죠. 천지자연의 이치를 담았다기엔 똑 부러지는 구석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주역』은 비합리적인 텍스트였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비합리야말로 『주역』이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주역』은 ‘때’를 다룹니다. 때란 변화가 발생하는 순간, 즉 ‘사건’의 시공간이고요, 사건은 언제나 일상의 맥락을 끊고 들어옵니다. 해서 기존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죠. 이제껏 사용하던 삶의 문법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 시공간의 특이점! 이 비합리의 순간이, 사건의 장이 『주역』의 무대입니다. 


우리 삶은 사건들 속에 있습니다. 잘 흘러가다가도 삐끗하기 일쑤인 게 삶이고, 그 덕분에 새로운 변화가 가능해지는 게 삶이죠. 그럼에도 막상 사건의 시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막막해집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죠.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삶의 특이점을 어떻게 통과해야 할까. 『주역』은 바로 이 질문 위에 서 있습니다. 하여 『주역』은 삶의 현장과 만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합니다. 책 안에서는 비합리적이게만 보이던 말들도 삶의 사건과 만나면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가 됩니다. 때를 보는 눈과 사건을 이해하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선물하는 것이죠. 『주역』은 이처럼 삶의 특이점들을 펼쳐 보이며, 이를 통과하는 지혜를 모색합니다. 해서 저는 이제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역』이 주는 당황스러움을 말이죠. 좋든 싫든 삶은 비합리적인 그 사건의 시공간을 통해서만 흘러갈 수 있으니까요. 

문성환 : 언젠가 히말라야의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범죄자(수감자)가 거의 없고, 누군가 자살이라도 하면 신문 1면에 실린다는 나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이면서 BTS와 블랙핑크의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호기심과 성찰이 동시에 들었던 것은 아마도 어떤 무의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반면 미국의 유명한 한 작가는 한국을 여행하고 난 인상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압박과 경쟁 등에 내몰리는 사회이면서 단점만 남은 유교와 자본주의의 국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대목이 딱히 없습니다. 물론 단순 비교는 위험합니다. 올해(2024년) 발표된 전세계 행복지수에 따르면 상위권에는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잘 사는 북유럽 국가들이고 하위권 국가들은 주로 최빈곤층인 아프리카 국가들입니다.(참고로 한국은 50위권입니다.)^^ 


어느 나라가 진짜 더 행복한 나라인가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행복인가를 따지려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객관 지표로 증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적인 것일 뿐 아니라 저마다 어떤 가치로 체감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옛날이 좋았네…’라고 혀를 찰 만합니다. 그런데 조부모님 세대들의 옛날은 일제시대이고, 부모님 세대의 옛날은 군인 독재시대였고, 선후배 세대의 옛날은 IMF 시절입니다. 그 중 어느 시대가 어떻게 더 좋은 것일까요. 


저는 『주역』에서 말하는 ‘때(時)’라는 말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아무리 행복한 나라의 국민이라도 거기에도 자신은 아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극심한 내전중인 혼란한 공동체일지라도 그 속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보고 있고, 누군가는 삶을 긍정하며 살길을 찾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매순간 어떠한 ‘때’를 만났을 뿐이고, 만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역』에는 ‘월기망’(月旣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석자에 따라 정반대 의견도 있지만, 대체로 월기망은 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말로 풀이됩니다. ‘달이 거의 보름에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달은 가득 찼을 때가 가장 좋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그 순간으로 나아가는 때이면서, 그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월기망입니다. 그러므로 월기망은 가장 좋은 상태여서가 아니라 가장 좋은 상태를 틀림없이 앞두고 있는 길(吉)한 조짐인 것입니다. 인생에 월기망의 때가 있다면 아마 반대의 때도 있을 것입니다. 


부탄의 행복지수나 헬조선 한국의 현실을 『주역』의 길과 흉에 관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길한 것은 길한 대로 흉한 것은 흉한 대로 제대로 겪어내야 한다는, 그렇게 겪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는 인생의 진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주역』은 길과 흉에 관한 지도입니다. 그 지도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인생의 길이 단지 길하기만 하거나 흉하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면 쉬운 길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게 보이고 험한 길에는 의외의 성취가 발견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지금 시대에 『주역』을 왜 배워야 하고, 『주역』을 배워서 좋았던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영주 :  『주역』은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을 베이스로 삼는 텍스트입니다. 바야흐로 AI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인 지금, 왜 하필 『주역』을 배워야 할까요.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위치와 마주한 상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마주한 ‘때’[時]를 잘 겪기 위해서입니다.  


‘수시변역(隋時變易)’, 모든 것은 변합니다. 때를 알아야만 때에 맞게 내가 마주한 상황을 잘 겪어 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AI가 인간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길(吉)과 흉(凶)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AI가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은 시대가 정해 놓은 기준일 뿐이며, 결국 그 정보를 수동적이거나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나의 때를 알고, 그 때에 맞게 실천할 수 있는 윤리를 『주역』에 질문하고, 실천하는 기쁨을 알게 된다면 내 삶의 길을 능동적으로 열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주역』은 능동적인 실천과 기쁨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주역』의 64개의 때를 알고 386개의 효(爻)로부터 자신의 위치(位)와 그에 맞는 상황을 파악한다면, 어떠한 때를 마주하더라도 길이든 흉이든 그때 자체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역』은 관계의 텍스트입니다. 64괘는 물론이거니와, 각 괘의 여섯 효는 독립적이지만 서로가 상호관계적입니다. 즉 마주한 때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주역』을 배워야 할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윤지 : 처음 『주역』을 배울 때 난관도 이런 난관이 없었습니다. 매주 몇 괘씩 외워서 시험을 치르는데 도통 뜻도 파악하기 어려운 한자를 외우고 틀리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 제 성적은 주로 하위권이었는데 이렇게 근근이 따라가기 위해서도 일주일 내내 중얼중얼 괘사며 효사를 외워야 했습니다. 하루는 초등생이던 딸이 학교에서 오더니 친구들과 끝말잇기 놀이를 했는데 “군”이 나와서 자기도 모르게 “군자유유왕”이라고 했다나요.^^;; 엄마가 날마다 『주역』을 외우고 있으니 뜻도 모르는 말이 아이 귀에도 쑥 들어갔던 것입니다. 아이에게 어쩌다 잔소리가 아닌 『주역』 구절을 듣게 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자 할 만큼 『주역』 공부는 제게 난항이었습니다. 


그러나 더듬더듬 『주역』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도반들과 함께 공부를 해나가면서 그토록 어렵기만 하던 구절들이 조금씩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역』을 나와 가족, 친구와 지인들의 상황에 적용할 때면 『주역』의 함축적인 문장들은 수천 년의 시공을 지나서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주역』의 괘사나 효사에 상황을 비추어 보면 내 안의 집착도 보이고 내 마음이 향하는 욕망도 성찰하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때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는 것입니다. 연구실에서 공부한 『주역』의 매력은 도반들과 함께 옛 스승들의 해설을 등불 삼아 이런 해석의 스펙트럼을 마음껏 글에 적용해 보고 서로 조언해 줄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탐구해 간 『주역』의 메시지들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좌표가 어떤 변화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겪어 가야 하는지도요. 『주역』은 그렇게 저에게 지혜로운 조언자이자 삶의 네비게이션이 되었습니다.

 



송형진 : 『주역』을 왜 공부하게 되었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요. 어느 날 <감이당>에서 ‘『주역』 강의 프로그램’을 보고 신청한 것이 『주역』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점을 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제가 『주역』이 점서라는 초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주역』에 끌렸다는 것이 저 스스로도 의아하긴 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일이기도 하고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던 할아버지께서 『주역』 공부를 하셨다는데, 그 기운이 제게 전달된 것일까요.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강의 신청을 한 후 틈나는 대로 『주역』을 읽었습니다. 『주역』을 읽기는 했지만 ‘공부한다’ 혹은 ‘즐긴다’라는 생각은 아니었죠. ‘즐기는 공부를 한다’라는 생각으로 바뀐 전환점은 64괘의 괘사와 각 효사들을 다 외워서 쓰기를 해낸 이후였습니다. 외워서 쓰기는 괘사와 효사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주역』 공부가 시작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주역』 공부의 매력은 사골을 끓이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듯합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해석이나 이해가 달라집니다. 그 의미가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만 파악되었다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지지요. 그렇게 다가온 의미는 삶의 큰 지혜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주역』의 곳곳에 그런 ‘보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보물들을 하나하나 캐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주역』은 그렇게 삶의 지혜를 주는 ‘보물창고’입니다.

성승현 : 저의 『주역』 입문은 꽤 고단했습니다. 원문 『주역』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매주 한두 괘의 시험을 봐야 했죠. 외계어에 가까운 『주역』 공부에 대한 저항감은 꽤 강했습니다. 외우기까지 해야 하나? 읽을 책도 많은데…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늉만 했던 것 같네요. 그 와중에 원문을 읽어 가는 것에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해석해 가면서 내용이 완성되는데, 한자가 그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점점 수업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고, 그렇게 『주역』에 서서히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장벽은 높았지만, 『주역』만큼 실용적인 학문이 없다고(아.. 사주명리가 걸리지만 ^^;) 말이죠. 『주역』은 발상의 전환을 하게 합니다. 『주역』을 떠올리는 것은 주로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입니다. 주역점을 치면, 해석의 툴을 선물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문제를 ‘싸움의 기술’로 접근해 보라고 한다든지, ‘함께 도모하는 것’으로 접근해 보라고 합니다. 기쁨으로, 절제로, 성장으로, 어리석음 등으로 해석해 보라는 것이죠. 내가 고집하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롭게 주어진 키워드로 해석하다 보면 사건이 다르게 보입니다. 또 어렵고 멀게 느껴졌던 타인이 새롭게 읽히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의미한 것은 세상을 길흉의 관점으로 보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좋은 일도 좋지만은 않고, 나쁜 일도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로 둔갑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확장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주역점을 많이 치면 칠수록 공부 기회가 덩달아 늘어납니다. 괘의 수가 64가지이고, 효는 총 384개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듯, 자꾸 보지 않으면 괘도 잊혀져 갑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주역점을 치는 때도 있지만, 『주역』 공부를 하기 위해서 소소한 문제들로 주역점을 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조금씩, 늘’ 할 수 있는 공부가 『주역』입니다. 생활 밀착형 『주역』 공부, 다 함께 합시다. 

이경아 : 『주역』을 배워서 좋았던 점은 때를 알고 거기에 맞는 마음가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사건을 만나면 상황 파악이 잘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문제가 생겼다면 내가 싸워서라도 문제를 돌파해야 하는지? 참고 지켜봐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감이 없는 편입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사건을 상대와 나와의 일대일의 문제로 보고 수습하기에 바빴습니다.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보다는 감정을 앞세우거나 당위로 풀면서 참고는 했지요. 그런데 『주역』은 내가 어떤 때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만약 내가 이런 고민으로 주역점을 쳐서 천산 둔괘가 나왔다고 해보죠. 천산 둔괘는 소인이 성장하는 때이니 전략적인 후퇴를 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려줍니다. 무리하게 상대를 고치려고 하거나, 내가 옳다고 우기면서 싸워 봤자 상대의 힘만 강하게 해줄 뿐이라는 것이죠.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산 둔괘의 육효는 물러남의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를 보여 줍니다. 내가 만약 초효라면 아직 초기라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니 섣부르게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구오라면 이룬 것이 아쉽지만 박수칠 때 떠나야 하고, 상구라면 이미 물러나서 거리 두기가 된 상황이니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처럼 『주역』은 나의 상황과 위치를 알려주며 내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주역』은 하나의 사건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과 위치에 따라 계속 변함을, 그때그때 대처 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저는 평소에 한 번 정한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주역』을 처음 배울 때는 변화에 대한 사유가 어려웠습니다. 원칙을 이랬다저랬다 바꾸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주역』을 통해 모든 것은 변하며 때에 맞게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때에 맞지 않은 바름이란 고집일 뿐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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