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12) : 정치사상가로서의 탁월성 ①
노자에서 한비자로 : 도가와 법가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의 평가하는 글[贊]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자가 귀하게 여기는 도는 허무로, 무위(無爲)하면서 사물에 따라 응대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의 언어가 미묘해 알기 어렵다고 하겠다. 장자는 도덕을 폭넓게 해석해 마음껏 논의를 벌였는데 요체는 역시 저절로 그러한 상태[自然]로 귀착한다. 신자(申子, 신불해)는 부지런히 애써 명칭에 따라 실상을 따지는 일에 주장을 펼쳤다. 한자(韓子)는 법률을 가져와 일의 실정에 들어맞도록 했으며 시비를 밝혔으나 극단에 이르러서는 잔인하고 각박해 은혜가 적었다. 이들은 모두 도덕이라는 뜻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노자가 심원했다.”[老子所貴道, 虛無, 因應變化於無爲, 故著書辭稱微妙難識. 莊子散道德, 放論, 要亦歸之自然. 申子卑卑, 施之於名實. 韓子引繩墨, 切事情, 明是非, 其極慘礉少恩. 皆原於道德之意, 而老子深遠矣.]
대충 번역했지만 사마천의 언어는 개념어로 구성되어 독해가 만만치 않다. 각 학파의 언어와 개념, 함의와 지향을 파악할 때 이해에 가까워질 수 있는데 사마천이 파악한 각 학파의 성격은 후대의 일반적인 이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신불해를 명실(名實)로 설명했는데 앞서 보았던, 술(術)을 깊이 이해한 사상가로서의 면모와 충돌하지 않는다.
노자와 한비의 관계가 테마이니 두 사람에게 집중하자. 주목할 말은 “이들은 모두 도덕이라는 뜻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노자가 심원했다”[皆原於道德之意, 而老子深遠矣.]는 문장이다. 말을 바꾸면 도덕의 의미를 노자가 가장 깊이 통찰했다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이 쓴 “미묘난식”(微妙難識)이라는 표현은 “심원”(深遠)이라는 말과 호응한다.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 입전된 인물을 모두 도덕이라는 키워드로 관통했는데 한비의 사상적 근거가 노자에서 기원했음을 통찰한 것이다. 그 증거가 「해로」(解老)다.
「해로」(解老)에는 도덕에 대한 심오한 주석이 보인다. 『노자』 38장 “상덕은 무위(無爲)하지만 하지 않는 게 없다”[上德, 無爲而無不爲也]는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한비는 말한다. “인위(人爲)하지 않음[無爲]과 생각하지 않음[無思]을 귀하게 여겨 텅빔[虛]이라 하는 까닭은 생각이 통제 받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인위적인 어떤 방법도 없기 때문에 인위(人爲)하지 않음[無爲]과 생각하지 않음[無思]을 텅비었다[虛]고 보는 것이다. 굳이 인위(人爲)하지 않음[無爲]과 생각하지 않음[無思]은 텅 빈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항상 텅빔을 잊지 않으므로 이는 비워야 한다는 의식에 통제받는 것이다. ‘비었다 함’[虛]은 생각이 통제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제 비워야 한다는 의식에 통제받고 있으니 이는 비었다고 할 수 없다. 허(虛)를 무위(無爲)라 하는 것은 무위를 항상 그러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의식을 갖는다는 말이 아니다. 무위를 항상 그러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을 때 곧 허(虛)가 된다. 허(虛)하면 덕(德)이 왕성하게 생기고 덕이 왕성하게 생긴 것을 상덕(上德)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상덕은 아무런 인위적인 행동도 하지 않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所以貴無爲無思爲虛者, 謂其意無所制也. 夫無術者, 故以無爲無思爲虛也. 夫故以無爲無思爲虛者, 其意常不忘虛, 是制於爲虛也. 虛者, 謂其意無所制也. 今制於爲虛, 是不虛也. 虛者之無爲也, 不以無爲爲有常, 不以無爲爲有常則虛. 虛則德盛, 德盛之謂上德. 故曰:“上德無爲而無不爲也.”]
잘 설명한 말이다. 한비는 상덕을 성덕(盛德)으로 풀었고 성덕은 허라 했다. 허는 무위를 말하며 무위는 무위 자체를 마음에 두지 않고 의식[意]하지 않을 때 허가 된다고 했다. 한비의 관심은 허에 있지 않고 무불위에 있다. 무불위로 이동해야 정치사상으로 변모한다. 노자는 상덕을 무불위라고 보았는데 이 상덕을 구체화해서 사회운영 원리로 혹은 통치의 토대로 삼으면 법이 된다. 무불위의 원리로서 덕을 풀었던 것. 사마천이 “노자가 귀하게 여기는 도는 허무”라고 했는데 한비는 허의 함의를 꿰뚫어 보았기에 이런 주석이 가능했다.
도에 대한 한비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도는 만물이 그렇게 존재하는 바탕이며 모든 벼리가 모여드는 토대다. 벼리는 만물을 이루어 주는 질서원리이며 도는 만물이 이를 통해 각자의 모습을 이룬다. 그렇기에, ‘도는 벼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물은 벼리를 지녔기에 서로 압박하지 않는다. 만물은 벼리를 지녀 서로 압박하지 않기 때문에 벼리는 만물을 제재(制裁)하는 존재다. 만물은 각자 다른 벼리를 가졌지만 도는 만물의 다른 벼리를 전부 모아 갖는다. 그러므로 도는 무엇으로든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으로든 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원칙을 갖지 않는다. 일정한 원칙을 갖지 않기에 이 때문에 삶과 죽음이라는 기운을 얻으며 온갖 지혜를 써서 짐작하고 따져 보며 온갖 일이 생기고 사라진다. 하늘은 도를 얻어 높아지며 땅은 도를 얻어 만물을 간직하며 북두칠성은 도를 얻어 기준을 성취하며, 해와 달은 도를 얻어 그 빛을 항상 내며...성인은 도를 얻어 제도와 문물을 완성한다....우주의 만물은 도에 의지해 완성되는 것이다....”[道者, 萬物之所然也, 萬理之所稽也. 理者, 成物之文也. 道者, 萬物之所以成也. 故曰:道, 理之者也. 物有理不可以相薄. 物有理不可以相薄, 故理之爲物之制. 萬物各異理, 而道盡稽萬物之理, 故不得不化. 不得不化, 故無常操. 無常操, 是以死生氣稟焉, 萬智斟酌焉, 萬事興廢焉. 天得之以高, 地得之以藏, 維斗得之以成其威, 日月得之以恒其光....聖人得之以成文章....宇內之物, 恃之以成....]
도에 대해 깊이 사색했음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성인이 제도와 문물을 만들었다고 진술할 때 이 말은 제도의 창시자로서 언급한 것으로 한비의 구도 속에는 제도로서 법이 포함된다. 도의 관점에서 제도가 도출됐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우주의 만물은 도를 의지해 이뤄진다”[宇內之物, 恃之以成]는 말도 이 뜻을 반복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발언은 또 있다. 한비는 “일정한 원칙을 갖지 않는다”[無常操]고 발언했는데 유가의 주장에서 고정된 보편원리로서의 고(古)에 대해 비판한 말이다. 변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도를 파악했기에 가능한 말이다. 도를 파악하는 관점이 유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비가 『노자』를 주석한 이유도 여기서 짐작할 수 있다. 한비에게 법은 통치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법은 만물을 포괄하는 도에 근거를 두었기에 제왕(帝王)의 정치도구가 아니라 제왕까지 감싸는 상위 원리였다. 법의 근원으로서의 도와 덕.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법. 하위 실행규칙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공간으로서 법을 본 것이다. 법은 약속이나 계약으로 규정되는 것을 넘어 도(道)라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사회 존립의 원칙에서 나와야 했기에 한비는 도덕을 깊이 탐구했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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