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인 로봇적인』 지은이 인터뷰
"제가 덜 나쁜 사람이 된건 SF소설 때문이었어요"
1. 『우주적인 로봇적인』에 실린 글들에서 SF소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 주고 계신데요. SF와 사랑에 빠지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책에서도 소개한 프레데릭 브라운의 낡은 세로글씨 판본 『미래에서 온 사나이』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아버지의 서가에 꽂혀있던 그 책이 SF를 사랑하게 된 단 하나의 계기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책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짧고 발랄한 단편들을 찬찬히 짚어 읽으면서 SF의 전매특허인 짜릿한 경이감에 어렴풋이 눈뜨지 않았었나 싶어요.
SF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데에는 학급문고도 한 몫 했습니다. 요새도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아이들에게 책을 내게 하여 학급문고를 구성하곤 했어요. 저는 매년 학년이 올라갈 때, 또 전학을 할 때마다 가장 설레는 게 그거였습니다. 새로운 구성의 학급문고를 만나게 되는 일이요.
칠판 오른쪽 아래나 교실 뒤쪽, 나지막한 책장에 학급문고가 빼곡이 꽂혀있곤 했는데요, 저는 거기서 이른바 ‘세계명작’들에는 별반 흥미가 없었어요. 워낙 일찍부터 책벌레였던 탓에 안 읽은 책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었죠. 우리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는 비(非)명작 계열의 온갖 어린이 도서를 거기서 만날 수 있는데 그 재미난 걸 두고 뭣하러 굳이 ‘명작’을 갖다 읽고 싶겠어요? 어린이용의 SF소설, 추리소설, 괴담집들이, 약간 조잡해서 더 매혹적인 표지를 하고서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는데 말이죠. 저는 매년 매 학기의 그 책장들을 통해 엉성한 번안소설들과, 매우 교육적이지만 상상력이 기발한 어린이용 창작 SF소설들을 다종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28일후』에 모티브를 준 『트리포드의 날』도 어느 학년에서인가의 초등학교 학급문고로 처음 접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 책이 어린 마음에 안겨준 충격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맨눈으로 별똥별을 보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결심을 거의 10년간 실천한 게 이제와 조금 억울하기도 하네요.
2. 책의 부제에 ‘생활에세이스러운’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생활 혹은 삶과 SF소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듯한데요. 선생님의 삶에 SF소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성장기에 표준전과와 수학의 정석을 맹신하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이 딱 그런 곳인 줄 알았어요. 전과와 같은 곳. 수학의 정석과 같은 곳. 흔들림 없는 사지선다의 정답이 있고, 만사에 가장 효율적인 답안이 존재하는 곳 말이죠. 경쟁을 자연스럽게 내면화 한 ‘요즘 애들’이었고, 승자독식의 세상에 별다른 유감이 없는 비정한 신자유주의자였습니다.
SF소설이 천지개벽 대오각성의 은혜를 내려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긴 세월 끊임없이 제 눈앞에 각양각색의 희한한 렌즈를 들이밀며 ‘정답’을 의심하게 하고, 단정적이었던 마음에 꾸준히 균열을 내 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날카로운 선언문이나 어려운 논문으로써가 아니라, 와닿는 풍경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써요. 생각해본 적 없는 다양하고 정교한 사고실험을 통해서요.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약자란 어떤 것인가, 사회규범이라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가, “원래 그런 것”이란 도대체 얼마나 “원래 그런” 것이란 말인가.
제가 지금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쉼없이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준 SF 덕분에 최소한 덜 나쁜 사람이 된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아주 사소하지만 주머니 사정에는 중요했던 영향 하나도 말하고 싶어요. 이 장르는 물론 제게 꿈과 희망과, 세계관과 우주관과, 재미와 오락과 카타르시스와 가보고 싶은 공간과 오래 살아 더 많은 미래를 구경하고 싶은 욕심 등등 수많은 좋은 것들을 선사해주었지만, 그와 함께 슬프고 고약한 버릇까지 들여 주었답니다.
사실 제가 살아오는 동안, 이즈음만큼 SF 출판이 중흥한 시대가 없습니다. 요새처럼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 제가 책을 다 사기를 포기해버렸을 정도니까요. 출간되는 책을 다 안 산다는 게 당연해보이지만, 그동안의 역사를 톺아보면 이게 얼마나 감개무량한 상황인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정말, 가물에 콩나듯 띄엄띄엄 띄이이이이이이이엄한 주기로 책이 나오곤 했어요. 그나마도 미적거리고 있으면 더 큰 화를 당하게 됐고요. 바로 절판사태이지요. SF는 워낙 적은 수만을 찍어내기 때문에, 넋놓고 있다가는 책을 아예 구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왕왕 있었습니다. 지나간 후에 땅을 치며 안타까워 하다가, 중고로 두 배, 세 배 가격을 주고 산 적도 있어요.
그런 연유로 저한테는 본의 아니게 고약한 소비 패턴이 생겨버리고 만 것입니다. SF 신간이 세상에 나와 있는 걸 보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일단 사놓고 보게 된 거죠. 그렇게 돈을 써댄 수십년간, 저는 열렬히 진심이었습니다- 셧업 앤 테이크 마이 머니(Shut up and take my money!)
3. 이 책에서 스무 권 남짓한 SF소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강권’하고 싶은 책(or 작가)과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훌륭한 소설들 가운데 겨우 스무 편 남짓을 힘겹게 추려냈는데 거기서 다시 또 추려내라니 참으로 가혹한 요구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어떤 책을 추천할지가 달라질텐데요. 추천 받으시는 분이 SF를 많이 접해보지 않으셨다는 전제 하에, 작가 별로 이야기해볼게요.
탄탄하게 세워진 과학적인 정합성 위에서 강력한 경이감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아서 C. 클라크를 추천합니다. 특히 『라마와의 랑데뷰』는 이 책에 싣지 않았지만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경이감을 안겨주는 작품이에요. 『유년기의 끝』도 그렇고요. 엄밀하면서 아름답지요.
지적인 내러티브를 따라가며 사회문화적으로 중층을 이루는 의미들을 곱씹어보고 싶다면 테드 창의 단편집을 추천합니다. AI의 인격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중편 『소프트웨어 객체 의 생애 주기』도 훌륭합니다.
건강한 윤리의식과 오락성을 한꺼번에 보장하는 영웅담을 읽고 싶다 하시면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권하겠습니다. 문학성과 인문학적 지성을 아우르는 SF를 원하신다면 어슐라 K. 르 귄의 작품들이 정답입니다. 웃고 싶으신가요? 블랙유머라면 커트 보네것이죠. 쾌활한 수다라면 코니 윌리스고요. ‘약 빤 것 같은’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고 싶다면, 필립 K. 딕이 여러 편 써주어서 우리 곳간이 넉넉하네요.
어딘지 깍쟁이같은 런던의 분위기를 원하신다면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가 제격입니다. 인도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를, 그 옆 나라 스리랑카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아서 C. 클라크의 『낙원의 샘』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단 하나의 작품, 단 하나의 작가만을 강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여전히 물음표가 퐁퐁퐁 솟아나지만, ‘다른 사람 아닌 네가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냐’고 질문을 바꾸어주신다면, 이때는 제 취향에 입각해 확실한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어슐라 K. 르 귄의 단편집을 집어들겠습니다. 그 작가의 세계관, 깊이있는 사회의식,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해서, 백 번을 읽어도 안 질릴 자신이 있거든요.
4. SF 장르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소설이 영화화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SF를 소설로 만날 때 더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모든 SF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과학 이론이 주제나 스토리에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는 경우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복잡한 수준이건 단순한 수준이건 간에, 이런 이론들을 영상 내러티브에 녹여내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일 거예요. 예를 들어, 페르마의 정리는 테드 창의 작품 『네 인생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물리학 이론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다루는 핵심 아이디어가 거기서 나왔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에요. 하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 『콘택트』에서는 페르마의 정리가 거의 언급되지 않죠. 영화가 그 자체로 훌륭했기 때문에 거기에 무슨 불만이 있진 않습니다. 감독의 취사선택도 이해가 가고요. 빛이 이렇게 꺾이고 저렇게 꺾이고 어디에 가닿고 어쩌고 저쩌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가는 영화적 흐름 따위는 안드로메다의 소실점 너머로 아스라히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페르마의 정리를 거론하지 않는 것, 그것은 아주 영화적인 전략, 효과적인 소거였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요. 원 없이, 충분히, 자세히 설명해주어도 됩니다. 종이와 잉크는 꽤 넉넉한 자원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더 해박하고, 더 엄밀하고, 더 세밀해집니다. 덕분에 배가되는 지적인 쾌감은 중요한 덤이겠지요?
사실 저는 SF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세부 해상도의 측면에서 영상보다 텍스트가 더 강점을 갖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결코 우열의 문제는 아니에요. 다만 영상 콘텐츠에서는 ’팔.락.이.는. 잎.사.귀.’를 씬의 배경에 통합적으로 녹여내 보여준다면, 책에서는 7개의 음가를 가진 7개의 문자가 시간 순으로 또박또박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온 연후에야 의미가 구성되기 때문에, 저 ‘잎사귀’에 주의를 기울이는 체감 시간이 다른 요소보다 결코 덜하지 않게 되거든요. 시간과 주의의 측면에서, ‘팔락이는 잎사귀’를 읽을 때와 ‘마일즈는 움찔했다’를 읽을 때가 별 차이가 안 나게 되는 거죠. 잎사귀는 지나가는 풍경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고 마일즈는 무려 시리즈의 주인공인데도 말이죠! 저는 텍스트의 그런 특징이 세부에까지 주의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은근히 개인화된 장면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합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마일즈 뒤로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펄럭이는 풍경이었던 게, 중국인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대나무 잎사귀의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5. 지금은 어떤 SF소설을 읽고 계신가요? 앞으로 읽고자 하는 SF소설의 목록도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는 『종이동물원』을 읽었습니다. 테드 창도 그렇더니 켄 리우도 그렇고, 마이크로소프트 다닌 이력이 있는 미국의 중국계 작가들은 어쩌면 이렇게 다 잘 쓰는 걸까요. 마이크로소프트에 혹시 SF작가양성 사관학교라도 있는 걸까요.
오늘은 코니 윌리스의 『블랙 아웃』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 다룬 『화재 감시원』과 동일한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에 속하는 장편입니다. 후속작인 『올 클리어』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연이어 나와주어 무척 기분이 좋아요. 시리즈를 중단 없이 이어서 볼 수 있으니까요. 변방의 장르 팬이 평생 느껴올 수밖에 없었던 서러움을 아신다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특혜인지 짐작이 가실 거예요. 시즌제 미드를 볼 때 자주 겪는 일- 그러니까 뿌려주는 대로 떡밥을 잔뜩 삼켰더니 1년의 기다림을 요구하며 뚝 끊어버리는 비정함 있지 않습니까. 장르문학을 좋아하면 그 애끓는 기다림이 1년이 아니라 3년, 4년, 5년이 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후속작 이어보기를 아예 포기하게 되는 일은 더 흔하고요. 안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다니 이 얼마나 행운이고 복인지 몰라요. (잘 선별된 SF 작품들을 쉼없이 출간해주시는 출판사 아작께 이 자리를 빌어 뜨거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시리즈 다음으로 볼 책도 골라두었습니다. 곽재식 작가님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데, 작년말 나온 『한국괴물백과』를 아직 읽지 못했거든요. 『올 클리어』 다음에는 그 책을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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