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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22

[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 기쁨이어라, 삶이여, 죽음이여! 기쁨이어라, 삶이여, 죽음이여! 죽음 충동과 마주하며 쭈뼛거리는 친구들 틈에 있다가 금방 나오긴 했지만, 그 이후로 마음 한 쪽 구석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계속 돌아간다. 이렇게 젊은이들뿐인 장례식이라니. 당연히 ‘왜’에 대한 답을 구할 수도, 감히 그 심경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을 테다. 그런데도 자꾸만 비슷한 물음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대체 그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체험되었을까? 어떤 색 어떤 톤으로 비춰졌고 무엇이 그토록 견디기 어려웠을까? 반대로, 어떻게 그 동안은 사는 쪽을 택해왔던 걸까? 대답이 나올 리 없는 이 의문들이 한참을 물결치고 나서야 비로소 초점이 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가.. 2022. 11. 30.
[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 자족(自足)이라는 이름의 풍요 자족(自足)이라는 이름의 풍요 스톱, 피터팬 코스프레 돈에 대한 생각은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진지함의 정도로 따져보면 나는 돈을 우습게 여기는 편이다. 타고나길 저렴한 취향 때문인지 공동체 환경에서 자라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돈의 위력을 잘 몰랐고, 돈 쓰는 것을 버는 것만큼이나 내켜하지 않는다. 물론 한창 학교 다닐 때, 특히 알바를 할 때는 넉넉히 용돈 받는 애들이 부러웠지만 그때뿐이었다. 돈이 뭐 대수인가? 조금 벌어 조금 쓰면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게 내 신조였다. 그래서 내게 낯설고 거북했던 것은 모든 가치가 일단 쉽게 많이 버는 데 있는 것처럼 구는 분위기였다. 입시-학점-취업-승진의 코스는 꼭 그 목적을 위해 짜인 것 같았다. 치솟는 서울살이 비용이 그 코스를 정당화해주는 듯했.. 2022. 11. 2.
[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 표상은 영혼을 잠식한다 표상은 영혼을 잠식한다 정념이라는 불, 표상이라는 장작 내 나이 스물여섯,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내가 겪는 모든 괴로움의 팔 할은 한 쌍의 표상에서 생긴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너’와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될 나’. 이것이 소용돌이 같은 마음의 소란을 휘젓는 쌍두마차다. 가만 생각해보자. 분노나 억울함에 휩싸일 때, 미움이나 시기심이 일어날 때, 두려움이나 가책에 시달릴 때 그런 정념들의 불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해야만 하는’ 너와 나라는 표상이다. 물론 여기서의 ‘너’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물이나 사건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 친구, 학인, 애인, 선후배, 스승, 정치인 등의 사람들에 대해 각양각색의 이미지와 기대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피부, 몸매, 병.. 2022. 9. 6.
[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 나는 시뮬라크라들이다 나는 시뮬라크라들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존재론 일기, ‘진짜 나’를 찾는 시간 제일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고민 없이 답할 수 있다. 일기 쓰기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하루를 마치고 머리맡 스탠드 조명 아래서 시그노 0.38 볼펜으로 쓰는 일기’이지만, 꼭 이렇지는 않아도 된다. 기숙사 세탁실에서도, 군대 화장실에서도, 여행지의 캠핑장에서도 나는 일기를 썼다. 싸구려 볼펜이든 손전등 불빛이든 상관없다. 뭐라도 적을 수 있는 여건만 되면 된다. 열다섯 살 즈음부터 써왔으니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촌스러운 사무 수첩에서부터 아트박스에서 산 세련된 가죽노트까지 각양각색의 일기장을 열댓 권은 채웠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문학이나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써.. 2022.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