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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임신 7~8개월, 혼백이 노닐다

by 북드라망 2015. 2. 12.


일곱 여덟째 달, 혼백(魂魄)이 노닐다




에베레스트 산도 자란다


중‧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이나 지리수업은 나에게 있어 썩 재미있는 공부는 아니었다. 딱딱한 이론과 통계치, 숫자들의 배열, 실생활과는 무관한 것 같은 그림들. 그래서 그런지 그때 배운 기후, 지형, 식생, 토양 등에 대한 내용은 거의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 요즘 오운육기와 세계지리를 횡단하는 세미나를 하면서 지리에 대해 재발견하는 중이다. 우리는 오대양 육대주, 산, 사막 등이 모두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주가 지구를 낳고, 지구는 또다시 대륙과 해양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또 다양한 형태의 지형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고정되어 있을 것 같은 땅덩이도 인간이 아이를 창조하는 것처럼 계속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었다. 지구 아래 있는 판들은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어그러지면서 새로운 산맥이나 대륙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극히 잘 알고 있는 에베레스트 산도 점점 자라고(?) 있었다. 수치로 말하자면 높이가 1954년에는 8,848m이었는데 지금은 2m가 솟아오른 8,850m라고 한다. 이런 변화는 대륙의 판들이 움직이면서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지역의 판이 위로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의 정기로 에베레스트 산도 자라고, 사람도 태어난다.


사막의 돌들은 모래바람의 풍화작용으로 깎이면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깨어지면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변화하는 자연은 기존의 산들도 자라게 한다. 이처럼 자연은 사물의 정기를 끊임없이 받으면서 다른 형태로 태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는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파 역할을 한다.


『동의보감』에서 하늘과 땅의 정기(精氣)는 만물(萬物)의 형체를 이룬다고 보고 있다. 만물의 형체를 이루는 것은 땅, 물, 불, 바람이다. 땅(土)은 근골과 기육을, 물(水)은 정, 혈, 진액을, 불(火)은 호흡과 체온을, 마지막으로 바람(木)은 정신과 활동을 만든다. 네 개의 사물이 화합하면 사람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우주 만물의 정기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 네 개의 정기가 때에 맞춰 아이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일곱째 달과 여덟째 달이다. 어떤 경맥(經脈)과 정기가 아이를 기르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폐‧대장 맥이 태아를 충실하게 만든다


일곱째 달은 수태음폐경맥(手太陰肺經脈)이 태아를 기른다. 처음으로 목(木)의 정기를 받아서 뼈가 생기고, 피부와 털도 생기며, 혼(魂)을 놀리고 왼쪽 손을 움직인다.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7쪽


먼저 일곱째 달에는 수태음폐경맥(手太陰肺經脈)이 태아를 기른다. 이 경맥은 어깨에서 시작하여 안쪽 팔뚝을 따라 내려와 엄지손가락에서 끝이 난다. 폐는 오행 중 금(金)에 배속되고, 가을을 상징한다. 가을의 수렴작용은 외부의 활동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결실을 보는 기운과 같다. 폐는 생명활동의 근원이 되는 기(氣)를 주관하고 있다. 폐는 우리 몸에서 하늘의 기운을 가장 잘 받는 곳이다.


‘처음으로 목의 정기를 받는’ 다는 것은 오행의 시작으로 하늘의 기운을 받는다는 표현이다. 천기를 받는다는 것은 호흡을 의미한다. 호흡(天氣)을 통해 우리는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여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기운이 정신적인 방향성을 가질 때 이것을 ‘혼(魂)’이라고 한다. 혼은 처음 생긴 기운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혼은 물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한다. 먼저 온몸으로 뻗어 나가면서 몸의 근원인 뼈를 생성한다.


일곱째 달에는 수태음폐경맥


다섯 여섯째 달에 비위의 토기로 태아의 대략적인 형태를 만들었으므로 일곱째 달에는 뼈대를 만들고 거죽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단한 근골이 만들어지면 기육(肌肉)에도 힘이 생긴다. 만약 기육에 문제가 생긴다면 지각하고, 운동하고,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를 맡는 것 등 양기의 작용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사람의 양기는 하늘의 햇빛과 같아서 양기를 잃으면 생명을 잃는 것과 같다. 『동의보감』에서는 이것을 마치 햇빛을 잃으면 만물이 생길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보았다.


하늘의 정기인 혼은 가벼워 양기에 속한다. 혼이 노닌다는 것은 양기가 온몸으로 통한다는 뜻이고, 태아가 태어날 때 호흡의 통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호흡을 고르게 하려면 폐기(肺氣)가 좋아야 한다. 호흡을 고르게 하면 내 안에 힘을 조율할 수 있다. 따라서 양기가 충만하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신체가 된다. 이것은 왼쪽으로 표현되는데 양기가 왕성한 사람일수록 왼손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된다.


여덟째 달은 수양명대장경맥(手陽明大腸經脈)이 태아를 기른다. 처음으로 토(土)의 정기를 받아서 피부가 생기고, 몸체와 골격이 점점 자라며 구규(九竅)가 다 생기고 백(魄)을 놀리며 오른손을 움직인다.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7쪽


여덟째 달에는 수양명대장경맥(手陽明大腸經脈)이 태아를 기르는데, 집게손가락에서 시작하여 팔뚝 위쪽을 따라 어깨와 쇄골을 지나 횡격막을 뚫고 내려가 대장에서 끝이 난다. 대장경맥도 폐경맥과 같이 금(金)에 배속된다. 여덟째 달에는 가을의 음기가 태아를 영글게 한다. 폐경맥 보다 금의 수렴 속성이 더 단단해지고 여문 단계이다. 대장은 기의 정체를 막고 잘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기가 정체되지 않아야 태아의 몸 구석구석까지 영양물질이 잘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토의 정기를 받는’다는 것은 대장경맥이 땅의 기운(地氣)을 받음을 표현한 것이다. 땅의 기운을 받아 태아의 살이 안에서부터 단단하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때는 태아의 체중이 늘면서 몸체와 골격 그리고 이목구비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때 몸을 이루는 기운인 ‘백(魄)’이 생성된다. 백이 노닌다는 것은 물질이 오가는 통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먹은 음식 즉, 곡물의 기운이 ‘백’을 통해 소통된다.


여덟째 달에는 수양명대장경맥


이때 도움을 주는 것이 태아의 양수이다. 태아는 양수를 하루에 340mL를 흡입한다. 이를 마시고 뱉고 싸면서 쭈글쭈글한 폐에 길을 내고, 오장의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따라서 음기가 충만하게 되면 기‧혈이 잘 소통되는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른쪽으로 표현되는데 음기가 왕성한 사람일수록 오른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백은 마무리하는 힘으로 이것은 토의 정기를 받아 음의 기운이 태아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로써 태아의 몸이 안팎으로 옹골차게 형성된다.



내 존재의 힘, 혼백


수태음폐경맥과 수양명대장경맥의 수렴하는 금기 위에 목기와 토기의 기운이 합해져 태아의 외형과 내형을 완성한다. 엄마의 맥은 천지의 기운을 받아 태아를 기르고, 태아는 그 기운을 받아 혼백을 생성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가 지구의 모든 지형과 산맥을 생성하듯이, 사람의 몸도 하늘의 정기(魂)와 땅의 정기(魄)가 서로 감응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하늘의 양기인 혼과 땅의 음기인 백은 마음과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혼과 백은 몸으로 결합하여 있지만,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늘과 땅의 정기가 생명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하늘의 양기인 혼과 땅의 음기인 백이 만나다.



혼은 몸 안팎을 돌면서 생명을 영위하고 항상성을 유지하게 하는 근본이다. 따라서 사람이 숨 쉬는 것도 대자연의 호흡을 본받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혼이 나간다는 말을 쓴다. 혼이 나간다는 것은 내 안의 기운이 나가는 것과 같다. 하늘 기운이란 나와 외부를 이어주는 통로이다. 혼이 나간다는 것은 나와 외부가 막히는 것이니 매우 위험한 일이다. 백 또한 물질이 다니는 통로이니 그 또한 내 존재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내 생명의 근간이 되는 혼백이 일곱 여덟째 달에 갖추게 된다. 하늘과 땅의 정기가 내 몸에서 혼백으로 표현된다니 경이롭지 아니한가.



글_용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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