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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약선생의 철학관

열자, '아내에게 돌아가다'

by 북드라망 2014. 10. 29.

#아내-열자-심(心)

아내에게 돌아가다



『열자』(列子)는 장자보다 앞서 살았던 열자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 책에 나온 열자는 좀 덜 떨어진 사람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정나라(열자는 정나라 사람이다)에 계함이라는 무당이 살았다. 이 무당은 어찌나 귀신같던지 사람이 죽는 날짜까지 알아맞혔다. 열자가 이를 보고 감탄을 그치지 않는다. 아뿔싸, 이 주변머리 없는 열자는 스승인 호구자에게 발칙하게도 그 무당이 스승님보다 더 지극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짓을 하고 만다. 이게 열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이야.


호구자가 그 무당을 불렀다. 무당이 찾아와 호구자의 관상을 보고 나와서, 열자에게 이렇게 이른다. “아아, 당신 스승님은 죽을 것이오. 나는 물에 젖은 재를 보았소.” 열자가 기겁을 하며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스승은 태연히 웃는다. “나는 그 무당에게 땅 무늬 얼굴을 보여 주었네. 그러니 무당이 죽은 줄로만 알았겠지. 다시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찾아온 무당이 스승을 보고 말한다. “다행이오! 나(무당)를 만난 뒤로 병이 나았소. 막혔던 게 열렸구려.” 열자가 활짝 웃으며 스승에 다가가자, 이번에도 스승이 빙그레 웃는다. “나는 그 무당에게 하늘과 땅의 얼굴을 보여 주었네. 다시 데려와 보거라!” 다시 온 무당이 이번엔 관상을 못 보겠다고 푸념이다. “선생님은 앉아 계시는 모습이 고르지 않아서 볼 수가 없구려.” 그러자 스승이 하는 말. “나는 텅 비어 아무 조짐도 없는 모양을 보여 주었네. 다시 데려와 보거라!” 


이쯤 되면 불평할 만도 하련만 그래도 무던한 사람이었던지, 네 번이나 호구자를 찾은 계함. 그러나 이번엔 그전과 확연히 달랐다. 무당은 서 있다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기 자신도 잃은 듯이 달아나 버렸다. 스승 호구자가 껄껄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에게 나의 근본으로부터 아직 나오지도 않았던 때의 모습을 보여 주었네[吾示之以未始出吾宗]. 그래서 그는 나를 형체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서, 도망친 거라네.”(『열자』, 김학주 옮김, 120쪽)


사실 호구자처럼 도통한 도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평범한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다. 상대방이나 나나 마음이 잘 데운 맑은 술마냥 깨끗해 보일 때도 있고, 늠실늠실 거리는 게 징그러워 보일 때도 있다. 우리들의 눈과 귀가 계함이라면, 우리들의 마음은 호구자다. 마음은 호구자의 기술을 갖고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으며 그 속으로 들어가기도 힘들다. 계함처럼 괴로워 달아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도 그렇게 달아나는 것이 우울증이거나 자포자기인 게 아닐까 싶다. 



호구자처럼 여러 '얼굴'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여러 얼굴을 보기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의학에서도 마음[精神]이 머무는 곳인 심(心)이 사기(邪氣)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잘 용납하지 않는다[邪不能容](『동의보감』 내경편, 심장, 402쪽)고 말한다. 심은 우리가 잘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사기(邪氣)도 잘 들어가지 못하는 장부이다. 심장이 상하면 신기(神氣)가 흩어져 죽기 때문에 몸은 사무치도록 심을 보호한다. 웬만하면 사기가 심 밖에 멈추도록 조치를 취한다. 이 조치가 바로 심을 감싸고 있는 심포락(心包絡)이다. 사기는 이 심포락을 보고 심장인 줄 알고 머문다. 마치 호구자가 펼친 기술에 계함이 매번 헛방을 친 것처럼 말이다.


사기가 심장에 침범했다는 말은 심을 감싸고 있는 심포락에 들어온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심포락은 심장이 받을 사기를 대신 받아 준다. 따라서 사기는 절대 마음에 들어갈 수 없다. 만일 들어간다면 그 순간 목숨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사기에 물든 심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심포락이나 심장과 연결된 수소음경맥(심장을 주관하는 경맥)이 아픈 것이다. 거꾸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심장이 아프기 전에 심포락과 수소음경맥이 먼저 아프다. 심포락과 수소음경맥이 무너지면 심장은 바로 무너진다. 그 순간 오장육부도 무너지고 만다. 니체의 말대로 심장에 오장육부가 깃들어 있으므로(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3쪽) 심이 무너지면 목숨이 무너지는 것이다.



심장 대신 사기를 받아주는 심포락이 무너지면 심장은 바로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가족이 아프면 내 마음이 위험하다. 가족이 나의 심포락이어서 그렇다. 가족이 내 마음을 감싸고 있는 포락(包絡)이므로, 이들이 나를 지킨다. 계함은 심포락을 심으로 알고 도망쳤다. 그러나 우리는 심포락을 보고 심을 알아야 한다. 가족들을 보고 내 마음의 어지러움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심포락이 튼튼하면 내 마음에 사기가 들어올 도리가 없다. 계함이 호구자를 사로잡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열자는 호구자의 이야기를 듣고 밖에서의 공부를 그만두고 아내에게 돌아간다. 세상에 신기한 공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계함 따위에 넋을 잃었던 열자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


그 뒤로 열자는 스스로 학문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삼 년 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처를 위해 밥을 지어 주었으며, 돼지를 먹이기를 사람을 양육하듯 했다. 모든 일에 치우치는 일이 없게 되고, 무늬를 새기고 쪼는 일을 하는 것 같은 생활로부터 소박함으로 되돌아왔다. 우뚝 홀로 그의 형체만이 서 있을 뿐 어지러운 속에 참됨만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한결같이 이렇게 끝까지 지냈다.

-『열자』, 김학주 옮김, 120쪽


이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앉아 있는 내 방만이라도 잘 정리할 줄 알아야겠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온 아내나 아이들에게 마음을 둘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세상을 알겠는가. 내가 사는 장소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겠는가. 심포락이 무너지는데도 심장이 무사할 줄 아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족이 무너지는데도 내가 무사할 줄 안다면 그건 기만이다.


가족은 나의 심포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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