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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실(마하트마 간디의 진리실험 이야기)

[마진실-마하마트 간디의 진리실험 이야기]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연민하라!

by 북드라망 2024. 12. 20.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마하트마 간디의 진리실험 이야기(마.진.실)인데요,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청년분들께서 간디의 책을 읽고 글을 쓰셨답니다.

저는 오늘 첫 글을 편집하고 마치 불경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놀라움과 내면에 차오르는 어떤 감동을 느꼈는데요, 왜냐하면 앞으로 탐구해야 할 '간디'라는 또 한 명의 영적 스승을 만나서 그런 듯 합니다.

간디와 만난 내 일상의 문제들! 앞으로 기대해주세요!

 

 

 

[마진실 세미나에서의 청년들과 간디의 만남]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연민하라!

 

김 미 솔(남산강학원)

 


무려 몇 세기에 걸쳐 지속된 영국의 지배. 그 잔혹한 착취 아래 인도인들은 너무도 가난했고 아팠다. 이에 인도에서는 독립운동이 일어난다. 이 운동은 처음엔 온건했지만, 나중에는 과격파들이 등장하여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폭력집단들은 인도의 독립이 단번에 이뤄지길 바랐다. 평화적 독립은 지난하고 길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조국을 잔인하게 짓밟고 착취한 영국인들을 살인하고 암살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러한 폭력집단을 향해 간디는 말했다.
  

“암살이라는 방법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루려는 생각이 두렵지 않습니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은 비겁한 생각입니다.”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저, 김선근 옮김, p93 <힌두 스와라지>, 지식을만드는지식)

  

나는 간디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를 지배하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으려면 영국을 무찔러 없애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나는 영국을 제거해야 독립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상대를 제거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런 식의 생각은 낭비와 사치를 일삼아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이들을 생각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무분별한 기업들과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들만 없어진다면! 하지만 놀랍게도 간디는 희생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 그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무슨 말일까? 간디는 왜 독립이 자기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일까?

 



 
두려움은 폭력을 낳는다
나는 독립과 자기희생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나의 경우, 애초에 독립운동을 하는 이유 자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저들의 착취를 내버려두면 내가 죽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근 열을 올리고 있는 환경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보며 이대로 가다간 나도 죽겠구나 싶었다. 애초에 내가 죽을까봐 시작한 운동이니, 거기에 자기희생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살려고,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이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서웠다. 지구 어딘가에서 꺼지지 않는 산불을 보며, 또 어딘가에서는 범람하는 홍수를 보며. 이대로 가다간 나까지 죽겠다는 생각에 정말로 무서웠다. 이 마음은 분노를 낳았다. 낭비와 사치를 일삼는 저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저들을 멈추면, 저들을 없애면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독립운동 당시 인도 과격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있었다.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이 두려움을 낳았고 분노를 낳았다. 하지만 이처럼 두려움 위에서 하는 모든 운동은 필연적으로 폭력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배웠다. 나만 해도 조국의 독립도 아닌 환경운동을 떠올리며 적들을 제거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던가? 과격파들의 두려운 마음을 간디는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런 그들에게 간디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깊은 공감, 그 다음은? 숙고!

 

“인도는 비참한 처지에 있습니다. 인도의 처지를 생각만 해도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목이 타들어갑니다. 제 마음에 있는 것을 충분히 다 설명할 수 있을지가 큰 의문입니다. 영국의 발굽이 아닌 현대 문명의 발굽 아래 인도는 무너져 내려앉고 있다는 것이 제가 숙고한 견해입니다.”(p44, 같은 책)


 
두려움이 아니라면 간디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을지 궁금했다. 책을 뒤적이던 차에 위 문장이 탁 걸렸다. 인도의 비참한 처지를 생각하며 간디는 쓰디쓴 눈물을 삼킨다. 가난과 폭력 아래 인도는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간디가 오직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디는 인도가 안쓰러워서 무엇이든 주고 싶었구나. 간디의 출발점은 나와 너무도 달랐다. 내가 죽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운동을 했다면, 간디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운동을 했다.

간디가 밟은 그다음 스텝은 특히 놀라웠다. 신음하는 인도에 공명한 뒤 간디는 “숙고”를 했다. 돕고 싶다는 마음은 얼마나 강력한가! 그것은 우리를 지혜로 이끈다. 간디는 이내 인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꿰뚫어 보았다. 인도는 노예였다. 어떻게 인도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 영국 때문인가? 아니다. 다만 무역을 하고자 인도에 발을 들였던 영국을 붙잡았던 것은 다름 아닌 인도인들이었다.

영국과의 무역은 꿀과 같았다. 이 무역에서 인도는 어마어마한 은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영국이 떠나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은 비할 수 없이 적은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영국이 어떻게 인도를 상대로 단 몇 시간 만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가? 이미 벵골의 인도 귀족과 상인들은 영국과의 무역으로 돈을 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은 인도가 아닌 영국을 지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어떻게 영국은 그 오랜 세월 동안 3억 5천만 명이나 되는 인도인들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인도인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도왔다. 후에 이 군인들(세포이들)이 항쟁을 했을 때도 영국을 도와 항쟁을 진압했던 것은 무굴제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인도의 시크교도들이었다. 이들의 지원을 받아 영국은 대부분의 반영 투쟁세력을 진압할 수 있었다.

영국의 상품은 그럼 누가 구입했는가? 인도인들이었다. 인도가 양팔을 벌리고 영국을 환영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각자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인도는 영국을 아예 들여앉힌 것이다. 거리도 멀거니와 인구수도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인도를 오직 무력만으로 지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영국을 우리가 정말 원했구나. 간디는 이를 간파했다. 결국 인도는 영국의 노예가 아니라 자기 욕망의 노예였다. 하여 간디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물질에서 영혼으로, 적대에서 사랑으로!

 

 


 
완벽한 자유의 경지, 자기희생!
인도가 영국의 발굽 아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스와라지’는 곧 영국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하지만 인도가 영국의 발굽이 아닌, 끊임없이 우리 욕망에 불을 붙이는 현대 문명의 발굽 아래 있다는 것을 안 지금, ‘스와라지’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스스로 독립하면 인도도 독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생각에 스와라지의 정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배울 때, 그것이 스와라지입니다. 그러므로 독립은 우리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pg. 84, 같은 책)

 


스와라지는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내 안에 들끓는 온갖 욕망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따라서 독립은 영국에 달린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을 적극적으로 원했던 나의 욕망을 끊어내는 문제였다. 독립을 위해 누구도 제거하거나 해칠 필요가 없었다. 간디는 자연스레 비폭력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독립은 우리 손안에 있다!

간디는 차근차근 하나씩 자기 욕망들과 마주했다. 완벽한 순결을 맹세하고, 소유물들을 버렸다. 가난을 받아들이고, 철저히 입맛을 통제했다. 그렇게 누리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면서 그는 두려움을 정복해나갔다. 

간디는 어릴적부터 겁이 많았다. 늘 도둑이나 유령, 뱀, 늑대가 튀어나올까 무서워 밤엔 옆에 아내가 있음에도 방에 불을 켜놓지 않고는 잘 수가 없었다. 13살에 이미 결혼을 하여 어린 나이부터 성적 쾌락을 누려왔던 그가 그토록 두려움에 시달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정욕에 시달릴수록 그의 정신은 노예가 되었고,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재산, 명예, 성적 쾌락 등에 대한 자기 욕망들을 정복하면서 그의 정신은 점점 자유로워졌다. 

이제껏 누려왔던 모든 것들을 비워내니, 그에게 남은 것은 육체뿐이었다. 두려움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몸을 잃는 두려움일 것이다. 이제 그가 남겨둔 마지막 관문도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간디는 자신의 몸마저도 내려놓았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인도 해방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간디의 입장에서 본다면 희생이라는 말은 맞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다스리는 궁극의 경지이자 무한한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기희생은 곧 자기해방이었다. 이 위대한 승리는 곧바로 인도의 독립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해방시킨 그 힘으로 인도의 자치도 이룰 수 있다! 그 자신의 해방과 인도의 해방은 정확히 일치했다.


본질은 사랑과 연민의 마음
나는 이번에 지구를 파괴하는 적들을 제거하는 것이 곧 내가 해온 기후운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의 기후운동엔 적이 있었을까? 그 근저에는 ‘나의 목숨만은 절대 잃을 수 없어!’라는 전제가 있었다. 나를 지켜야 하는데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죽게 생긴 것이다. 순간 두려움이 생겼고 이내 내 마음속에서 이들은 ‘적’이 되었다. 결국 폭력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런 사람들이 다 제거된 세상이 도래하길 난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게 내가 그렸던 자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간디는 우리가 꼭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켜내고, 누리고 싶은 것들을 누리는 것을 자유라 일컫지 않았다. 그는 누리고 싶다는 욕망 자체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다. 지켜야만 하고 누려야만 한다는 전제 자체를 뒤집은 것이다. 그것이 간디의 자유였다. 지켜야 할 게 따로 없으니 그에게는 두려움도 적도 없었다. 그의 운동에는 적대가 없다. 오직 사랑과 연민뿐이었다.

나는 이번에 기후운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날뛰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우리는 지구를 착취하고 있다. 우리의 탐욕으로 인해 평화가 유지되지 못하고 너무도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인간인 우리 자신도 같은 지구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고통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슬픈 굴레에 대한 무한한 공감과 사랑, 그리고 연민이 기후운동의 본질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이들을 혼쭐내주겠다는 나의 마음은 따라서 기후운동의 본질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사랑과 연민은커녕 분노와 적대만 키우고 있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정작 내가 할 일들은 놓치고 있었다. 정작 나의 욕망은 한 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런 나에게 간디는 말해주었다. 고통의 사슬은 그 원인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우리의 욕망에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라고. 나의 욕망과 고집들을 하나씩 마주하고 그것들로부터 철저히 해방되라고! 다만 이 운동을 하면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끝없이 확장하라고. 하여 나는 앞으로 두려움과 적대가 아닌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동력 삼아 기후운동을 해나가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간디로부터 배운 스와라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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