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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비염은 뜨거운 폐에서 온다?! 코를 식혀주는 혈자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31.

코막힘이여, 가라! 전곡(前谷)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코털을 자주 뽑는다. 뽑는 순간의 그 알싸한 맛이 좋아서다. (변태 아니다...) 뽑아보신 분들은 아실 거다. 눈물이 핑 도는 그 중독성을!^^ 이런 말이 있다. “『황정경(黃庭經)에서는 ‘신려(神廬) 중의 코털을 잘 다듬어 주어야 호흡하는 기(氣)가 단전(丹田)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신려(神廬)’라는 것은 코인데, 바로 신기(神氣)가 드나드는 문이다.” (『동의보감』, 「비(鼻)」, 법인문화사, p.668) 『황정경』은 『도덕경』, 『주역참동계』와 함께 도가의 3대 경전으로 불린다. 양생과 수련의 방법들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 책에서 ‘코털-관리’를 이토록 강조하고 있을 줄이야! 더구나 이 책에서는 코를 신려(神廬), 즉 신(神)이 사는 오두막(廬)이라고까지 칭하고 있다. 코가 보통 놈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코털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코가 막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신기(神氣)를 받지 못해서 정신줄을 놓게 되는 것일까? 오늘은 이 의문을 길잡이 삼아 혈자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코막힘 때문에 괴로워하는 1人으로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코, 자기의 중심

 

관상에서 ‘자기’를 상징하는 것은 코다. 코가 너무 높으면 ‘자기’의 세계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외롭다고도 하고 독불장군처럼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게 된다고도 한다. 반면 이마와 턱, 양쪽의 광대뼈와 적절히 높이를 맞추고 조화를 이루면 인복(人福)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끈적하다(?)고 본다. 그만큼 코가 얼굴의 중심이자 나름 운명의 지표가 되는 중요한 녀석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렇게 코를 ‘자기’ 혹은 ‘중심’이라고 생각할 것일까. 약간의 힌트를 얻기 위해 『동의보감』을 펼쳐보자.

 

『노자도덕경』에서는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현빈(玄牝)이라고 한다. 현빈의 문호(門戶)는 천지만물의 근원이다. 그것은 영원히 존재하며 작용은 무궁무진하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무엇을 현빈의 문호라고 하는가? 코는 천기(天氣)가 통하는 곳이므로 ‘현문(玄門)’이라 하고, 입은 지기(地氣)가 통하는 곳이므로 ‘빈호(牝戶)’라고 한다. 그러니 입과 코가 바로 현빈(玄牝)의 문호(門戶)인 것이다.

 

ㅡ『동의보감』, 「비(鼻)」, 법인문화사, p.668

 

현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현빈’이 아니다. (-_-;) 여기의 현빈(玄牝)은 ‘검고 그윽한(玄) 골짜기(牝)’를 의미한다. 도가에서는 이 골짜기로부터 천지만물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기에 ‘영원’과 ‘무궁무진’이라는 무한의 속성들을 부여했다. 낳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현빈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우주만물의 근원이 되는 현빈이 우리 몸에도 있다고 설정하는 대목이다. 이건 우주와 우리 몸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걸 좀 자세히 따져보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일단 우주의 근원이 우리 몸으로 들어올 때는 둘로 나뉜다. 현(玄)과 빈(牝)으로. 둘 가운데 현(玄)은 코에 해당하고 빈(牝)은 입에 해당한다. 여기에 친절한 설명마저 덧붙여 놨다. 코는 하늘의 기운(天氣)이 통하는 곳이고 입은 땅의 기운(地氣)이 통하는 곳이다. 즉, 현빈이 만물을 낳고 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용을 담당하듯이 우리 몸에서는 코와 입이 현빈이 되어 몸을 살리고 죽이고 새롭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또 있다. 코는 구멍이 두 개이기에 현문(玄門)이라고 이름 붙였고 입은 구멍이 하나이기에 빈호(牝戶)라고 이름 붙였다. 한문에서 문(門)은 문짝이 두 개인 문을, 호(戶)는 문짝이 하나인 문을 의미한다. 그 모양새마저 고려해서 이름을 붙여주는 센스!^^ 어쨌든 코와 입을 통해 몸은 우주와 통하고 그 통하는 힘이 우리 안의 우주를 날마다 새롭게 만든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후각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사라믈은 바람의 냄새도 동물들의 체취도, 꽃과 나무의 향기도 맡을 줄 모른다. … 우주로 통하는 창문 하나가 닫힌 셈인데, 그게 얼마나 갑갑하고 괴로울 것인가."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77쪽)

 

코가 ‘자기’ 혹은 ‘중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라는 유형의 개체를 유지시키고 외부와 쉼 없이 통하게 하여 ‘나’라는 우주가 운행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태풍의 중심이 고요하듯이 코도 고요함을 기본 상태로 삼는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코로 계속해서 숨을 쉬고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 원래 중심이란 이런 거다.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변에 엄청난 에너지장을 형성하는 것. 태풍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이끄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정적(靜的)으로 보이는 것. 이쯤 되면 코를 생명의 중심이라고 할 만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코가 막혀버린다면? 보나마나 생명의 통로가 막히고 내 안의 우주가 고립될 것이 뻔하다. 그럼 곧 죽음이다.^^ 그렇기에 코털을 뽑든 가지런히 하든해서 이 통로가 막히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거다. 더구나 코는 신(神)이 머무는 오두막(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수태양소장경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이렇게 코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는지 궁금하실 거다. 이유는 짐작하시는 바대로다. 수태양소장경에 있는, 오늘 우리가 다룰 전곡(前谷)이라는 혈(穴)이 바로 이 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곡은 코가 막혀서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혈자리로 유명하다.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일까? 이제 전곡과 코막힘이 어떻게 관계인지 살펴보자.

 

미지근함의 매력

 

검은 삼각형이 후계혈이고, 빨간 원이 전곡혈이다.

일단 전곡(前谷)의 프로필부터 까(?)보자. 전곡은 한자 그대로 ‘앞(前)에 있는 골짜기(谷)’이라는 뜻이다. 무엇의 앞에 있다는 이야기일까. 혈자리를 소개하는 책들에서는 이 전(前)을 후(後)와 대비시킨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다음 주에 다룰 후계(後溪)라는 혈자리 앞에 있기 때문에 전(前)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다. 그럼 곡(谷)은 어떤가. 이것도 계(溪)와 대응되는 이름이다. 곡(谷)은 골짜기라는 뜻이고 계(溪)는 시냇물이라는 뜻이다. 흔히 계곡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곡 다음이 계에 해당한다. 산에서 모인 물이 좁은 지대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곡이고 이 곡을 따라 내려간 물이 평지를 만나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계라고 부른다. 또한 곡(谷)은 이런 뜻도 가지고 있다. ‘깊은 굴’. 이게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보면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깊은 굴에 갇혀 있다는 형상이다. 아마도 많은 분이 소(沼)를 떠올리실 거다. 맞다. 전곡(前谷)은 산에서 내려온 물이 깊은 굴처럼 생긴 곳에 모여서 소(沼)가 되어 있는 형국이다. 경맥과 연결시켜보자면 수태양소장경의 기운이 흘러가다가 깊은 곳을 만나서 모여 있는 자리가 바로 전곡(前谷)이라고 보시면 된다. 전곡의 위치를 보시면 금방 납득이 되실 거다.

 

그럼 전곡은 어떻게 코막힘을 해결하는 것일까. 이걸 알기 위해서는 먼저 코막힘이 왜 생기는 것인 지부터 좀 알아야 한다. 흔히 코가 막히고 콧물을 줄줄 흐르는 것을 우리는 비염(鼻炎)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코에 염증이 생겨서 콧물이 흐르고 코가 막히게 된다는 거다. 그런데 한의학에는 비염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대신 탁한 콧물이 흐르는 것은 비연(鼻淵), 맑은 콧물이 흐르는 것은 비구(鼻鼽), 코가 막히고 냄새도 제대로 맡지 못하는 것은 비색(鼻塞), 코에 군살 같은 것이 생겨서 코를 막는 것은 비치(鼻痔) 등 수많은 카테고리로 코의 병증들을 나눠놨다. 그럼 이걸 다 알아야 하느냐고? 아니다. 이런 코의 증상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명확히 알면 원인부터 처방까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코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들은 대부분 폐(肺)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코가 폐(肺)의 구멍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폐에 문제가 생기면 코로 그 신호들이 나타난다. 감기에 걸려서 콧물이 질질 나는 것도 폐에 풍한사(風寒邪), 즉 차가운 바람이 침입한 결과다. 앞서 열거한 코의 증상들도 이런 풍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재밌는 것은 몸에 풍한사가 침입하면 우리 몸은 그 풍한사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열을 낸다는 점이다. 감기에 걸리면 몸이 불덩이처럼 되는 것도 이런 메커니즘이다. 콧물이 나고 코가 막히는 것도 대부분 몸에서 나는 열(熱)의 작용이다. 전곡이 주요 타깃으로 하는 코막힘, 즉 비색(鼻塞)도 열에 의한 경우다.

 

코가 막히는 것(鼻塞)은 다 폐(肺)에 속한다. 한사(寒邪)가 피모(皮毛)를 상하게 하면 코가 막혀서 순조롭지 못하고, 화(火)가 기도에 몰려 있으면 좋고 나쁜 냄새를 가리지 못한다.

 

ㅡ『동의보감』, 「비(鼻)」, 법인문화사, p.670

 

이 아저씨도 폐에 큰 문제가?!?

 

한사가 몸에 들어오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서 몸은 화(火)의 기운을 쓴다. 그런데 이게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되는 증상이라면 한사(寒邪)도 몰아내고 기도에 몰린 화(火)도 내려줘야 코가 뻥 뚫린다. 전곡(前谷)이 바로 이 작용을 하는데 여기엔 좀 복잡한 메커니즘이 있다. 우선 전곡이 수태양소장경의 혈자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수태양소장경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소장은 심(心)과 함께 화(火)에 속한다. 그러니까 소장경은 기본적으로 화(火)의 뜨거움을 간직한 통로다. 이 통로를 흘러가는 기운은 지난 소택혈에서 보셨듯이 태양한수(太陽寒水)라는 기운이다. 즉, 차가운 물의 기운이 뜨거운 소장경 안을 흘러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상상하시면 좋다. 뜨거운 여름날에 비가 와서 갑자기 서늘하고 으슬으슬하기까지 한 날씨. 혹은 보일러라는 화기(火氣)충만한 기계에 차가운 물이 들어가서 미지근한 상태가 된 물. 이게 수태양소장경의 이미지라고 보시면 편하다.


수태양소장경은 이 미지근한 물로 몸의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미지근한 물로 한사(寒邪)에 상한 피부와 모발에 열기를 전해주는 것도 수태양소장경의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럼 한사(寒邪)는 수태양소장경의 기운을 빌려다가 몰아내는데 화(火)는 어떻게 내린다는 것일까. 이건 전곡(前谷)혈이 수(水)의 기운을 가진 형혈(滎穴)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수(水)는 기본적으로 찬 성질이다. 수(水)의 기운을 가진 전곡혈을 자극하면 소장경에 차가운 기운이 배가된다. 기도를 막아서 냄새를 맡지 못하게 만드는 화(火)를 끄기 위해 소장경의 수(水)혈인 전곡이 이용된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미지근한 물이 아주 찬 물이 된다고 상상하시면 곤란하다. 오히려 미지근하면서도 약간은 차다고 느껴지는 물의 온도를 상상하시면 된다. 이 미지근한 물이 한사(寒邪)의 기운도, 화(火)의 기운도 내려주는 것. 이게 바로 전곡이 코막힘의 특효로 불리는 이유다.

 

불처럼 들떠있는 상태에는 건강을 망치기 십상이다. 생명의 불꽃도 때때로 미지근한 물로 식혀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 혈기 베르테르마저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 "기다리자! 기다리자! 그러면 차차 나아질 것이다. … 완벽하게 이룩된 사람이란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괴테,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민음사, 104쪽)

 

아참! 빼먹은 게 있다. 그럼 어떻게 기도에 있는 화(火)를 내린다는 것일까. 이건 소장경이 목과 어깨 쪽으로 흘러가 귀에서 끝난다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즉, 목에 걸려 있는 화(火)의 기운을 그쪽 부위를 흘러가는 소장경의 미지근한 물을 이용해서 식히고 밑으로 내려가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곡은 편도선염(扁桃腺炎)이나 목구멍이 열로 인해서 붓는 것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제 목에 열이 있을 때면 전곡을 눌러 보시라. 꽉 막혀 있는 화기(火氣)가 저 아래로 쑥 내려갈 테니! 전곡은 한여름에 등목을 하고 나서 들이키는 한 잔 냉수와도 같은 혈(穴)이다. 생각만 해도 시원한 이 느낌. 이 느낌을 몸으로 만끽하시라. 전곡(前谷)을 세차게 눌러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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