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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지금 떨고 있니? 그럼 신문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13.

떨지 마! 우리가 있잖아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중학교 다닐 적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무척 가까웠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았을 뿐 아니라, 동네 낡은 독서실에서도 곧잘 옆자리에 앉았기에, 사실 눈 뜨고 깨어 있을 동안은 아빠, 엄마, 동생들보다 그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들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는데, 어머니께서도 그 친구 부모님, 형, 누나들 전부 S대 출신 수재라며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는 걸 드러내놓고 좋아하셨다. 그러나 그 시절 기억이 그 친구랑 여기 저기 싸돌아다니며 말썽피우던 장면들로 채워진 것을 보면, 어머님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눈이 맞아도 너무 맞아서, 그 친구가 고개를 들고 눈짓만 해도 앞으로 무슨 장난을 칠지 ‘시나리오’가 팡! 하고 떠오를 정도였다. 달리 모의하지 않아도 장난칠 것들이 척척 튀어나왔다. 그런 탓에 마치 한 몸이듯이, 놀 때, 밥 먹을 때를 가리지 않고 온종일 그 친구랑 있었다. 결국 덕분에 어머니 바람과는 달리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이런 친구가 있는데 “We are friends" 따위를 암기하는 공부가 뭔 필요겠는가! 우리들의 ‘위 아 프렌즈’는 책 속에 있지 않고, 우리들 눈빛 속에 다 녹아 있었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눈빛만 봐도 통하는 친구들의 잔혹사(?)^^! 나란히 김밥을 먹던 그때까지만 해도 참 좋았는데... 아무튼 친구 아이가!!


하지만 그 친구에게 약간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험기간이면 책상에 단 30분을 앉지 못했다. 시험공부를 위해 책상에 앉아 30분만 지나면 다리를 덜덜 떠는 것이었다. 맨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30분쯤 조용히 공부하던 그 친구는 갑자기 다리를 떨기 시작하더니, 대략 2~30분을 정신없이 떨었다. 그 방식도 리드미컬했다. 처음엔 약하게 시작해서 점점 강해지며 격렬한 정점을 쳤다가, 다시 점점 약해지고, 강해지기를 반복했다. 격렬해질 때는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은근히 무섭기도 했다. 사실 그 장면을 실제로 보면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 그 친구는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자, 온갖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바닥이 부드러운 슬리퍼를 마련해서 아무리 떨어도 바닥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였고, 책상과 다리 사이에 무거운 책가방(옛날 학생가방 아시는가!)을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게 막아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게 한 두 번이지 매번 그렇게 통제되지는 못해서 증상이 시작되면 항상 몇 분 못 지나 혼자 옥상으로 올라가 한 두 바퀴 돌고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오곤 했다. 내 기억엔 그 친구가 30분 공부하고 2~30분 쉬면서 긴긴 그 시간을 견뎌냈던 것 같다. 친구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친구는 나랑 말썽피우며 싸돌아다닐 때만 그런 버릇을 잊어버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가 너무 잘났어!


그렇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고 있을 때가 있다. 이게 다 일종의 틱장애였다니!

나중에 커서 돌이켜보니, 그건 이른바 ‘틱장애’였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린애들에게 그런 증상은 아주 흔한 것이다. 눈 깜빡거림, 머리 흔들기, 입내밀기, 킁킁거리기, 심지어 자신을 때리는 행동까지 증상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사실 그 증상들을 듣고 보면 우리들도 어릴 때 약간씩은 그런 틱증상들을 갖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다리 떨기나 어깨 흔들기 같은 버릇들은 눈에 크게 띄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 얕은 틱증상들인 셈이다. 다만 버릇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멈출 수 있는 것인 반면,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정시간동안 반복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 친구 어머니도 이것 때문에 아주 많이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증상을 큰 병으로 보지 않았는지, 그 친구 어머니는 이 증상을 고쳐야할 못된 버릇쯤으로만 다루셨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보일 때면 “다리는 반듯해야지!”라며 큰 소리로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러면 친구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참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곤 했다.
 

사실 그 친구 부모님이나 형, 누나를 만나보면 그렇게 포근하고 훌륭할 수 없었다. 당시 어린 나는 우리 부모님과 맞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랑 이걸 가지고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날도 시험기간 독서실에서 다리를 떨다가 옥상에 올라가자 나도 같이 올라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이랑 형, 누나 같은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부러워하자, 그 친구 왈. “야, 그럼 니가 우리 집에 와서 살아. 완전 감옥이야!!!!” 엥? 이게 무슨 소리냐? 물론 부모님이나 형, 누나가 잘 못해준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해주고, 너무 잘나서 문제라는 것이다. 집에 가면 모두다 능력자인데다, 성격까지 훌륭해서 자기 같은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잘 해야지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잠도 가끔은 설친다는 말이었다. 이건 정말 반전이었다. 나는 그 친구 집에 갈 때 마다 이런 훌륭한 부모 밑에서 컸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그 밑에서 자란 친구가 이런 마음을 먹고 있다니, 기가 찰 일이었다.


간경? 아니 먼저 심경부터!

그 친구 증상은 이른바 ‘근육틱’에 해당한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근육을 주관하는 간경과 관련된 병으로 본다. 특히 틱증상처럼 움직임이 심한 것은 풍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간이 부었나?”라고 하는데, 아마도 틱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형, 누나보다 못하면 어쩌지 하는 강박증과 불안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불안과 강박증이 다리 떨기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현상적으로는 근육 이상이지만, 그 출발을 따지면 정신적인 것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현대 의학으로 봐도, 불안이나 강박증은 스트레스로 인해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이 긴장하면서 생긴다. 교감신경이 긴장하면 근육의 세동맥은 확장되고, 심장 박동수가 증가한다. 혈압이 상승하고, 따라서 피부나 위장관의 혈액이 뇌, 심장, 근육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해 전신의 혈류가 나빠지고 늘 맥박이 빠르게 뛰며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불안감이 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육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그 친구 심(心)을 먼저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황제내경』에 보면, “심은 군주의 소임(君主之官)이니 신명(神明)이 나온다.”고 해서 심을 매우 중히 여겼다. 여기서 신명이라는 것은 정신이 밝다는 것인데, 심이 뇌의 기능, 즉 운동, 감각, 지각, 판단, 정서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심이란 것은 삶의 근본이며, 신(神)이 변한 것이다. 그 정화는 얼굴에 있고, 그 충실함은 혈맥에 있다.”고도 했다. 아마도 마음이 편안하고 걱정도 없고 혈액순환도 잘되면, 얼굴이 밝아지고 윤기가 난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얼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행동으로 드러난다고도 볼 수 있다. 반듯한 걸음걸이, 편안한 숨소리, 맑은 눈빛 같은 것들이 바로 신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심은 불과도 같다. 즉 심은 뇌기와 통한다(雷氣通於心,『내경』). 따라서 심은 천둥번개같이 소리가 난다. 불이 타오를 때 그 타는 소리가 큰 것 같이, 심도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象火有聲,『내경』). 아마도 그 친구의 틱장애는 이 신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그 불안감 때문에 불필요한 강박증이 발생하고, 그 강박이 근육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그 친구의 경우는 간경으로 치료하기 전에 그 원인인 심경부터 다스리고 들어가면 더 좋을 것이다.


신문 - 기분 좋아지는 혈

(心)을 주관하는 경맥은 수소음심경이다. 그런데『내경』은 아주 오묘한 말을 한다. 심은 오장육부의 대주(大主, 큰 주인)이고 정신(精神)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에, 그 장(藏)이 견고해서 사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심장 그 자체에는 사기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즉 심장은 병들지 않는다. 아니, 병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쉽게 사기가 들어간다면 심이 상하고, 심이 상하면 신이 떠나며, 신이 떠나면 생명 자체가 죽어버리는 사태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럼 심에는 병이 아예 없는 것이냐? 이에『내경』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 밖으로 경은 병들고 장은 병들지 않았으므로 오로지 손바닥 뒤쪽 예골의 끝에서 경락을 취합니다. 나머지, 경맥의 출입, 굴절과 운행의 느리고 빠름은 모두 수소음심주의 경맥과 같이 행합니다."(曰, 其外經病 而臟不病 故獨取其經於掌後銳骨之端. 其餘脈出 入屈折 其行之疾徐 皆如手少陰心主之脈行也.) 


『황제내경(皇帝內徑)』 券上 經絡第二

 

찾기도 어렵지 않다!!^^

이 말에 따르면 심(心)에 이상이 생긴다는 말은 심장 자체가 병든 것이 아니고, 경락이 병든 것이다. 따라서 심에 이상이 생기면 심장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심과 관련하여 지나가는 경락을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수소음심경을 치료하려면 수궐음심포경으로 다스리라고도 한다. 그만큼 심장은 민감하고 중대한 장부이다. 여기『내경』에서는 심의 병을 다스리기 위해서‘손바닥 뒤쪽 예골의 끝에 있는 경락[掌後銳骨之端]’을 취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신문혈(神門穴)이다. 손바닥을 폈을 때 손바닥 쪽 손목부분으로 내려가서 새끼손가락의 내측 연장선과 만나는 부분이다. 아마 그곳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눌러보면 맥박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명 예충(兌衝) 또는 중도(中都)라고도 한다.
 

신문의 신(神)은 귀신, 신령, 영묘한 존재로서 혼(魂), 심(心)이란 뜻이다. 문(門)은 심장으로 통하는 문으로써 신(神 = 心)의 출입문이다. 한의학에서 신이라고 말하면 심을 가리킬 때가 많다. 심은 화에 속하고 양이다. 양기는 만물생장의 근본이다. 이 양기가 바로 신이다. 몸에서 심양(心陽)은 본원으로 양중의 양이므로 울결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심양에 문제가 발생하면 놀램과 우울증 혹은 강박증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내경』 말대로 이렇게 불안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초조할 때 혹은 기분이 들떠 있을 때는 이 신문혈을 다루어야 한다. 심장으로 가는 문을 잘 정돈하여 심기가 울결된 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즉 심기를 열어주는 큰길을 잘 청소하는 셈이다. 손목아래쪽으로 심경의 4개혈이 연달아 있다. 신문을 시작으로 바로 뒤에 바싹 붙어서 통리와 영도가 있는데 바로 이들이 모두 예지나 심리와 관련된 혈자리들이다. 마음이 불안해지고 답답해질 때면 이 혈들을 잘 다루면 마음이 편안해 질 것이다. 즉 신명이 밝아지는 것이다.
 

아무튼 그 친구와는 두세 달 정도 같이 잘 지내다가, 그 친구 아버지가 서울로 전근 가는 바람에 금방 헤어지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가장 좋아하는 친구라는 생각에 한동안 껴안고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내 어깨도 들썩거리고, 그 친구 다리는 떨고…암튼 둘이 눈물을 펄펄 흘리며 다짐했다. 커서 꼭 다시 만나자고 말이다. 절대 우리의 우정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오늘 그 친구 이름조차 기억이 아물아물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기도 하다. 이제라도 만나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떨지 마~ 우리가 있잖아!” 침 하나 들고서 말이다.


설마 지금도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 떨고 있으면 연락해!!! 침 들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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