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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은 지금

11월 다섯째 주 소개코너 - 마법의 음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30.
편집자의 Weekend 소개코너

 

한자덕후 시성's

"음식(飮食)"

 

 

한자의 맛

 

한자는 재밌다. 왜 그런가. 모양을 보면 그림처럼 한 세계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까막눈 수준이라 확연하게 그려지진 않지만 그래도 자꾸 보고 있으면 뭔가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느 순간 그 이미지들이 내 현실과 꽉 맞물릴 때가 있다. 그때의 쾌감이란. 이 쾌감 때문에 한자를 보고 있으면 즐겁고 반갑다. 이런 걸 한자-쾌락주의라고 불러야 할까.^^

 

한편으론 한자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아서 좋다. 그 안에 거대한 사유의 집이 꼭꼭 숨겨져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긴다. 간혹 모르는 한자가 나와서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것들은 하나의 집이다. 이것저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고 다른 글자들과 만나서 식구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로 만들어진다. 몇 천 년 혹은 몇 백 년을 저렇게 붙어 다녀야 하는 글자들의 팔자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언제부터 한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걸 하면 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던 게 먼저다. 고백하건대 한자는 그 어느 문자보다 예쁘다. 쓰는 맛도 보는 맛도 다른 문자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아주 신체적인 반응을 가져다준다고나 할까. 그래서일까. 한번 써본 글자는 잘 까먹지 않는다. 쓰는 맛, 쓰는 순서, 모양이 완성된 글자는 보는 맛. 이것들이 글자를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자를 음미하며(?) 살아가는 시성편집자~ 그 학구열이 부럽습니다(^^).

한자를 맛있게 음미하는(?) 시성편집자. 한자-쾌락주의라니, 학구열이 부러울 따름(^^).

 

 

주단계의 경고 : 음식은 작작 먹어라!

 

오늘은 음식(飮食)이라는 한자를 풀어볼까 한다. 음식. 매일 먹는 거다.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탈이 나기도 한다. 금원시대의 의사였던 주단계(朱丹溪)는 음식이야말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잠시 그의 음성을 들어보자.

 

사람 몸이 귀중한 것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이기 때문이다. 입 때문에 몸을 상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득하다. 사람이 이 몸을 지님에 기갈(飢渴)이 연거푸 일어나니, 이에 음식을 만들어 그 삶을 이어 나간다. 저 우매한 사람을 보면 구미에 따라 오미를 지나치게 섭취하니 병이 벌떼처럼 일어난다. 병이 생기는 것은 그 기미가 지극히 미소하지만 군침이 돌아 이끄는 대로 먹다보면 문득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병이 생기게 되고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게 되니,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고, 의사를 찾고 기도를 드리는 등 온갖 짓을 다 하게 된다. 산야의 빈천한 사람들은 담박한 음식에 익숙하고, 동작을 쉬지 않으니 그 몸이 또한 편하다. 다 같은 기운과 체격을 타고났으되 유독 나만 병이 많은가 하고 뉘우치는 마음이 한번 싹트면 티끌이 걷히고 마음의 거울이 깨끗해진다. 그러므로 ‘음식을 조절하라.’는 것은 『주역·이괘(頣卦)』의 상사(象辭)이고, ‘조그마한 입을 기르려다 큰 몸을 해친다.’는 것은 『맹자·고자장구상』의 가르침이다. 입은 병을 생기게 할 뿐 아니라 너의 덕까지 망칠 수도 있으니, 입을 병마개처럼 막아 탈이 없게 하라.

ㅡ주단계, 『격치여론』, 「음식잠(飮食箴)

 

입의 즐거움을 찾다가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무서운 잠언이다. 허나, 그는 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철한(鐵漢), 즉 의지가 쇳덩이 같은 사람이라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음식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수 없다니! 대체 음식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飮)은 밥 식(食)과 하품 흠(欠)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그러나 이 글자가 만들어진 초기의 형태를 보면, 왼쪽의 식(食)은 ‘뚜껑 있는 밥그릇’의 상형이 아니라 ‘술동이(酉)’의 상형이고, 오른쪽의(欠)도 ‘입 벌리고 하품하는 사람’의 상형이 아니라, 갑골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술동이에 머리 처박고 술을 마시는 사람’의 상형이었다. (중략) 그러니까 음(飮)은 처음부터 술고래의 형상으로 술의 마성(魔性)을 잘 환기시키는 글자이다.

 

김언종, 『한자의 뿌리』, 문학동네, p.724

 

 

아! 이러니 쫌 이해가 된다. 원래 음(飮)이란 술의 마력으로부터 출발한 글자라는 것. 그렇기에 이 마력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법이라는 것. 그러니 음식에 대한 욕망이 사람의 의지를 꺾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음식(飮食)은 사실 철학적 주제다. 왜냐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하나의 시공간을 먹는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자체가 그냥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그것이 거쳐 온 시간과 공간의 다른 표현양식임을 기억하면 이건 꽤나 복잡한 주제들로 다가온다. 이것이 ‘나’라는 또 다른 시공간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보이지 않는 관계들. 그것들이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철학적 주제이겠는가. 하지만 밥 먹으면서 이런 생각하면 꼭 체한다. 아니 빈속에도 좀 거북해져 오는 것 같다.^^

 

(食)의 갑골문을 보면, 위로부터 ‘식기 뚜껑’ ‘밥’ ‘그릇’의 상형임을 볼 수 있다. 가운데의 삼각형 부분이 밥이다. 일부 자형에 보이는 몇 개의 ‘점’은 ‘김’을 형상화한 것인데 오늘날의 자형에서는 제 3획, 즉 점 하나로 고착되었다.

 

김언종, 『한자의 뿌리』, 문학동네, p.486

 

 

(食)은 밥이다. 또 장난기가 발동한다. 음식(飮食)은 밥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 하는 반주로구나!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반주의 역사는 무지 길다. 『맹자』에 보면 아버지의 상에 술과 고기를 올리는 것은 효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아버지를 늘 알코올릭(?)에 빠뜨리는 게 효자다? 사실 이 시절엔 술과 고기만큼 귀한 게 없었다. 그러니 세상에게 제일 귀한 걸로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이니 이 어찌 효도가 아니겠는가. 다만 아버지가 그것을 절제할 수만 있다면야! ‘술 더 내놔! 고기 더 내놔!’^^

 

아무튼 음식(飮食)은 살이 되기도 하고 병(病)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어딜 가나 먹고 마시고 있는 시대엔 살보다는 병(病)이 되는 일이 많은 듯하다. 입을 병마개처럼 닫고 살 수 없는 시대에 우리에게 음식(飮食)이란 무엇인지 한번쯤은 되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도덕적 결론을 쓰는 순간에도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입술에 설탕이라도 바른 건지,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들어간다(-_-).

입술에 설탕이라도 바른 건가, 왜 먹어도 자꾸 들어갈까(-_-)

 

 

주단계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

겨울에 움직이지는 않고 계속 먹고 있는 저로서는 많이 찔리네요;;

정말, 먹는 것만큼 유혹이 센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진정한 적은 바로 나의 욕망?!?

 

다음 주는  북드라망 매니저의 '이 만화를 보라'가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어떤 특집으로 찾아올까요? 만화책 매니아들, 기대하세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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