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덕후 시성's
"음식(飮食)"
한자의 맛
한자는 재밌다. 왜 그런가. 모양을 보면 그림처럼 한 세계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까막눈 수준이라 확연하게 그려지진 않지만 그래도 자꾸 보고 있으면 뭔가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느 순간 그 이미지들이 내 현실과 꽉 맞물릴 때가 있다. 그때의 쾌감이란. 이 쾌감 때문에 한자를 보고 있으면 즐겁고 반갑다. 이런 걸 한자-쾌락주의라고 불러야 할까.^^
한편으론 한자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아서 좋다. 그 안에 거대한 사유의 집이 꼭꼭 숨겨져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긴다. 간혹 모르는 한자가 나와서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것들은 하나의 집이다. 이것저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고 다른 글자들과 만나서 식구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로 만들어진다. 몇 천 년 혹은 몇 백 년을 저렇게 붙어 다녀야 하는 글자들의 팔자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언제부터 한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걸 하면 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던 게 먼저다. 고백하건대 한자는 그 어느 문자보다 예쁘다. 쓰는 맛도 보는 맛도 다른 문자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아주 신체적인 반응을 가져다준다고나 할까. 그래서일까. 한번 써본 글자는 잘 까먹지 않는다. 쓰는 맛, 쓰는 순서, 모양이 완성된 글자는 보는 맛. 이것들이 글자를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자를 음미하며(?) 살아가는 시성편집자~ 그 학구열이 부럽습니다(^^).
한자를 맛있게 음미하는(?) 시성편집자. 한자-쾌락주의라니, 그 학구열이 부러울 따름(^^).
주단계의 경고 : 음식은 작작 먹어라!
오늘은 음식(飮食)이라는 한자를 풀어볼까 한다. 음식. 매일 먹는 거다.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탈이 나기도 한다. 금원시대의 의사였던 주단계(朱丹溪)는 음식이야말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잠시 그의 음성을 들어보자.
사람 몸이 귀중한 것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이기 때문이다. 입 때문에 몸을 상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득하다. 사람이 이 몸을 지님에 기갈(飢渴)이 연거푸 일어나니, 이에 음식을 만들어 그 삶을 이어 나간다. 저 우매한 사람을 보면 구미에 따라 오미를 지나치게 섭취하니 병이 벌떼처럼 일어난다. 병이 생기는 것은 그 기미가 지극히 미소하지만 군침이 돌아 이끄는 대로 먹다보면 문득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병이 생기게 되고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게 되니,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고, 의사를 찾고 기도를 드리는 등 온갖 짓을 다 하게 된다. 산야의 빈천한 사람들은 담박한 음식에 익숙하고, 동작을 쉬지 않으니 그 몸이 또한 편하다. 다 같은 기운과 체격을 타고났으되 유독 나만 병이 많은가 하고 뉘우치는 마음이 한번 싹트면 티끌이 걷히고 마음의 거울이 깨끗해진다. 그러므로 ‘음식을 조절하라.’는 것은 『주역·이괘(頣卦)』의 상사(象辭)이고, ‘조그마한 입을 기르려다 큰 몸을 해친다.’는 것은 『맹자·고자장구상』의 가르침이다. 입은 병을 생기게 할 뿐 아니라 너의 덕까지 망칠 수도 있으니, 입을 병마개처럼 막아 탈이 없게 하라.
ㅡ주단계, 『격치여론』, 「음식잠(飮食箴)」
입의 즐거움을 찾다가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무서운 잠언이다. 허나, 그는 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철한(鐵漢), 즉 의지가 쇳덩이 같은 사람이라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음식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수 없다니! 대체 음식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음(飮)은 밥 식(食)과 하품 흠(欠)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그러나 이 글자가 만들어진 초기의 형태를 보면, 왼쪽의 식(食)은 ‘뚜껑 있는 밥그릇’의 상형이 아니라 ‘술동이(酉)’의 상형이고, 오른쪽의 흠(欠)도 ‘입 벌리고 하품하는 사람’의 상형이 아니라, 갑골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술동이에 머리 처박고 술을 마시는 사람’의 상형이었다. (중략) 그러니까 음(飮)은 처음부터 술고래의 형상으로 술의 마성(魔性)을 잘 환기시키는 글자이다.
ㅡ김언종, 『한자의 뿌리』, 문학동네, p.724
아! 이러니 쫌 이해가 된다. 원래 음(飮)이란 술의 마력으로부터 출발한 글자라는 것. 그렇기에 이 마력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법이라는 것. 그러니 음식에 대한 욕망이 사람의 의지를 꺾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음식(飮食)은 사실 철학적 주제다. 왜냐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하나의 시공간을 먹는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자체가 그냥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그것이 거쳐 온 시간과 공간의 다른 표현양식임을 기억하면 이건 꽤나 복잡한 주제들로 다가온다. 이것이 ‘나’라는 또 다른 시공간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보이지 않는 관계들. 그것들이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철학적 주제이겠는가. 하지만 밥 먹으면서 이런 생각하면 꼭 체한다. 아니 빈속에도 좀 거북해져 오는 것 같다.^^
식(食)의 갑골문을 보면, 위로부터 ‘식기 뚜껑’ ‘밥’ ‘그릇’의 상형임을 볼 수 있다. 가운데의 삼각형 부분이 밥이다. 일부 자형에 보이는 몇 개의 ‘점’은 ‘김’을 형상화한 것인데 오늘날의 자형에서는 제 3획, 즉 점 하나로 고착되었다.
ㅡ김언종, 『한자의 뿌리』, 문학동네, p.486
식(食)은 밥이다. 또 장난기가 발동한다. 음식(飮食)은 밥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 하는 반주로구나!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반주의 역사는 무지 길다. 『맹자』에 보면 아버지의 상에 술과 고기를 올리는 것은 효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아버지를 늘 알코올릭(?)에 빠뜨리는 게 효자다? 사실 이 시절엔 술과 고기만큼 귀한 게 없었다. 그러니 세상에게 제일 귀한 걸로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이니 이 어찌 효도가 아니겠는가. 다만 아버지가 그것을 절제할 수만 있다면야! ‘술 더 내놔! 고기 더 내놔!’^^
아무튼 음식(飮食)은 살이 되기도 하고 병(病)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어딜 가나 먹고 마시고 있는 시대엔 살보다는 병(病)이 되는 일이 많은 듯하다. 입을 병마개처럼 닫고 살 수 없는 시대에 우리에게 음식(飮食)이란 무엇인지 한번쯤은 되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도덕적 결론을 쓰는 순간에도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입술에 설탕이라도 바른 건지,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들어간다(-_-).
입술에 설탕이라도 바른 건가, 왜 먹어도 자꾸 들어갈까(-_-)
주단계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
겨울에 움직이지는 않고 계속 먹고 있는 저로서는 많이 찔리네요;;
정말, 먹는 것만큼 유혹이 센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진정한 적은 바로 나의 욕망?!?
다음 주는 북드라망 매니저의 '이 만화를 보라'가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어떤 특집으로 찾아올까요? 만화책 매니아들, 기대하세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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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동원 이라는 말이 있죠.^^
약에 버금갈정도로 음식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인데요
먹는 음식 건강에 정말 중요합니다.ㅎㅎ
답글
어릴 때 밥을 남기면 혼나곤 했는데요, 그때 '쌀알에 들어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릴 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은 쌀 하나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을 어렴풋이 조금씩 알아가고 있네요. 그래서 식약동원이로구나! 요렇게요. 하하;;
요즘 저한테 제일 큰 고민중 하나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이라서 이렇게 글 남겨봅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답글
능금님 안녕하세요.
음...식욕 때문에 고민이라 말씀하셨는데, 식욕과 식탐은 다릅니다.
머리로 아는데, 몸으로 행하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요것은 지금 고민하고 계신 '식욕'문제가 사실은 식탐과 연합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입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닥터 K의 마음문제 상담소』에 잘 나와있어요. (깨알홍보! ^^*)
그리고 뭔가 먹고 싶을 때가 언제인지, 그때 감정이 어떤지 한번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메모를 짧게 남겨놓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지난 후에 그 메모를 보면서 공통점이 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여하튼 꼭, 고민해결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