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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내 안의 길, 내 안의 미로 - 오수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8.

오수혈(五輸穴), 미로와 치유의 길 ②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주지하듯이 오수혈은 미로다. 미로는 전체를 봐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명심하자. 그것은 오직 하나의 길이며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미로엔 아직 가보지 못한 수많은 길과 방법들이 산재해 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이 미로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시공간으로부터 병과 치유, 오행이 뒤섞인 오수혈의 세계는 실로 아름다웠다.^^ 오늘은 이 미로의 숨겨진 길들을 따라간다. 그 길로 들어서기에 앞서 하나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길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의 전경들을 보여줄 것이다.


걸어가느냐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위를 날아가느냐에 따라 시골 길이 발휘하는 힘은 전혀 달라진다. (중략) 비행기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직 길들이 풍경 속을 뚫고 나가는 모습만을 볼 뿐으로 그의 눈에 길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펼쳐진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길의 지배력을 알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쭉 펼쳐져 있는 평야에 불과한 지형들로부터 마치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하는 지휘관의 호령처럼 원경들, 전망대, 숲 속의 공터, 굽이굽이 길목마다 펼쳐진 멋진 조망을 불러낼 수 있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음경과 양경 혹은 강밀도

이제야 겨우 오수혈의 입구다. 본격적으로 오수혈을 탐사하려면 보다 세세한 부분들로 들어가야 한다. 이 길은 지난번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몸으로 느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오수혈은 몸이다.
 

일단 오수혈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오수혈은 팔꿈치와 무릎 아래에 있다. 다른 곳에도 혈(穴)이 많음에도 이 위치에 있는 혈만을 골라 오수혈로 채택했다. 왜 이렇게 한 것일까. 이유가 좀 거시기하다. 천지(天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혈들이기 때문이란다. ‘무릎 아래로는 땅에 가깝고 팔꿈치 위로는 하늘에 가깝다.’ 발이 땅과 가깝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손이 하늘과 가깝다? 선뜻 납득이 안 된다. 더구나 고전들은 이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대체 어쩌라고?
 

답은 손에 있다. 자, 손을 한번 높이 들어보시라. 머리보다 하늘에 더 가까이 있다. 헉! 이 바닥이 이렇다.^^ 사람들은 묻는다. ‘지금 장난 하냐?’ 장난 아니다. 그게 오수혈이 팔과 다리에 있는 정확한 이유다. 오수혈은 인간을 천지(天地)와 통(通)하는 존재로 구성하기 위한 일종의 기획이다. 오수혈을 계절이나 수로(水路) 등의 자연과 연결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몸은 자연이다. 이 명제를 위해 동양의학은 거의 모든 것을 동원한다. 오수혈은 또한 이 명제를 위해 팔과 다리에 터를 잡았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배치하자 손가락과 발가락이 마치 안테나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안테나로 천지의 오행(五行)과 교신한다. 바깥의 천지만이 아니다. 내 안의 오행, 오장육부(五臟六腑) 또한 손과 발에 연결되어 있다. 손발이 안팎의 천지를 연결하는 안테나인 셈이다. 이 교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손발이 가장 먼저 저려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불통(不通)! 그러고 보면 영화 <E.T.>에서 소년과 ET가 주고받았던 손가락 교감은 판타지가 아니다. 오수혈의 세계에서 이 광경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헌데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손끝과 발끝이 음경(陰經)과 양경(陽經)의 기운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것, 거기서 음과 양의 기운이 흐름을 바꾼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주제인 강밀도와도 관련되어 있다. 좀더 들어가 보자.
 

오수혈은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천지와 소통한다. ET의 세계가 매번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헉!


몸은 6개의 양경과 6개의 음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경은 아래로 내려가는 흐름을, 음경은 위로 올라가는 흐름을 탄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그동안 우리는 양이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고 음이 아래로 내려가려는 성질이 있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이게 반대로 작동한다고?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그래야 몸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양경이 올라가는 리듬을 타고 음경이 내려가는 리듬을 탈 때 우리 몸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마도 음양이 분리되면서 몸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몸의 세팅 자체가 이런 반대의 흐름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몸을 움직여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철저하게 음양의 이치를 따르라고 요구한다. 유형적인 몸에서는 음양의 흐름을 거스르는 작용이 형체를 유지시키는 반면 삶은 음양의 흐름과 맞아야 한다는 것. 재밌다. 몸과 삶, 유형과 무형. 이 둘이 모여서 또 하나의 음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실 태극(太極)이 이런 모습이다. 음이 양을 품고 양이 음을 품고 있듯이 음경 안에 양의 흐름을, 양경 안에 음의 흐름을 배치하는 것. 이건 일종의 전략과도 같다. 이렇게 되면 한 순간도 반대되는 벡터를 가지지 않고서는 작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건 사는 것이건 모두 음과 양, 태극의 운동으로 굴러간다. 결국 음양이 같이 하는 것만이 생(生)의 전부라는 것을 오수혈 안에도 새겨놓았다는 얘기다. 참, 이 세계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짐작이 안 된다. 아무튼 오수혈은 경락 안에 이 태극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진이 없어서 직접 그렸다. 용서해주시길^^

좀더 나가보자. 손끝과 발끝으로 갈수록 경락의 길은 좁아지고 반대는 넓어진다. 손끝으로 향하는 음경이 폭이 좁은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손끝에서 몸으로 향하는 양경은 좁은 길에서 넓은 대로를 따라 내려간다. 발은 반대다. 양경은 폭이 좁아지는 길로 내려가고 음경은 넓어지는 길을 타고 올라온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아주 쿵짝이 잘 맞는다.^^ 사실 이 반복되는 리듬 위에서 음경과 양경의 강밀도가 계속해서 변주된다. 좁은 길로 갈 때는 기가 응집되고 넓은 길로 들어서면 기가 분산되는 것이다. 이 응집과 분산의 반복적이면서 연쇄적인 리듬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경락의 흐름이다. 아니 그것이 일상적 리듬이기도 하다. 일과 휴식, 집중과 산만, 응집과 분산. 이 흐름을 반복하는 것이 삶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그런 점에서 경락의 흐름 자체가 삶의 강도와 밀도를 결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흐름이 막히면 강도와 밀도는 떨어지고 통하면 높아진다.
 

주목해야할 것은 손과 발이다. 이곳에서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 몸에서 손끝과 발끝은 음양의 흐름이 전환되는 곳이다. 손끝으로 가면서 응집되는 음경이 양경으로 전환되고 발끝으로 가면서 응집되는 양경은 음경으로 전환된다. 핵심은 이 전환에 있다. 흔히 손은 섬세함을, 발은 활동성을 상징한다. 손은 음경의 기운이 응축되는 곳이므로 음의 섬세함이 드러나고 발은 양경의 기운이 응집되는 곳이므로 양의 활동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손과 발은 섬세함과 활동성이 맞물리고 음양의 흐름이 전환되는 현장이다. 더구나 우리 몸에서 손과 발은 가장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신체부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음양의 기운이 가장 강렬하게 부딪히고 전환되는 장소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곳이라고. 몸에서도 그렇듯 삶에서도 이 강밀한 음양의 전환이 일어날 때 존재가 자유로워진다고. 요컨대 자유는 강도와 밀도로부터 온다. 오수혈은 우리 몸에서 그 강도와 밀도가 만들어지는 장소다.


오행과 정형수경합

문제는 오행배열에 있다. 여기에 이르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진다. 왜 음경과 양경의 오수혈은 서로 다른 오행의 배열을 갖는가.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음경의 오수혈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순서로, 양경의 오수혈은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의 순서로 진행된다. 한번 보시라. 음경의 오행을 양경의 오행이 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헌데 편작이 지었다는 『난경』에서는 이걸 천간(天干)합으로 설명한다. 가령 음경의 木은 천간의 乙木에 해당하고 양경의 金은 천간의 庚金에 해당하기에 서로 합을 하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초보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코스다. 대신 이렇게 천간합을 이용해서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 몸에서 양경은 바깥쪽으로, 음경은 안쪽으로 흐른다. 양경이 몸의 바깥쪽을 돌면서 단단한 피부를 형성한다면 음경은 몸 안쪽으로 돌면서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피부를 관장한다. 팔을 펴보시라. 여기서 손등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바깥에 해당한다. 반면 손바닥에서부터 겨드랑이로 이어지는 라인은 안쪽이다. 바깥쪽은 단단하고 안쪽은 부드럽다. 이것은 양은 굳세고(剛) 음은 부드럽다(柔)는 음양의 성질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런데 왜 양경의 오행과 음경의 오행이 서로 합을 한다고 설명하는가. 이건 음경과 양경의 배치에서 비롯되었다. 양경은 양의 기운이 흘러 다니는 길이라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성질을 갖는다. 반면 음경은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한다. 이걸 합으로 묶어 놨다. 양경이 음경에게 반해서 안쪽으로 기운을 돌리고 음경은 양경을 향해서 바깥쪽으로 기운을 돌린다는 것. 결국 이것 또한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몸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배치다.
 

그런데 흥미로운 해석이 하나 있다. 음경과 양경의 오행배열이 왜 다른지를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가지고 설명하는 해석이다. 음경은 우리 몸에서 오장(五臟)과 연결되고 양경은 육부(六腑)와 연결된다. 오장은 주로 기운을 저장하는 일을 맡고 육부는 주로 소화키시고 흡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쉽게 육부는 소화기관으로 보면 된다. 이 소화기관들은 열매(金)를 먹으면 그것을 죽의 형태(水)로 전환시킨다. 소화된 죽은 곧 소장과 대장이라는 킨 소화기관(木)을 거치면서 흡수되고 여기서 얻어진 영양분은 혈액과 함께 온몸으로 퍼진다(火).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몸을 토실토실하게 살찌운다(土). 반면 오장은 동맥으로부터 얻은 영양분을 모세혈관으로 보낸다(木). 모세혈관을 통해서 공급된 영양분은 조직으로 스며들고(火) 이 영양분을 조직에 맞게끔 변화시킨다(土). 여기서 남은 영양분이나 조직에서 생산된 물질들(金)은 다시 오장으로 저장된다(水). 즉, 우리 몸의 생리적 구조에 맞게끔 음경과 양경의 오행배열을 다르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해석이 더 타당한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오수혈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대신 중요한 것은 그 해석이 음경과 양경, 몸의 생리적 구조, 오행의 배열 등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좀 오래 걸린다.^^
 

마지막으로 정형수경합(井滎輸經合) 각각의 특징들을 좀 살펴보자. 정혈(井穴)은 손발의 끝에 있다. 기운이 막 솟아나오는 것이 물이 샘솟는 우물 같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정혈은 병이 시작될 때 주로 쓰이는 혈자리다. 모든 병의 초기 증상은 가슴 밑이 그득한 심하만(心下滿)이라는 증상이다. 이때 정혈에 침을 놔서 뭉친 기운을 푼다. 정혈의 특징 가운데 주목해야할 것은 정혈이 정신병과 구급병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이미 보셨다시피 정혈은 우리 몸에서 기운이 가장 응축되어 있는 곳이다. 갑자기 졸도하거나 급하게 먹어서 체했을 때 사지의 손끝과 발끝을 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형혈(滎穴)은 정혈에서 모인 기운이 고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주로 몸에서 열이 나는 증상인 신열(身熱)을 치료한다. 심장에 열이 있을 때도 이 형혈을 이용한다. 수혈(輸血)은 시냇물처럼 기운이 힘차게 흘러가는 단계를 의미한다. 수혈은 보통 삭신이 쑤시고 몸이 묵직한 것을 치료한다. 이것을 체중절통(體重節痛)이라고 부른다. 각종 관절염이나 신경통에도 수혈이 이용된다. 경혈(經穴)은 정혈에서 시작된 기운이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는 단계다. 기침이 나오고 몸이 뜨거워졌다가 식었다는 반복하는 증상에 주로 쓰인다. 합혈(合穴)은 오장육부로 들어가기 바로 전단계의 오수혈이다. 이 합혈은 주로 기가 역류해서 생기는 두통이나 심한 설사 등에 쓰인다. 합혈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주로 만성병(慢性病)을 다스리는데 쓰인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만성병의 경우엔 기가 완만하게 분산된 합혈로 치료한다. 정형수경합은 병이 발생해서 만성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지난 시간에도 보셨다시피 오수혈은 병리와 생리가 만나는 길이다. 이 길은 오행과 시공간, 음양과 태극의 배치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그 길의 흐름을 따라잡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수혈을 통해 인간을 천지자연과 연결하려고 했던 기획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오수혈은 동양침술의 핵심이다. 동양의학에서 치유란 천지자연과 내 안의 자연을 통(通)하게 하는 일이다. 이 치유의 길 위에 오수혈이 있다. 미로 혹은 치유의 길, 오수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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