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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루크레티우스와 만나다』 리뷰 ③ 비껴나고 마주치고 잉태하고

by 북드라망 2023. 7. 6.

『청년, 루크레티우스와 만나다』 리뷰 ③

비껴나고 마주치고 잉태하고

한상화(남산강학원)

 


하나의 질문, 수없이 많은 괴로움
나의 몸을 보니,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과학 발전의 정점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부모님 세대)보다 자유롭게, 세상에 속박되지 말고 다양하게 살아라.’라는 정신적 응원도 많이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 청년들은 남들과는 다르게, 다채롭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대학 입학 후 겪은 ‘그’ 문제 현실에 공감이 가도 너무 공감이 갔다. 저자와 일체감을 느낄 정도로! 저자가 꿈꿔온 환경공학의 현장에서 목격한 반(反)생태적 민낯과 회의감은 나의 현장이었던 사회과학대와 다르지 않았다. 저자에게 큰 고민을 던져준 ‘어떻게 먹고 살래?’라는 자문도 청년, 청소년, 중장년 모두가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모두가 이 한 문장 앞에서 자신의 수없이 많은 욕망과 괴로움을 뼛속까지 느껴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대학과 규문을 두고 치열하게 한 고민은 눈물겹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런 불안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에서 많이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형서점 스테디셀러 선반만 스캔해 봐도 자기계발, 여행, 자존감 수업 등등 몇 가지 해법들로 추려진다. 

 

원자의 기원으로 올라가 고대 그리스에 이르고 보니, 거기에는 완전히 다른 과학이 있었다. 자연을 탐구하는 일 자체에 이미 ‘어떻게 잘(=올바르게=아름답게=행복하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이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성민호,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북드라망, 25쪽)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문제를 물질세계인 고대 원자론 안에서 던지고 받고 있다. 원자론이라니! 삶을 이렇게 저렇게 헤쳐나가라는 조언 중에서 귀빠지고 처음 들어보는 영역이었다. 

 


낯선 개념에서 찾아낸 낯선 삶의 태도  
 ‘원자’, ‘허공’, ‘클리나멘’, ‘시뮬라크라’ 등 낯선 ‘과학’이 줄줄이 등장하지만, 문과생의 예상을 깨고 매우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루크레티우스가 살았던 기원전 1세기의 전후 시대상부터 설명을 시작하니 원자론의 사유가 어떻게 만들어져 갔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니, 보다 더 향락과 불안이 공존했다. 한쪽엔 경기장과 오락이 다른 한쪽엔 온갖 종교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은 다양한 철학자들을 낳았다. 만연한 욕망과 두려움을 본 철학자들이 한 것은 탐구였다. 저자의 스승인 루크레티우스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모든 것을 무지에 두지 않고,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근원을 탐구해 나갔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루크레티우스의 철학도 앞선 철학들과 서로 얽히고 풀어지며 형성되었다. 이 모습을 보며 철학이 현실을 떠나 존재할 수 없듯이, 철학적 사유도 절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청년인 나에게도 얽혀져 이어지는 탐구이다.

 

 

저자는 사물의 본성으로 ‘원자’와 ‘비어 있음’이 어떻게 실재하는지 보여준다. 이로써 원자론의 진리인 “원자가 존재하고, 허공이 존재한다. 그와 더불어 원자들의 만남이 존재한다. 이 세 가지만이 ‘존재’다”(성민호,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북드라망, 74쪽)라는 점을 사유할 수 있다. 또한, 운동의 기원을 탐구하여 원자 차원에서 일어나는 미시적 자가 운동인 ‘클리나멘(clinamen)’도 있다. 과학이라는 세계는 기계처럼 예정된 패턴처럼 돌아가리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아니었다. 원자가 이루고 있는 이 세상은 빗나가는 세계다. 원자들은 아주아주 작게 경로에서 이탈한다. 이 ‘비껴남’은 예상 밖의 만남을 만들고 예정 밖의 잉태를 만든다. 이외에도 원자들로 이루어진 극히 얇은 막 또는 대열인 ‘시뮬라크라(simulacra)’도 등장해 자연학의 개념이 자의식의 재난과 연결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또한 책에는 이러한 고대 원자론과 함께 청년 저자의 마치 병증 같은 사랑 이야기, ‘탈출’했지만 깊은 성장을 안겨준 종교 이야기, 돈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 경계를 넘나드는 우정 이야기가 가득하다. 삶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친구, 이태원, 자연재해에서 본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다.

 


너의 이름은, 마주침
봄, 여름, 가을, 겨울 목차마다 가득 담긴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와 다시 답한다.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좋은 삶’이 늘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구성이나 운동방식에 무지한 채로 결심하고 밀어붙이기 때문이라고. ‘지복’은 어디 있을까.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에서 ‘지복’을 만났고 저자는 루크레티우스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이토록 뒤흔드는’ 두려움과 욕망을 ‘치유’하는 철학을 만났다. 루크레티우스의 과학(자연학)에 따르면 무언가를 끝까지 쪼개면 나오는 원자는 결국 온 세상 만물의 끝과 시작이다. 그렇기에 내 ‘안쪽’의 재난을 떨쳐내는 게 세상의 재난을 해결하는 것이게 된다. 그러므로, 저자가 탄생시킨 이 책은 나의 세상을 움직인 엄청난 사건이다. 

 

만물의 창조력으로서의 클리나멘이라는 사유는, 놀랍게도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우주 발생의 기원에 대한 설명과 매우 흡사하다. 끊임없이 반짝이는 ‘약간의 편차’, 그것이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해왔다.(성민호,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북드라망, 79쪽)


거절의 패턴에서 비껴나 어쩌다 덜컥 쓰게 된 이 리뷰가 나에게 바로 원자의 미세한 ‘우발적 국면 전환’이다. 그리고 이 전환으로 기후재난 속에서 사슴벌레 한 마리를 살리고자하는 하는 마음을 가진 저자를 만났다. 이 ‘마주침’은 책을 매개로 하여 든든한 새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마주침’이 ‘우정’을 잉태한 것이 아닐까! 원자의 이합집산인 저자와 나를 포함한 모든 읽는 이들이 원자의 ‘미세한 벡터 변경’으로 비껴나고 마주치고 잉태하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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