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이야기] 할머니와 어머니의 장수(長壽)

by 북드라망 2022. 8. 26.

할머니와 어머니의 장수(長壽)



형과 기가 부합하면 오래 산다

 

[形氣定壽夭] 형체와 정기(精氣)가 서로 부합하면 오래 살지만, 서로 부합하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 (…) 요컨대 혈기와 경락이 왕성하여 형체를 충분히 감당하면 오래 살지만, 형체를 감당하지 못하면 일찍 죽는다. (…) 형체가 충실하고 맥이 굳세고 큰 사람은 順하다 할 것이나, 형체가 충실해도 맥이 작고 약한 사람은 기가 쇠약한 것인데, 기가 쇠약하면 위험하다. (…)” (『영추』) (허준 지음, 『동의보감』, 동의문헌연구실 옮김, 법인문화사, 2012, 204쪽)


동양에서는 고대로부터 우주는 기로 가득차 있다고 보았다. 기의 이합집산(離合集散), 즉 우주 안에 가득한 기가 활발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과정에서 우주만물이 생성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 흩어진 채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운동성만 가지고 있는 상태를 ‘기(氣)’라 하고, 뭉쳐져서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실체를 드러낸 상태를 ‘형(形)’이라 한다. 그러니 우주에 가득찬 기는 다시 기와 형의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은 이 둘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기의 산물인 우리 몸에도 기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하나는 기가 모여 형태를 이룬 것으로 체형, 뼈대, 오장육부, 이목구비, 혈, 진액 등등 눈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운동성만을 갖는 것으로 기운으로 느껴질 뿐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살아있는 육체와 주검을 보면 둘 다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는 살아 움직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여기서 인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그것이 바로 기(氣)이다.

인체에서 기(氣)는 부모로부터 받은 정기(精氣), 음식물 섭취로 얻는 곡기(穀氣), 호흡으로 받아들이는 청기(淸氣), 그리고 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장, 비위, 폐 등 장부의 생리기능에 의해 생성되는 기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정기다. 좁은 의미의 타고난 정기 자체는 다시 채워지지 않지만, 음식물 섭취, 호흡, 장부의 생리활동으로 생성된 기들로 끊임없이 보충이 된다. 그래서 “혈기와 경락이 왕성”하면 기의 흐름과 생성이 활발해져서 기가 형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로 인해 형체가 충실히 길러지고 충실해진 형체의 생리작용으로 다시 기가 충실해진다. 고로 형과 기는 둘로 나누어져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가 곧 형이 되고 형이 곧 기가 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이 분리되면 생명은 끊어진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타고난 기운과 형체를 조화롭게 운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탐구해왔고 그 지혜들을 모아 놓은 것이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양생법이다.

 

그렇다면 기와 형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자. 자동차에 비유하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배기량 3000cc인 대형차[形]에 600cc 소형차의 엔진[氣]을 달면 엔진이 차체를 감당할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배기량이 적은 차에 강한 엔진을 달면 이번에는 차체가 엔진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다른 것보다 크고 강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체를 구성하는 기와 형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600cc 할머니와 3000cc 어머니
할머니는 1978년에 93세로, 어머니는 2015년에 9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두 분 모두 장수하셨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점에서 너무 대조적이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할머니는 동네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초소형 승용차, 어머니는 전국을 좁다 하고 다니는 대형차에 비유할 수 있다.

할머니는 체구도 자그마하고 가냘프셨다. 식성도 채식 위주의 소식이셨고, 성격도 조용하고 고우셨다. 늘 집안에서 방과 마당을 오가는 게 동선의 전부였다. 가게나 이웃집에 가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배고픈 친척이 있으면 그분이 집 앞을 지나갈 때를 기다려 조용히 손짓해서 밥을 먹이셨고, 크게 소리를 내는 법도 없고 웃음도 늘 소리 없는 함박웃음이셨다. 햇살이 비치는 오후 시간이면 두루마리 편지를 꺼내 읽으시거나 사과를 긁어 드시거나 나물이나 멸치 등을 다듬거나 떨어진 양말이며 보자기를 기우셨다. 약한 체형에 걸맞게 조용조용 있는 듯 없는 듯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하시면서 그렇게 지내셨다.


어머니는 체격도 크고 살집도 있고 뼈대도 굵고 튼튼했다. 기름진 음식을 제외하고는 고루 잘 드셨고 식사량도 많았다. 여든이 넘어서까지 치아도 튼튼하셔서 생선이나 육류를 드실 때면 어지간한 뼈들은 꼭꼭 씹어서 다 드셨다. 오장육부도 튼튼해서 상하기 직전의 음식을 먹어도 거뜬하셨고 아흔이 넘어서까지 배변도 하루 한 번 규칙적이었다. 형체에 걸맞게 기도 성성하셨고, 성격도 활달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주저 없이 결단하고 힘 있게 추진하셨다. 친척들을 두루 보살피셨고, 궂은일이든 좋은 일이든 기꺼이 하셨다. 또한 당신 몫으로 주어진 것은 당당하게 받으셨다. 처음 시집오던 날 큰상(처음 시댁에 온 날, 며느리에게 차려주는 상)을 받았을 때도 여느 새색시와 달리 전혀 주눅들지 않으셨단다.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문 밖에서 “엄머이(어머나), 새댁이 절질(젓가락질)한데이~”라고 쑤군대는 소리가 들렸단다. 그러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먹으라고 채린(차린) 건데 먹지 그럼 안 먹나’하면서 이것저것 골고~루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너무 다른 두 분의 콜라보를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할머니가 워낙 형과 기가 약하다 보니 좀 드센 친척들이 할머니에 대해서 별 생각 없이 뒷담화를 하곤 했단다. 그 말이 돌아서 할머니 귀에 들어오면 대놓고 말은 못하시고 속으로 삭이거나 심히 억울할 때면 울기도 하셨단다. 어머니가 시집온 뒤 이런 상황을 목격했고, 타이밍을 보시다가 어느 날 어머니가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단다.

“우리 어멤(경상도에서 ‘어머님’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 잘못하신 일이 있으면 직접 와서 일코절고(이렇고 저렇고) 말을 하셔라. 인제부터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꼬 쑤군덕거리는 소리가 지(제) 귀에 들오면(들어오면) 그게 누구든동 입에다가 똥바가지를 퍼벘불 테이께네(퍼부어 버릴 테니) 그리들 아시소(아셔요)”라고. 그 뒤부터는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갔다고 한다.

기도 약하고 몸도 약하신 할머니는 타고난 기와 형에 맞게 삶도 고만고만하게 사셨기에 장수하셨고, 어머니 역시 충실한 체형과 성성한 기에 걸맞게 스케일이 크게 사셨기에 대체로 건강하게 장수하셨다. 만약 할머니가 욕심을 부리거나 과한 노동을 하셨다면 기가 형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어머니 역시도 충실한 몸과 성성한 기에 맞지 않게 활동과 마음씀의 범위가 좁고 우물쭈물하며 살았다면 기가 울체되어 형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자
내 몸은 전체적으로 보아 어머니처럼 충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할머니처럼 약하지도 않았다. 기와 형이 중간치 정도는 되는 몸이다. 그런데 기와 형의 균형 면에서는 두 분에 비해 많이 치우친 몸이다. 기에 비해서 형이 약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절과 근육이 약했다. 그런데도 나는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놀이나 운동을 좋아했다. 그러지 않아도 기에 비해 약하게 타고난 몸을 무리하게 쓰니 불균형이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류머티즘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격렬한 운동에는 제동이 걸렸지만, 그러나 그 이후에도 몸을 과하게 쓰고자 하는 습관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때마다 여기저기 관절에서 때로는 평소 약한 신체부위에서 이상 신호가 울렸다. 그때마다 병에 가서 주치의한테 증상을 이야기했고 그에 따라 진료과가 늘어났다. 그것이 한계에 다다르자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이런저런 노력들을 했지만 그 모든 부위의 이상을 다 감당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동의보감』을 배우면서 차츰 알게 됐다. 국소적인 부위의 증상들을 다 따로따로 다스릴 일이 아니라 우선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 후로는 의욕을 앞세워서 몸을 무리하게 끌고 가지 않도록, 컨디션이 안 좋아도 지나치게 몸을 사려서 기까지 다운되는 일이 없도록,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국소 부위의 통증을 조금씩 다스려나가니 한결 살 만했다. 그 덕분에 그때그때 필요한 부위를 스스로 손보는 노하우도 생겼다. 성능이 그다지 안 좋은 자동차를 평생 운전하며 살려면 베스트 드라이버 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관점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장수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할머니는 600cc 자동차를 처음 구입한 상태 고대로 운전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시다가 점차 운행을 줄이셨다. 자동차도 어느 정도 달려줘야 엔진이나 부품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운행하는 날보다 멈춰 서 있는 날이 많아지면 엔진에도 먼지가 쌓이고 여기저기 녹이 슬기 시작했다. 그러면 딱히 고장 난 곳은 없는데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는 자동차가 된다. 할머니가 여든 중반이 넘으면서 거의 보행을 하지 않으신 채 방안에서만 지내시게 된 이유다. 그러다 보니 어디도 아픈 데가 없는데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은 거의 방안에서만 지내셨다. 물론 대소변도 받아냈다. 그렇게 사시다가 이삼일 감기기가 조금 있으신가 했는데 어느 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에 비하면 어머니는 큰 사고를 몇 번이나 당한 3000cc 자동차를 적극적으로 손을 봐가면서 끝까지 운행을 멈추지 않으셨다. 70이 되시던 해 트럭에 치어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쳐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그때 다섯 번의 피부 이식수술을 하고 의료진도 우리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병원 5층을 아침 저녁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다. 여든 중반을 넘기고 몸이 차츰 쇠해지시면서 교통사고 당한 다리가 보행을 힘들게 했다. 그때부터는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찾아하셨고, 나머지 시간은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불경을 읽으며 마음을 돌보며 기를 다스리셨다. 그 덕분에 돌아가실 무렵까지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셨고 보행이 불편하셨던 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강하게 살다가 눈을 감으셨다. 이런 점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베스트 드라이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오래 사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태어날 때, 기와 형이 얼마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지만, 그 조건이 고스란히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수한 변수들이 끼어들기도 하고 타고난 형체와 기도 나이가 들면 그에 따라 변해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생활습관들을 조정하면서 다시 균형을 잡아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에 대한 인식과 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몸을 부분으로 나누고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수치와 평균으로 건강의 척도를 삼는 그 기준부터 내려놓자. 그리고 하루에 몇 시간 무슨 운동을 해야 한다든가, 무슨 영양제는 꼭 먹어야 한다든가 하는 일률적인 처방도 내려놓자. 그러고 나서 내 몸의 기와 형이 잘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것부터 관찰해 보자. 혹시 자주 나타나는 몸의 이상이 있다면 즉시 병원으로 달려갈 일이 아니라 기와 형, 정신과 육체의 균형 잡기라는 측면에서 자신의 일상부터 돌아보자. 이 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일상을 꾸리고 있는지,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살고 있는지를 살피다 보면 일상의 재배치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장수의 문제는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글_복희씨(감이당)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