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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리뷰대회 당선작] 파괴, 습관 바꾸기

by 북드라망 2022. 5. 25.

파괴, 습관 바꾸기

2등 - 이은희

 

 

“너 때문에 사표도 못내! 니가 싫어하니까. 넌 안정을 원하니까” 올 초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화를 냈다. 작년 말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얘기를 했을 때 힘들면 그만두라고 내가 먼저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단다. 하지만 그만두란 말을 먼저 할 순 없었다. 아이들은 크고 있고 어머니 병원비는 상당 부분 회사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나이도 있고 지병도 있어 이직이 어려울 게 뻔했다. 안정에 목매는 나 때문에 사표도 맘대로 못 낸다며 힘들다는 남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나만 잘살자고 그러는 거냐고. 그런 나의 안정을 문제 삼는 책을 만났다. 바로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다. ‘어떤 일이 닥쳐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저자는 안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럼 정말 내가 문제라고? 안정이 왜 나쁜데?


맞다. 난 안정이 중요하다. 안정을 인생 목표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안정은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다. 삶이 안정되어야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 되어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도 하고 나름 모범적 삶이었다. 안정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조건들을 계속 채워갔다. 하지만 사는 건 생각 같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노력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 억울했다. 불안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고 싶었고 그게 내가 공부를 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구심력을 발휘해서, 자꾸 안으로, 제도와 문명의 이기 안으로 들어가서 편리하게 살면 재밌고 행복할 것 같은데, 자꾸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더 살아봐야 자유와 창조적 힘을 얻지 못할 것 같으니까 아예 흩어져 버리려는 몸의 무의식 같은 겁니다.” (안도균,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 북튜브, 48쪽)


저자는 구심력과 원심력을 생명이 가진 힘의 본능이라고 한다. 구심력이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것이라면 원심력은 안정성을 파괴하려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계속 돌 수 있는 것도 구심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삶도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병이 생긴단다. 그렇다면 내가 잘 산다고 생각했던 삶은 생명 본능을 억압한 병적인 삶이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애쓸수록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는 삶이었던 셈이다. 잘 살고 싶다고 노력하는데도 잘사는 것 같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단 말인가? 

 

충격이었다. 저자는 내가 생각해왔던 행복의 조건으로 살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매순간 생명의 위협 속에 사는 야생의 동물에 비해 안정적이고 수명도 길지만 자해를 하는 이유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나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삶을 살았단 말인가? 지금처럼 살아서는 잘사는 것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이었다. 멀어지다 못해 죽고 싶어진다니 혼란스러웠다. 잘 사는데 도대체 파괴가 왜 필요한 건지 이해가 안됐다.

 

 

나는 파괴를 평화의 반대로, 무조건 나쁜 것으로 생각했었다. 집에서의 싸움은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에 안 되고, 사표는 경제적 안정을 파괴하기 때문에 안됐다. 하지만 『동의보감 강의』에서는 말한다. 원심력은 안정성을 파괴하여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추동하는 힘’이라고. 삶을 추동하는 힘은 그동안의 습관적 삶을 넘어설 때 생기는 거라고 말이다. 습관은 삶의 질서를 만들어 안정과 편안함을 주지만 습관에 고정되면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얽매이게 되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살던 대로만 살면 잘살기는커녕 살맛이 안 나는 게 당연하다는 말로 들렸다. 

 

내가 안정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살았던 건 잘 살고 싶어서였다. 이번에 『동의보감 강의』를 읽으며 지금까지 내 삶을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동물원에 살다가 죽을 거냐고. 습관에 고정되지 않기 위해 저자가 알려주는 팁은 기존의 습관을 반복하지 말아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준비하면서 내 삶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을 돌아보게 됐다. 습관적 삶을 넘어서려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습관을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난 안정을 가지려 애썼고, 그것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써왔는지 알게 된 것 같다. 

 

이번 리뷰쓰기는 내 삶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안정과 편안은 행복과 등가가 아니며 오히려 병적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계속 같은 상처를 긁어댔을 거 아닌가. 병이 깊어지기 전에 치료할 수 있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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