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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 지은이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1. 10. 25.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 지은이 인터뷰

 



1. 『홍루몽』은 『삼국연의』, 『수호지』, 『서유기』와 함께 중국 4대 명저로 꼽히는 책입니다만, 『삼국연의』 등에 비해서는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편인데요. 먼저 『홍루몽』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홍루몽』은 가보옥과 임대옥, 설보차라는 세 명의 풋풋한 십대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인 대하소설입니다. 또 ‘몽’(夢) 자가 들어간 것에서 눈치챌 수 있다시피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사대명저 중에서 『홍루몽』을 최고로 꼽고, 전 세계 문학인들에게도 『홍루몽』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바로 옆의 우리에겐 좀 생소하죠. 그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수호지』나 『삼국지』와 같이 남성 중심적인 영웅서사와 역사 중심의 시간들을 지내 왔다는 걸 반증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시대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보는데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여성적인 가치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 때문에 더욱 지금 우리에게 『홍루몽』이 소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의 전환은 당위나 투쟁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분위기로 젖어들어야 하잖아요? 『홍루몽』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자, 여성적 가치를 예찬하는 소년이 주인공이거든요.  


명문거족의 흥망성쇠에 꿈속 신선계까지 아우를 정도로 스케일이 크지만 제가 집중한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마음[情]의 미세한 결들을 따라가는 데에 있습니다. 매일매일 아침이 시작되면 세수하고 옷 입고 문안인사를 드리고 밥 먹으면서 한가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다 말 한마디에 삐지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고, 재밌어서 까르륵 넘어가기도 하는 그런 일상의 순간순간이 『홍루몽』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매일이 쌓여서 사촌 남매들 간의 삼각관계가 비극적 러브스토리가 되고, 가문은 꼭대기에 올랐다가 추락합니다. 어떤 사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의 시간이 모여서 스토리가 되어 갑니다. 『홍루몽』은 집요하게 일상의 현장만을 묘사하거든요. 아마 우리 인생도 그렇겠죠? 인생이 어디로 갈지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하루, 순간순간만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주변의 것들과 연결되어 일렁이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홍루몽』에 담겨 있는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가보옥이 겪는 마음의 행로가 아주 특이한데요, 봉건주의 시대에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도련님이 바깥세상, 즉 경세치국의 남성주의 가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이 도련님은 남자의 길을 싫어하고, 여자들 틈에만 있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루 종일 여자애들을 아끼고 사랑하느라 분주하죠. 저는 이 보옥이를 ‘정(情)의 화신’으로 보고, 그의 마음의 행로를 ‘무한한 정’의 세계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정말 보기 힘든 남자 캐릭터, 보옥이가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으시다면, 지금 『홍루몽』과 만나 보세요.
  


2. 차례가 재미있습니다. ‘홍/루/몽’을 각각 키워드로 삼아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글자의 뜻을 볼 때 ‘홍’(紅) 자와 ‘루’(樓) 자가 각각 여성(1부 홍, 여성들의 이야기), 가문(2부 루, 가문의 이야기)과 이어지는 것은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3부의 ‘몽(夢), 가보옥 이야기’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꿈과 주인공 가보옥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꿈과 가보옥의 이야기를 연결시킨 이유는 보옥의 인생 자체가 한바탕 꿈이기 때문이에요. 사실, 이 이야기는 ‘여와보천’(女媧補天) 신화로부터 시작합니다. 바로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와가 무너진 하늘을 때우려고 돌을 구웠는데 거기에 쓰이지 못하고 버려진 돌이 하나 있었다는 설정이죠. 그 돌이 보옥이로 환생하는 겁니다. 이렇게 보옥의 인생은 쓸모없는 존재에서부터 시작해요. 이 돌이 인간세상을 한 번 경험하고 싶어 하자, 신선들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즐거움을 경험해 보라며 장안대로의 ‘가부’에 태어나게 해줍니다. 하지만, 인간세상에서 보옥이가 맛보고 싶었던 건 부귀영화가 아닌 거예요. 바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 ‘정’(情)이었던 거죠. 그런데 남성중심의 봉건사회에서 항상 뒷전이었던 것, 후차적인 것, 쓸모없는 것이 ‘정’이 아니던가요. 요즘 말로는 사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정’이라는 단어 그대로 그 느낌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마음, 감정, 사랑을 모두 아우르는 느낌으로요. 
  

인간의 삶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건 마음을 그대로 느껴 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꿈처럼 한바탕의 삶을 살아 보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시한부의 보옥이는 하루하루 그 마음을 느끼며 살기에도 바쁜 거죠. 사실은 우리도 시한부인데, 왜 항상 그걸 잊고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홍루몽』을 읽으면 우리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되고, ‘지금 정말로 중요한 게 뭐지?’ 이런 질문을 하게 되죠. 
  

꿈은 『홍루몽』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요, 바로 신선세계로 통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꿈은 신기하잖아요. 우리도 꿈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거나, 예지몽을 꾸기도 하는데, 보옥이도 잠자거나 인사불성 상태에서 종종 누굴 만나고 온다든지, 뭘 보고 오거든요. 전생의 업보대로 인간들의 삶을 설계해서 내려 보내는 선녀가 거기 있습니다. 그러니까 꿈을 통해서 진짜의 세계를 만나고 오는 겁니다. 진짜 세계에선 보옥이의 인생이 꿈이겠죠. 『장자』에 나온 것처럼 나비가 장주의 꿈인 건지, 장주가 나비의 꿈인 건지 알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거죠. 이렇게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를 삶 바깥에 상정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금방 깨 버리는 꿈처럼 찰나라는 것을 자꾸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꿈은 결국 깨죠. 보옥은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고, 나라의 인재로 쓰이기 위해 과거를 보게 되는데, 과거를 본 그날 원래 자리의 돌멩이로 돌아와 버립니다. 결국 책임감 있고 나라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뭐, 돌의 입장에서는 살면서 꼭 경험해 보지 않아도 되는 시시한 일이었던가 봐요. 보옥이의 깨달음의 여정은 3부 ‘몽(夢), 가보옥 이야기’ 편에서 자세히 만나 보세요.^^


3. 『홍루몽』에는 유난히 대비되는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생과 현생, 번영과 몰락, 진짜와 가짜, 여성과 남성 등등이요. 또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대옥과 보차처럼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보여 주기도 하고, 희봉의 경우처럼 한 사람에 내재된 선과 악을 그려 내기도 하는데요. 이런 이미지 대비를 통해서 『홍루몽』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작가인 조설근의 삶을 보면, 그가 겪었던 부귀영화와 몰락이 극과 극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의 황실에 옷감을 대는 직책을 세습하는 권문세족 가문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0세가 갓 넘었을 무렵 가문이 탄핵당해서 추운 지방으로 쫓겨나 궁핍하게 살게 되거든요. 아무나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인생의 큰 간극을 경험했겠지요. 저는 삶에 대한 그의 탐구가 거기서부터 출발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일생의 역작 『홍루몽』에 모순과 간극, 삶의 역설이 가득한 것도 그가 탐색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간극이 이분법으로 표현되지 않고, 동전의 양면처럼, 또는 차고 기우는 달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참 놀라운 지점입니다. 『홍루몽』엔 악역이 따로 나오질 않아요. 사람의 마음이 약해지고 불안할 때 악한 행동이 나오는 거죠. 물론 훗날 가문을 망하게 하는 무뢰배들이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살다 보면 정말 그런 무뢰배가 있으니까 그대로 등장시켰겠죠. 그리고 그들의 악행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가문이 망해 갈 때 그런 세력들이 고개를 드는 것뿐이라는 걸 보여 주고 있어요. 선악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저 상황에 따라서 생겨나는 일일 뿐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토록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상황을 묘사했겠지요. 
  

『홍루몽』에선 진짜와 가짜를 모호하게 뒤섞어 놓고, 번영과 몰락에 대한 서술 역시도 가장 잘나갈 때 꼭 망할 징조를 드러내 강조합니다. 또 이야기가 시작될 때 모든 것의 끝을 예찬하는 「호료가」(好了歌) 노래로 시작하죠.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진짜와 가짜, 번영과 몰락, 시작과 끝에 대한 구분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걸 결코 구분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특히 왕희봉의 캐릭터가 흥미롭습니다. 가문을 위해 희생하고 애쓰는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는 인정욕망이 넘쳐 오버하는 자기과시가 됩니다. 능력이 있으니 집안의 큰일도 너끈히 해내서 칭찬도 받지만, 재주가 많으면 나쁜 짓도 잘하죠. 그게 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선악의 두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질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발현되고 저렇게도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다 그렇겠지요. ‘나’라는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착한 마음이 우러나오기도 하고, 파렴치한 배신자가 되기도 합니다. 『홍루몽』의 대비되는 이미지들은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4. 마지막 질문입니다. 『홍루몽』을 읽고 이 책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를 읽는 것이 좋을까요,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를 읽고 『홍루몽』을 읽는 것이 좋을까요?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지 두 책 모두 읽어 보신 선생님께 여쭙습니다.^^
  

시간이 많으시다면야, 둘 다 동시에 읽으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후를 따져 본다면, 어쨌든 이 책은 『홍루몽』의 리뷰이자 리라이팅이기 때문에, 『홍루몽』을 전혀 모르고서 이 책을 읽으면 감이 안 온다거나 원작 스토리가 궁금해질 수 있겠죠. 그래서 원작을 먼저 조금이라도 맛보신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조금이라도’라고 하냐면, 『홍루몽』은 영웅서사나 역사소설이 아니라서 스토리에 박진감이 없다 보니 혼자서 이 긴 책을 끝까지 읽기가 (사실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저의 지인도 제가 『홍루몽』을 공부하는 걸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 오더니 너무 재밌다고 했는데, 얼마 전 물어보니 끝까지 읽진 못했다고 하더군요. 
  

고전은 원래 조금 읽기가 힘든 경향이 있어요. 시대가 다르다 보니 현대인의 리듬에 안 맞기 때문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읽은 것처럼 내용을 뻔히 아는 명작들도 실제로 읽으려고 손에 잡으면 몰입이 안 돼서 몇 페이지 못 읽는 이유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전에 대한 안내가 필요한 것이지요. 제목만 회자될 뿐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을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코드로 재해석해서, 시대를 넘어서도 읽히게 하는 것이 리뷰와 리라이팅의 목적입니다. 제 책이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상황은 『홍루몽』이라는 책을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제 책을 먼저 접하게 되시겠지요. 어쨌든, 저로서는 열심히 쓴 이 책 한 권으로도 『홍루몽』의 재미와 깊이가 전달되면 좋겠구요, 더 나아가서 이 책이 『홍루몽』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대체 원작은 얼마나 대단한 책이냐며 직접 읽어 보고 싶게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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