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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生生동의보감] 술을 끊는 방법: 돼지가 굴리는 술병

by 북드라망 2021. 3. 9.

술을 끊는 방법: 돼지가 굴리는 술병

 

술을 끊는 방법(斷酒方) 술 7되를 병에 넣고 주사(곱게 간 것) 5돈을 그 속에 넣어 꼭 막은 다음 돼지우리에 두어 돼지가 마음대로 굴리도록 놔두고 7일이 지난 뒤 가져다가 마시면 다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노자분(가마우찌 똥) 태운 가루를 물로 1돈 먹는다. 응시(매의 똥) 태운 가루도 괜찮은데, 술에 타 먹는다. 둘 다 먹는 사람이 모르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우물 벽에 거꾸로 난 풀을 달여 마신다. 또한 죽엽에 맺힌 이슬을 술에 타 먹기도 한다.

(「잡병편」 ‘내상, 1237쪽)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무엇에서 나올까? 『동의보감』에 따르면 그것은 곡식이다. “천지간에 사람의 성명을 길러주는 것은 오직 오곡뿐이니 오곡은 토덕을 구비하여 기의 중화를 얻었기 때문에 그 맛이 담백하면서 달고 성질이 화평하여 몸을 크게 보하면서도 삼설을 잘 시켜서 오랫동안 먹어도 탈이 나지 않으니 이것이 사람에게 크게 이로운 점이다.” 5행으로 볼 때 토의 덕이란 치우치지 않고 중화를 취하는 것이다. 곡식은 단맛이긴 하지만 담백하고 화평하여 매 끼니 먹어도 싫증 나지 않고 탈도 안 나는, 덕이 있는 식품이다. 곡기를 일주일 이상 끊으면 죽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곡식을 원료로 했으면서도 본래 곡식의 담백, 화평한 기운과 완전히 다른 성질로 변해버린 식품이 있으니 바로 ‘술’ 즉 알콜이다. “술이란 오곡의 진액이고 쌀누룩의 정화로서 비록 사람에게 이롭기도 하지만 또한 사람을 상하게도 하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술에는 열도 많고 독도 많기 때문이다. 큰 추위에 바닷물도 얼어버리지만 오직 술만이 얼지 않는 것은 그 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혼란해져서 사람의 본성까지도 바꾸어 놓는 것은 그 독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곡식이 물과 누룩을 만나 발효되면서 그것은 액체가 되지만 지독한 열 혹은 양기 덩어리의 기운으로 변한다. 바닷물이 얼어버리는 추위에도 술은 얼지 않으니 그 열성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혈맥을 잘 돌아 찬바람과 큰 추위를 술로 이겨내는 경우가 많았고 힘든 노동을 할 때도 술의 힘을 빌리곤 한다. 옛 설화에 나오는 장사들은 말 술을 마시고도 끄떡 않고 일을 했고 싸움을 했다. 그뿐인가? 귀신을 영접하는 제사에 빠져선 안 되는 음식이 바로 제주(祭酒)이니 사기(邪氣)를 없애주고 위로 올라가는 기운 때문이리라.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일상에서 술은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알콜이 간에 부담을 주지 않고 해독되는 양은 기껏해야 하루에 5mg~10mg이라고 한다. 맥주 한두 컵 정도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적당히 마시기가 어디 쉬운가? 술은 맛 자체가 향기롭고 좋아서 입에 맞고 기를 돌게 하며 혈을 고르게 하여 몸에 적당하므로 마시는 사람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흔히 지나치게 된다. 게다가 요즘은 육식을 많이 하니 안주가 술을 부르고 직장에선 이차 삼차까지 회식이 이어지다 보니 술은 계속 술을 부른다. 그다음엔 성까지 이어지기 십상이다.

『동의보감』에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고기가 보하는 성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고기에는 보하는 성질이 없고 오직 양기만을 보할 따름이다.” 양기가 치성하면 상대적으로 음기가 부족해진다. 이 양기는 허열인 것이다. 치성한 양기는 음기가 허해진 틈을 타 “요동치게 되고 열기가 요동치면 위는 조화롭지 못하게 되며 위가 조화롭지 못하게 되면 정기가 고갈되고 정기가 고갈되면 사지를 영양해줄 수 없게 된다.” 육식만으로도 이처럼 양기가 치성한데 술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술의 성질이 올라가기를 좋아하므로 기는 반드시 그것을 따라 올라가고 기가 올라가면 담이 상초에 몰리고 오줌이 막혀 잘 나오지 않으며 주독으로 폐가 적사를 만나게 되면 폐금은 반드시 조하여지고 폐가 조함에 따라 차고 시원한 것을 함부로 마시면 열이 속에 몰리므로 폐기가 열을 받아서 몹시 상하게 된다.” 그야말로 ’음허화동‘, ’상화망동‘이다.

서양의학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진단한다. 술은 물에 녹기 때문에 많이 섭취하면 혈액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혈액은 산소를 수용해서 몸의 여러 부위로 운송된다. 그러나 알콜을 함유한 혈액은 산소를 듬뿍 함유할 수 없기때문에 그만큼 각 장기가 빨리 움직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심장은 산소가 적어지면 빨리 움직여서라도 혈액순환을 좋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심장이 두근두근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각 장기는 무리하게 되어 피폐해진다.

술은 장기뿐 아니라 뇌도 마비시킨다. “알콜에는 교감신경의 작용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 해시시(대마)등도 그렇지만 몸은 그런 마비를 유발하는 것이 들어와 심장 주위로 몰려들어 심장을 마비시키면 곤란하므로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손끝이나 발끝, 머리끝으로 쫓아내려 한다. 머리끝에 알콜이 당도하면 뇌가 마비되기 때문에 필름이 끊어지고 만다. 오늘의 기억은 뇌의 가장 바깥 부위인 신피질에 새겨지므로 술을 마시면 바로 오늘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억 상실이 자주 반복되면 뇌에 회로가 생겨 오늘 했던 주벽, 즉 비이성적인 일들을 쉽게 반복하게 된다. 또한 술 즉 에틸알콜은 그 안에 메틸기(基)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서 곁들여 먹는 음식에 따라서는 그것과 결합하여 금방 메틸이 된다. 메틸은 맹독성을 가진 독극물이다. 그것은 납처럼 배설이 어렵고 혈액을 타서 뇌에 도달하면 뇌를 마비시키면서 평형감각이 무너진다. 이게 반복되면 살해당하는 꿈을 꾸거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등 정신이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중증의 환자인 경우는 자신이 환자라고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술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인 양 의기양양하다.

몇 해 전 가까운 친척이 알콜릭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살해했다고 말하고 다녀 우리를 긴장시키기도 했었다. 어린 삼남매를 둔 아빠였기에 나는 문병을 가서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냐고 술을 끊어보라고 애원했었다. 그는 내 말엔 아랑곳없이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술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속이 든든합니다. 밥은 맛이 없습니다.” 술 이야기를 할 땐 그의 눈엔 힘이 나고 얼굴엔 희색마저 돌았다. 나는 포기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몇 달 후에 그는 죽었다.

술을 해독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알콜이 물에 녹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술과 같은 양의 물을 많이 마셔서 땀과 소변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갈화해정탕’은 이를 도와주는 처방이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하기도 어렵거니와 이 정도 명심할 거라면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최상의 방법은 술을 끊는 것이다.

 

위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처방은 술을 마시게 하되 술의 기쁨을 못 느끼도록 한 것 같다. 주사는 찬 성질의 약재다. 그것을 탄 술병을 돼지우리에서 돼지가 마음껏 굴리게 한 것은 돼지 역시 찬 성질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술의 열성을 식히기 위한 전략이리라. 그러면 환자는 술을 마셔도 자신이 원하는 쾌감을 못 느낄 것이다. 그러면 소용없다고 생각하여 마시지 않게 될 것이다. 단 이렇게 했다는 걸 환자가 모르게 해야 한다. 환자는 술 마시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태이므로 속았다는 걸 알면 화를 낼 것이고 오히려 더 마실 수도 있다. 가마우찌 똥, 매의 똥 등 차가운 약재를 찾으려 이리저리 애쓰는, 어느 부모, 어느 부인네의 마음을 보는 듯 짠하다.

 

글_박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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