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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가 들려주는 마음의 법칙(1)

by 북드라망 2019. 4. 11.

‘요가’가 들려주는 마음의 법칙(1)



요가에서 바라보는 ‘마음’


몇 년 전부터 친한 친구들이 마음이 아프다고 종종 연락이 오곤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왕성하게 자기 일도 하고 생활도 활력 있게 하던 친구들인데, 가끔 통화를 하면 마음이 많이 힘들다고 말한다. 마음이 막 우울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겨우 하루하루 밥만 먹으며 지낼 때도 많다는 하소연을 듣다 보면 내 마음도 우울해지곤 한다. 친구들은 우울하고 힘든 마음을 어떻게든 바꾸어보려고 요가도 하고, 태극권도 하고, 산에 정기적으로 오르기도 한다. 몸을 좀 움직이고 나면 그래도 마음상태가 좀 나아진다고 하면서….

 

이렇게 친구들하고 통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란 뭘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몸 안에 어떤 특정한 기관으로 딱 있어서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내 마음을 어쩌질 못해서 하루 종일 그 마음에 휘둘리기도 하니 말이다. 나도 역시 종종 내 마음이 너무 힘이 세서 그 마음의 움직임에 계속 사로잡혀있을 때가 많다. ‘요가와 아유르베다’에서는 이런 마음을 우리가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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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마음을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그것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이 정말로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아유르베다와 마음』, 62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고 말이다.


또한 요가 경전인 『요가수트라』 1장 2절​에 “요가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10쪽, 정창영·송방호 편역, 시공출판사) 라고 말한다. 나는 마음이 무엇이지 잘 모르고, 그 모르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생각은 일어나고 그 생각의 흐름이 나의 일상을 주도한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왜 마음이 이렇게 우울하지, 또는 왜 마음이 이렇게 가라앉지?’ 라고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나에게 묻는 것인지 모를 질문을 하곤 한다. 

 

요가에서는 ‘마음이란 생각의 흐름이 일어나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이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이 항상 요동치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의 흐름을 통제할 방법들을 만들고 그것을 끊임없이 연습하여 생각의 흐름을 조율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한다.


“요가 수행을 통하여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 지성, 자아가 평정해”(요가 디피카, 16쪽, 아헹가 지음, 선요가출판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마음과 몸의 복합체인 인간이 마음과 몸의 상호적이고 동시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고 있음을 설명한다. 마음과 몸은 분리돼 있거나 마음이 몸을 혹은 몸이 마음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는 없다. 아마도 친구들은 특별히 요가를 공부하지 않았어도 마음이 힘들고 처질 때면 몸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조금씩 마음을 다스려왔는가 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다스릴 때는 몸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임으로 인해서 조금 달라진 마음으로 또 다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는 곳인 ‘마음’은 그 구조와 움직임의 방식이 있다. 요가와 아유르베다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방식을 알고 그 앎을 통해 마음의 움직임을 다스리는 수련방법들을 연습해 갈 것을 권유한다. 마음의 방식을 알고 그 마음을 다스려가는 것이 바로 요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이다.

 

마음은 관찰가능 한 대상이다

 

친구들과 나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없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우울하고 쳐지는 마음을 끌어올리는 것이 매우 쉽지 않다고 말이다. 또는 마음은 운동을 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그 마음을 실제 행동까지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의 대화에서 ‘내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마음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몸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작용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아유르베다와 마음』, 66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 마음의 상태는 관찰하여 표현할 수 있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관찰해보면 그 생각이 수시로 자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사물을 생각하다가도 누군가 전화를 한다 던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생각의 흐름은 바로 그곳으로 옮겨간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주의력을 줄 때 우리의 마음이 그곳으로 가게 되고, 마음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생각이 증명하는 방식이다. 잘 살펴보면 주의력은 집중된 하나의 대상에만 가있다. 우리의 주의력은 한 번에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주의력은 우리 안의 에너지의 움직임이다.

 



우리는 보통 주의력을 의도적으로 보낼 때만 인식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주의력은 의도 없이도 수시로 이곳 저곳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주의력이 간 상태라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주의력은 그 에너지가 가 닿은 대상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어 마음과 대상의 일치가 일어난다. 이것을 우리는 ‘자기 동일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동일시된 상태인 마음은 관찰가능 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잊게 한다. 주의력이 간 대상과 생각의 흐름이 일치되어 마음에는 그에 따른 감정이 가득 차기 때문이다. 즐겁다거나 괴롭다거나 혹은 편안하다거나 불편한 감정 등이 가득 차게 된다. 

 

이때 활동하는 마음이 에고이다. ​​“에고는 우리의 내적 존재를 어떤 외적 대상이나 특질과 연관시키는 자기 동일시 과정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나는 이것이다’ 또는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결정한다.”(『아유르베다와 마음』, 150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 이때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것은 나를 이것이나 저것으로 결정한 것을 말하게 된다. 대상이 곧 마음이 되고, 이 마음에 가득 찬 생각을 말하는 것이 된다. 가득 찬 생각이 곧 내가 된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마음은 또한 시작되었다가 끝이 난다. “일정한 양의 에너지가 투자되어 갖가지 명백한 결과를 산출하기도 한다.”(.”(『아유르베다와 마음』, 150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 마음은 움직이고 집중되어 현실에서의 결과를 만들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이렇게 활동하는 마음을 우리는 하나의 대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자신의 계획과 활동이 자신과 완전히 일치되어 있을 때에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제서야 ‘내가 그랬구나’하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곤 한다. 

 

요가와 아유르베다에서는 이처럼 마음에 생각의 흐름이 끝없이 일어나고, 특정한 대상과 일치되는 ‘마음의 특징’을 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외부로부터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감각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마음속에서 생각이 일어난다. 에고 의식은 그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즐거운 생각이 들면, 에고 의식은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반대로 즐겁지 않은 생각이 들면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12쪽, 정창영·송방호 편역, 시공출판사) 이 에고의 활동이 동일시의 활동인데, 동일시는 집착을 만들게 된다. 행복한 상태에 이르면 그 상태를 고수하려고 하고,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있으면 그 상태를 빨리 없애버리려 한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되면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를 끊임없이 판단해야 하고, 그 판단에 따라 자신이 행복한 상태로 가기위해 또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과도하게 써야만 한다. 이렇게 에너지를 쓰게 되면 많은 양의 에너지를 쓰게 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피로해진다. 피로한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의 마음은 침체된다. 즉 생명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주의력을 보내고 활동했던 것이 생명력을 점차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마음에 생각의 흐름이 가득 차 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결국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요가에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여 인간의 삶을 보다 생명력있는 삶으로 가져갈 수 있는 전환을 마련하려 한다. 마음이 생각의 흐름으로 가득 차있을 때, 요가의 동작을 통해서 몸이 만들어내는 느낌에 주의력을 집중시킨다. 동작과 더불어 호흡을 하고, 평상시 자율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던 호흡을 의식을 가지고 호흡함으로써 집중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요가를 통한 집중은 마음에 가득 찬 생각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리고 요가 동작과 호흡을 하는 자신을 관찰하는 마음으로 전환시킨다. 동작을 통해서 몸속에 에너지를 고루 순환시키고, 호흡은 외부의 에너지를 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요가를 수행하는 시간동안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쉬게 하고 새로운 에너지들이 몸 안에 가득 차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 안에 새로운 생명력이 순환함을 알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마음이 침체되거나 힘들어질 때, 자신 안의 생명력의 순환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만들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을 요가에서는 “요가란 고통과 만나는 접촉점을 부수는 것”(『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12쪽, 정창영·송방호 편역, 시공출판사)이라 한다.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 멈춤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특정 대상 혹은 상황에 집착되었음을 깨어나 관찰하게 하는 방법이다. 마음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글_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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