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몸과 정치1/몸과정치2

메이지 헌법의 구성과 신체성 - (2)

by 북드라망 2019. 2. 7.

메이지 헌법의 구성과 신체성 - (2)


짐은 너희 군인의 대원수이다.

그럴진대 짐은 너희를 고굉(股肱)으로 의지하고

 너희는 짐을 우두머리(頭首)로 받들어야 할 것이며,

그 친밀함은 특히 깊어야 할 것이다.

─「군인칙유(軍人勅諭)」(1882)

 

  

군인칙유의 ‘우두머리’

앞서 대일본제국의 통치체제를 만든 메이지 헌법 속에 나타난 신체은유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헌법과 함께 당시 국가적인 것을 구성했던 핵심적 텍스트로서 「군인칙유」와 「교육칙어」를 같이 살펴보자. 메이지 헌법 속에서의 사지와 머리라는 발상은 이미 「군인칙유」에도 등장한다. 칙유가 나오게 된 직접적 요인은 홋카이도 개척사 관유물불하사건에 즈음하여 타니 칸죠(谷干城)를 비롯한 네 명의 장군이 반대 의견을 상주하는 등, 군대 내부까지 파급된 반정부운동을 잠재우는데 있었다. 민권파와 정부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탄압의 주력부대인 군의 통솔을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였다. 그런 의미에서 군인칙유는 단순히 군인들을 위한 텍스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반포된 시점에서는 당시의 정치적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문서였던 셈이기도 했다.

​​

메이지 천황



“짐은 너희 군인의 대원수이다. 그럴진대 짐은 너희를 고굉(股肱)으로 의지하고 너희는 짐을 우두머리(頭首)로 받들어야 할 것이며, 그 친밀함은 특히 깊어야 할 것이다. 짐이 국가를 보호하여 상천의 혜택에 응하고 조종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도 너희 군인이 그 직무를 다하느냐 다하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 오로지 자기의 본분인 충절을 지키고 의리는 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고 각오하라. 아래 사람이 상관의 명을 받는 것은 곧 짐의 명을 받드는 도리로 여길지라”

─「군인칙유(軍人勅諭)」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천황’을 중심으로 ‘병사’ 또는 ‘신민’의 기본적인 관계성이 머리와 손발의 관계로 표상된다. 손발로서의 군인과 우두머리로서의 천황, 그 대리인으로서의 상관이라는 비유는 머리에서 발로 내려가는 명령체계 속의 일사분란한 신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천황은 발화자인 자신을 우두머리로, 듣는 이들을 짐에 대한 고굉이라고 명명함으로서 일본을 하나의 신체로 호명한다.

이 때 사용되는 ‘고굉’이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표현이었다. 『상서(尙書)』에 “원수가 현명하시면 고굉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 다시 노래하기를 원수가 좀스럽고 자질구레하시면[叢脞] 고굉이 태만해져서 모든 일이 폐해질 것입니다”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하고, 『서경(書經)』 「익직편(益稷篇)」에서 순 임금이 신하에게 “그대들과 같은 신하들은 짐의 고굉(股肱)과 이목(耳目)으로 내가 백성들을 위해 돕고자 하니 그대들이 대신해 달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신체유비는 동아시아 전통 담론에서도 많이 사용되던 것이었다. 『예기』 「치의(緇衣)」에서 “인민은 군주를 자신들의 심장[心]으로 생각하고 군주는 인민을 자신의 몸[體]으로 생각한다”거나 『한서』 「무제기」에 “군주는 몸에서 심장에 해당되고 인민은 몸에서 팔과 다리에 해당된다. 팔다리가 아프면 마음이 쓰리고 아리다”고 한 예에서도 군신관계를 ‘심’과 ‘체’의 관계에 유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 심으로서의 군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심은 체와 분리될 수 없음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고굉이나 이목 역시 단순히 군주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논의가 군주가 신하에게 자신을 보좌해 줄 것을 당부하거나 군주가 신하를 의지해 홀로 마음대로 행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데 있었다면, 이는 앞서 군인칙유에서 사용된 고굉의 유비와는 논리상 차이를 보인다. 군주가 신민, 그 중에서도 군인을 특정해서 발화하고 있는 와중에 군인들이 고굉이 되고 천황이 머리가 되지만 이 둘은 하나의 신체에 통합되는 각각 다른 두 부위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이때의 친밀함의 목적은 하나의 신체가 되어 ‘국가’를 보호하고 ‘상천의 혜택’에 응하고 ‘조종의 은덕’에 보답하는 데 있다. 너희와 짐이 ‘일심’이 되는 속에서 청자인 ‘너희’ 군인과 화자인 ‘짐’ 천황은 새로운 신체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청자와 화자는 국가라는 집합적 신체를 이루는 구성단위로서 하나로 묶이게 된다. 이때 국가는 매개가 되면서도 보이지 않는 배경처럼 뒤에 깔려있다.

즉 단순히 군주와 신하의 관계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삼항 관계 속에서 그려지는데 이때 국가의 모습은 표면상으로 노출되지 않고, 대신 군주의 모습이 매개항이 되어 나타난다. 이로써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라는 이분법을 넘어 ‘공간상’으로 하나의 신체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시간상’으로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축으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군대는 대대로 천황께서 통솔해 오시었다”는 과거의 기억과 “짐이 국가를 보호하여 상천의 혜택에 응하고 조종의 은덕에 보답”한다는 미래의 목표가 “너희 군인이 그 직무를 다 하느냐 다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는 현재와 하나로 묶인다. 다양한 기억들이 역사라는 이름의 과거로 재생되며, 다양한 목표들이 미래의 이름을 부여받는데, 이때 과거와 미래는 단순한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집합적 신체가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교육칙어」의 유기체

이는 교육칙어에 대한 해석서인 이노우에 테쓰지로(井上哲次郎)의 『칙어연의(勅語衍義)』(1891)에서 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교육칙어의 목적을 효제충신의 수양과 공동애국의 함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단 급한 일이 있으면 의롭고 용감히 공(公)을 위해 봉사한다’는 구절에 대해서 “한 몸의 자리심(自利心)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힘쓰는 것, 이것이 애국의 심[愛国ノ心]으로 이는 사람들이 마땅히 양성해야 하는 바라고 밝히며, 나라의 강함은 주로 애국자의 많음에 기인하며, 애국의 심은 실로 나라의 원기[国ノ元気]라 말할 수 있다”고 설명을 달고 있다. 여기서 애국심을 나라의 원기로 비유해 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애국심에 대한 일반적인 논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노우에는 이를 유기체설을 가지고 와서 설명한다. 

“무릇 국가는 유기물과 같아서, 생명이 있어서 생장, 발달, 노쇠도 한다. 항상 국가의 원기를 배양해야 한다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등불의 광명을 지키기 위해, 기름을 끊이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아 시시각각, 계속함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대대 민인은 이 뜻을 체득해, 잠시도 나라의 원기를 죽여서는 안 될 것이다.”

─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郎), 『칙어연의(勅語衍義)』, 35쪽

여기서 유기체설에 대한 설명은 특별히 보이지 않으며 애국심을 ‘기름’에, 국가의 원기를 ‘등불’에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용법에 대해 그가 서양의 국가유기체설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당시 서양에서 국가유기체설이 절대주의 이데올로기의 비판으로서 등장했으며, 개체의 자유로운 유기적 조직화를 의도한 것을 고려하면 이노우에가 제시하는 개체성의 부정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郎)



그러나 이를 개념의 수용과정에서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고 그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노우에가 ‘유기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유기물의 핵심은 생장, 발달, 노쇠를 거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그 원기를 계속 지키기 위해 등불에 기름을 주듯 인민의 애국심이 필요하다는 논의였다. 그렇다면 이 유기물로서의 국가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성격이 필요한가. 

“무릇 군주는 비유하면 심의(心意)와 같고, 신민은 사지백체(四肢百體)와 같아서, 만약 사지백체 중에 심의가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반신불수(半身不隨)와 같이 전신이 이 때문에 활용을 할 수 없게 된다. 신민으로서 군주의 명에 따르지 않는 것은 나라의 결합력을 감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신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의 시정방침도 이 때문에 장애를 받는 것이 적지 않다.”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郎), 『칙어연의(勅語衍義)』, 41쪽

이노우에는 군주를 ‘심의(心意)’에, 신민을 사지백체(四肢百體)에 비유하는데 이때의 관계는 앞서 『헌법의해』나 「군인칙유」에서 나타난 것처럼 명령에 의한 것으로 설정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이러한 신체적 표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는 그들이 국가라는 신체의 질병을 무엇으로 상정했는가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사지백체가 심의에 따르지 않을 때 국가 신체는 반신불수가 된다. 즉 머리의 명령이 반복되서 강조되는 것은 결합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는 교육칙어의 ‘억조(億兆)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라는 부분에 대한 주해에서도 잘 드러난다. “천황폐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흡사 사지가 홀연히 정신이 향한 바에 따라 작동해 조금도 지체하는 바가 없는 것과 같다. 무릇 국가는 일개체(一個體)로서 유일(唯一)의 주의(主義)로서 이를 관철해, 결코 민심이 둘 셋으로 나뉘지 않으며 결합일치해 실로 국력을 강하게 하는 법으로서” 운운하는 대목이다. 여기서도 천황의 ‘명령’을 ‘사지’가 ‘정신’을 따르는 것에 비유되는데, 이 역시 하나의 뜻에 따르는 결합력이 강조된다.

이는 앞서 살펴본 『헌법의해』에서 주권의 단일성과 연계되는 인심이 둘셋일 수 없다는 논리와 이어지고 있다. 『헌법의해』에서는 ‘제5조 천황은 제국의회의 협찬(協贊)으로서 입법권을 행사한다’는 조항에 대한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주를 달고 있다.

“우리 건국의 체(體)에서 국권이 나오는 바를 하나로서 하고 둘로 하지 않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일(主一)의 의사(意思)로서 능히 백해(百骸)를 지사(指使)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의회의 설치는 원수를 보조하여 그 기능을 다하게 하고, 국가의 의사를 정련강건하게 하는 효용을 보고자 하는 것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편, 『헌법의해』(1989), 28쪽


​이는 국권이 나오는 바는 천황이라는 단일성에 있으며 의회의 역할은 원수를 보조하는 협찬의 임무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주일(主一)의 의사로서 백해를 지사하는’ 신체에 비유한다. 즉 주권논쟁에서 입법권 역시 천황에게 있는 것임을 밝힌 것으로, 이렇게 주석을 다는 것은 의회 개설에 의해 주권통일의 대의를 오해하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메이지헌법의 기초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적 신체는 단일한 명령권을 가진 머리 모델로 제한되고 있다. 그것은 유럽과 대비하며 스스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더 명시적으로 나타나는데, 유럽에서 입법권을 주로 의회의 권한으로 돌리고 군민공동의 권리로 삼는 것은 주권통일의 대의를 오해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의회는 국가의 의사를 정련강건하게 한다는 목적 하에 철저히 보조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 즉 서양의 유기체론과는 성립배경이나 목적부터가 다른 것이었다.

물론 『헌법의해』와 「군인칙유」나 「교육칙어」에 나타난 신체성을 단순히 천황의 초월성을 강조한 논리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편으로 다원적이고 봉건적인 군신관계를 천황이라는 유일한 군주로 일원화함으로써 천황 아래 모든 신민이 평등하게 되는 구조를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근대 초기 사상가들에게 주권은 하나의 통일성을 의미했으며, 국가가 식별된 것도 이 통일성에 의해서였다. 주권자가 종종 예외적 존재로 그려진다면 그것은 주권자의 자의성을 가리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성과 질서정연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근대 일본에서 통치는 신체라는 은유를 통해 하나의 근원으로서의 머리의 논리가 강조된다. 그렇다면 이 때 머리는 국민이라는 신체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글_김태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