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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활보활보] 지극한 사람, 무지한 마음

by 북드라망 2017. 1. 6.

지극한 사람, 무지한 마음



찰떡궁합


새벽, 낮고 똥똥한 그림자와 길고 통통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낮고 똥똥한 그림자가 둔하게 손을 올려 한 곳을 가리킨다. 길고 통통한 그림자가 그 길로 후다닥 뛴다. 냉장고 앞이다. 길고 통통한 그림자가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낸다. 그리고 그것을 낮고 똥똥한 그림자에게 가져간다. 봉지 뜯는 소리. 두 그림자가 빠르고 얕게 들썩인다. 그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 빵 도난사건 현장의 재구성이다. 뇌병변 권진씨와 지적 장애 건홍씨가 일을 벌였다. 맛있는 빵이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둘이서 몰래 냉장고의 빵을 훔쳤는데 직원분이 그 모든 범행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뇌병변과 지적장애인은 환상의 호흡을 갖추고 있다. 뇌병변 장애인이 지략을 담당하고 지적 장애인이 행동대장을 맡는다.


흔히 착각하는 것은 지적장애인들이 그냥 멍 하니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지적 장애인들은 자기만의 생존방식이 있다. 건홍씨는 우리가 애써 잊으려는 것을 이미 잊은 사람이다. 그분은 외물에 휘둘릴 위험이 없다. 오늘의 가십이나 인기 연예인의 소식 따위는 안중에 없다. 재밌는 티비 프로그램도 잠깐 보다 말 뿐, 그런 것에 그것에 중독되는 것이 불가능한 신체다. 자기 생일? 모른다. 챙겨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 따위 없다.(자랑하듯 보여주는 민증에는 11월 11일로 생일이 적혀있는데 왠지 신고인이 아무렇게나 작대기를 죽죽 그은듯하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을 탐하느라 시간을 뺏기는 우리에 비해 편한 삶이다.


또 절대 무능력하지도 않다. 건홍씨에게 글자를 읽어보라고 하면 띄엄띄엄 읽는다!? 발성도 훌륭해 집밖 10m까지 목소리가 들린다. 춤은 물론이고 노래도 무지하게 잘 부른다. 무대장악력도 뛰어나다. 어느 장기자랑 대회에서 무대를 너무 장악해서 문제가 발생할 정도였다. 자기생각도 곧잘 표현한다. 어느 날 외출하고 온 건홍씨가 말했다. 


“제가요 있잖아요. 오늘 영화를 보고 왔는데요. 엄청 무서운 사람들 나오는데. 완전 큰 게 나와요! 휙휙 지나가요! 장난 아니에요! 다 헤치고 가는 거에요! 엄청 무서운 게 괴롭히는데 이겨요!” 정말 엄청난 스펙타클이 느껴지는 설명이었다. 나의 이용자가 물었다. 

“그래요? 영화제목이 뭐에요?” 

“아? 호미요, 호 호미. 예. 호미.” 

“호미 ㅋㅋㅋㅋ”


나와 이용자는 박장대소했다. 그 영화 제목은 <호빗>이었다;;


물론 가끔 나와 지적 장애인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다.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데 건홍씨가 관심을 보였다. 책의 한켠에 두 개의 사진이 있었다. 한 사진은 젊은 작가가 부인을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년의 작가가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있는 사진이었다. 


“건홍씨 여기 젊은 작가가 나이든 작가로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예? 아니. 몰라요. 몰라 몰라.” 

“여기서 이렇게 되면 나이가 드는 거죠? 이것을 늙는다고 해요.” 

“예예 ㄴ느느다.” 

“늙” 

“느늙” 

“는” 

“는느” 

“다” 

“다!” 

“늙는다!” 

“느느다! 아 몰라요 몰라.”


건홍씨는 ‘늙는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웬만한 건 다 아는 것 같다가도 가끔 그런다. 조금 더 심각한 얘기를 해보자. 건홍씨는 고혈압이다. 가끔 발작이 일어나기도 하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해서 뇌출혈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걱정시킨다. 근데 완전 짜게 먹고, 고기만 좋아하고, 풀은 잘 안 먹는다. 그리고 밥을 대충 씹어 삼킨다. 세 번 씹으면 많이 씹는 것이다. 씹으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못 들은 척 대답을 안 한다. 지적장애인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만난 지적장애인들의 성향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기 보다는 말을 잘 알아듣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자기식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것. 선생님들이 나를 볼 때의 심정인 것인가. 그럴 때는 약간 미련한 느낌이 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고, 소고집을 부리는데도 뇌병변 장애인과는 궁합이 잘 맞는다. 진딧물을 캐어해주고 당분을 양도받는 개미처럼, 지적장애인이 기타 잡일을 도와주면 뇌병변 장애인이 간식거리나 스마트폰, 태블릿 PC등의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교환관계인 것인데, 내가 백날 도와주는 것보다 둘이 서로 한번 도움을 주고받는 게 훨씬 정겨워 보인다. 먹을 것을 먹여주는데 너무 살가워서 얄미울 정도다. 그럴 때 놀랐던 점은 지적 장애인들이 뇌병변 장애인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고집이 넘치는 사람들이 뇌병변 장애인들의 지시어린 부탁을 아주 기분 좋게 들어준다. 배부른 권진씨에게 빵을 억지로 넣어주는 건홍씨의 흐뭇한 얼굴;;을 보다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소통의 문제가 떠올랐다. 둘은 참 잘 소통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용자와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전보다 이용자의 말을 더 빨리 알아듣고, 이용자가 언제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를 더 잘 안다. 근데 그게 소통인가. 그냥 눈치가 빨라진 거 아닌가? 요즘 연구실에서 매번 소통이 안 되어서 지적을 받았던지라 더욱 궁금해졌다. 저렇게 친해지려면, 좀 더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통이란 무엇인가.



활보의 눈물


성학 씨라는 분과 그분의 활보 선생님이 계셨다. 성학 씨는 작년 내가 그곳에 갈 때부터 계셨던 분이다. 그분은 늘 조용하고 힘이 없었다. 옛날에는 목발 짚고 자기 힘으로 걸었다고 한다. 기자생활 같은 사회활동도 했고, 여자 친구와 남쪽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고. 그러다 점점 힘을 잃었다. 목발을 집던 발은 스쿠터 폐달을 밟게 되었고, 나중에는 전동휠체어 발판에 힘없이 얹어졌다. 나중에는 안전을 위해 수동휠체어에 발이 묶였다. 그러고도 중심을 잃고 휘청일 때가 있었다.


성학 씨를 맡았던 활보 분은 말이 좀체 없는 분이었다. 사람이 멍청해 보이고 꼭 막혀보였다. 어느 날, 사건이 터져서 활보 시간이 줄었었다. 금전적으로 불리하게 되었는데 관할 행정기관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도 안했다. 그냥 줄은 대로 하면 된다며. 뭐랄까. 그냥 자포자기 하는 삶을 사는 듯했다. 그래도 성학 씨한테는 확실히 해주는 것 같은 인상은 있었다. 


성학 씨는 워낙 조용한 분이라 교류가 많지는 않았다. 작년 말, 느닷없이 회를 쏘셔서 그것을 푸짐하게 먹은 적이 있긴 했었다. 그런데 올해 1월 말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하시더니 집에서 쉬신다고 했다. 며칠 뒤 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폐렴이 심해져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그러다 오시겠지 했는데 비보를 접했다. 돌아가셨다고. 연초부터 안 좋은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가는가.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죽음에 가까운 존재임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장례식장에서 성학씨의 어머니는 한탄했다. 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죽어간 아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성학 씨는 폐렴 증상이 심해져 결국 혼수상태에 빠졌다. 혼수상태에서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데 호흡을 유지하려면 기계를 빌리는 것만도 몇 천 만원이 들고 매달 대여료도 만만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분을 계속 돌볼 여력이 있겠는가.” 의사는 말했다. 그리고 깨어날 가망성은 말하지 않았단다. 아버지는 결국 본인 손으로 호흡기를 떼셨다. 눈물을 흘리며 “너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버지의 슬픔만큼은 깊이 와 닿았다. 그런데 성학 씨 아버지께서 활보분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분이 같이 본인 자동차로 태워서 식장도 정해주시고, 납골묘 터도 봐주시고, 이래저래 자신을 도와 힘을 써주셨다는 거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활보 선생님을 칭찬했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질까 학성 씨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소변은 일일이 관을 삽입해서 빼냈다. 성학 씨에게 매번 따뜻한 말을 건넸고 그분을 돕는데 귀찮음이 없었다. 


조용하다 못해 멍청해보이기까지한 성학씨의 활보 분은 성학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성스레 돌보았다.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의아한, 그냥 배알 없는 아저씨였던 그분은 사실 성학 씨에게 지극한 사람이었다. “지인(至人)은 멍청한 듯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분은 다른 곳에서는 멍청해보였을지 몰라도 한사람에게 그 지극함을 다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나는 한사람에게라도 지극할 수 있는가. 그 활보 분은 아버지와 일을 마치고 뒤늦게 오셔서 소주 몇 잔을 들이키시더니 굵은 눈물을 흘렸다. 다른 아저씨들이 애처럼 울지 말라고 그랬지만 그 눈물은 정말 소통을 했던 자만이 낼 수 있는 눈물이었다. 내 이용자가 불행한 일을 겪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을까.


이용자와의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면 참 될 듯 안 될 듯 헤맨다. 이용자와 통한다는 느낌이 올 때도 있고, 정말 막혔다는 느낌이 올 때도 있다. 물결이 오르내리듯 되다 안 되다 한다. 그래서 성학 씨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활보일을 하면서 소통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엄청 성실히 일을 하고 있었다? 못들은 척 하지 않았고. 이용자가 시킨 일을 대충 뭉개지 않고 그냥 다 했다. 잘 안 들려도 먼저 움직였다. 그랬더니 그저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더 통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소통의 시작은 나를 속이지 않는 것(無自欺)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화스님이 말씀하셨다. 타인과 100%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마다, 사람마다 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교집합의 범위를 늘려가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소통이 될지 안 될지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해 나갈 수 있는 일은 있다. 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소통이 잘 되려면 나를 더 투명하게 열어놓아야 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그것은 단순히 많이 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방해가 될 수 있다. 위의 일들을 통해 그것을 확실히 알았다. 건홍씨와 권진씨, 성학씨 활보 분 모두 지식이 뛰어나서 소통이 잘된 것은 아니다. 건홍씨와 권진씨 사이에도 그런 솔직함이 있어서 사이가 좋았던 거고, 성학 씨의 활보 분도 그게 되었던 사람이다.


올해 초. 이틀 동안 상을 치른 후, 하루 쉬고 바로 일을 하러 갔다. 가는데 사실, 일을 하기 싫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매사 짜증이 났고 그럴수록 힘이 빠졌다. 어둡고 멍한 마음으로 일터의 문을 여는데 12살 지적장애인 규명이가 있었다. 맨날 땡벌!을 외치고 머리를 벽에 받으며 떼를 쓰는 그 친구가 오늘따라 조용했다. 참 나, 나한테 뭔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어영부영 이용자를 씻기고, 밥 먹이고 나니 앉아있기도 귀찮았다. 어거지로 간 것이 들통이 난 거다. 침대에 누워서 생각 없이 이용자의 아이패드를 펼쳐놓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규명이가 왔다. “게임하는 거야?” 하더니 침대에 올라 내 옆에 누웠다. 아이패드를 드느라 뻗은 내 왼팔에 자기 머리를 대고 아이패드를 쳐다봤다. 따뜻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내게 다가온 사람의 온기였다. 나를 숨길 여력도 없이 힘이 쭉 빠졌던 탓이었을까, 규명이가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건가. 그러는 동안 참 마음이 편안했다. 활보를 하면서 이용자와 이런 느낌 한 번 서로 받는다면 활보의 참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일처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난 문제였다. 진정 활보는 똑똑한 사람이 잘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넌 고생을 하고, 명심(冥心)을 얻은 연암이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이로써 몸가짐에 재빠르고 자신의 총명함만을 믿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바이다.”


준오(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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