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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백수는 고전을 읽는다

집 나간 동물은 찾아도 없어진 마음은 왜 찾지 않을까?

by 북드라망 2012. 4. 2.

몸을 지켜라!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증자유질 소문제자왈 계여족 계여수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泰伯 3)
시운 전전긍긍 여임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소자

증자(曾子)가 병이 위중해지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불을 걷고 내 발과 손을 들여다보아라.『시경』(詩經)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깊은 연못가에 서 있는 듯, 살얼음 위를 밟고 가는 듯’이라고 하였다. 지금에서야 내 이런 걱정을 면한 줄 알겠구나, 제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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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임박하자 증자는 제자들을 소집한다. 공자의 제자로, 지극한 효자(孝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스승의 임종(臨終). 제자들은 스승 주변에 모여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불러다놓은 제자들을 향해 스승은 뜬금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발을 열어보아라. 손을 열어보아라.’ 엥? 갑자기 왜 손발을 열어보라는 거? 하지만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다. 대신 스승은 시 한 구절을 멋지게 읊어 주신다. 죽음을 앞둔 노인치고는 너무나 무드잡기에 여념이 없으신 우리 증자. 시 읊기를 마치자 이번엔 자기 자랑을 죽~ 늘어놓는다. ‘나는 이제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얇은 얼음을 밟고 가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지만 너희들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구나.’^^ 뭔 유언이 무드 잡다가 자기 자랑하다가 제자들 놀려먹는 걸로 끝난단 말인가. 그런데 증자의 죽음을 묘사한『예기』(禮記)의 기록을 보면 아주 배꼽을 잡아야 할 판이다.

증자가 병으로 누웠는데 상태가 몹시 위중하였다. 악정자춘(증자의 제자)은 침상 아래 앉았고, 증원과 증신(증자의 두 아들)은 발치에 앉았으며, 동자 하나가 모서리에 앉아 촛불을 들고 있었다. 동자가 “화려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대부의 삿자리가 아닙니까?” 하고 묻자, 자춘이 얼른 “소리 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증자는 그 말을 듣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나 ‘헉!’ 하는 소리를 냈다. 동자가 다시 “화려하고 아름답네요. 이것은 대부가 쓰는 삿자리 아닌가요?” 하고 묻자, 증자는 “그렇다. 이것은 계손씨가 하사한 물건이다. 나는 힘이 모자라 바꿀 수가 없으니 원아, 네가 일어나 삿자리를 교체하거라” 하고 말했다. 증원이 “어르신의 병이 위급해 옮길 수가 없습니다. 내일 날 밝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조심조심 바꾸시지요” 하고 말하자, 증자가 대꾸했다. “너는 저 아이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군자는 덕(德)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배는 일시적인 환심을 사는 것으로 남을 사랑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구하겠느냐? 나는 다만 바르게 죽고 싶다는 소망, 이 한 가지뿐이다.” 그들은 증자를 들어 올려 삿자리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미처 안돈(安頓)*하기 전에 증자는 죽었다.
*안돈 :  잘 정돈하는 것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동자며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벌떡 일어나 삿자리 교체를 요구하는 증자며 완전 코믹물의 주인공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 상황, 그저 웃어 넘기엔 뭔가 꺼림칙하다. 특히 증자의 마지막 멘트. 자신은 다만 ‘바르게’ 죽고 싶을 뿐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저 멘트.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자. 삿자리는 갈대로 만든 자리다. 요새로 치면 카펫 정도 되는 게 바로 삿자리다. 헌데 증자가 깔고 누워 있는 삿자리는 계손*씨가 하사한 대부의 삿자리다. 문제는 사(士)계급인 증자가 대부(大夫)의 삿자리에 누워 있다는 것. 이건 그 자체가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다. 아무리 하사받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계급에 맞지 않는 행동은 예(禮)가 아니다. 증자가 벌떡 일어나 삿자리 교체를 요구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평생 예(禮)를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죽는 순간 그것이 틀어지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삿자리를 교체하던 와중에 죽고 마는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
* 계손 : 당시 노나라의 핵심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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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증자의 임종 장면은 꽤나 아름답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삶의 윤리를 끝까지 지키며 죽게 해달라는 노인의 부탁. 자신이 평생의 비전으로 삼아왔던 효(孝)를 죽는 순간까지 어기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스승. 이것만으로도 증자의 죽음은 감동 그 자체다. 하지만 증자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와 자식들을 가르친다. 부모가 주신 몸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戰戰兢兢)했던 그 마음을 꿰뚫어보라. 왜 그것을 너희들에게 자랑하면서 죽을 수 있는지 알아차려라. 사실 이런 증자의 모습은 공자의 말년을 떠올리게 한다. 14년간의 주유천하를 마치고 노구의 몸으로 돌아온 고향. 이때부터 공자가 했던 일이라곤 책을 보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평생을 해온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죽는 순간까지 그칠 줄 몰랐던 공자. 그것을 삶의 비전으로 삼고 꾸역꾸역 밀고 나간 존재. 증자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런 공자의 영향 때문이리라.

헌데! 이 문장에서 흥미로운 건 단지 증자의 삶만이 아니다. 사실 더 관심이 가는 대목은 몸의 문제다. 평생 몸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증자. 그가 지었다는『효경』(孝經)도 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身體髮膚 受之父母不敢毁傷 孝之始也.(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신체와 머리털, 피부는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그 어느 것에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들이다. 구한말 선비들이 내 모가지를 자를지언정 부모가 주신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비분강개했던 그 장면. 이건 다 저 증자의 말에서 생겨난 거다. 하지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털 하나도 지키려고 했던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의 몸은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수단이었다. 지금 내가 배가 고프면 너도 배고픈 존재라는 걸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몸이다. 서양에서처럼 단지 정신을 담는 그릇 혹은 욕망의 진원지로만 사유되지 않았다는 말씀! “자신과 마찬가지로 몸을 가진 다른 개체와 자기를 동화시켜, 자신의 욕망은 타인에게도 있음을 살피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공자가 말한 서(恕)이다.”* 즉, 나와 타자를 연결시키고 서로 소통하게 만들어 주는 토대가 바로 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증자가 몸을 소중히 다루고자 했던 건 타자와의 소통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라. 감기라도 걸려서 일단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그냥 혼자 있고 싶지 않던가.

*『몸, 마음공부의 기반인가 장애인가』, 운주사, 145쪽

그런데! 타자와의 소통 혹은 공감은 공자가 말하는 ‘인’(仁)의 도화선이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마음. 이게 곧 ‘인’인데 이 마음은 서로 통(通)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현될 수 없다. 남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데 어찌 사랑하고 어찌 같이 울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곧 몸은 인(仁)이 시작되는 장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구나 우리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이 몸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인(仁)의 출발선 앞에 서 있다. 여기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며 살아갈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선택이다. 다만 우리의 몸은 늘 외부와 소통하려고 한다는 것. 소통과 공감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우주에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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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에게 인(仁)의 출발은 효(孝)였다. 내 바로 앞에서 주어진 관계에서부터 시작해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듯 타자의 마음에 가닿는 것. 증자는 부모가 준 몸을 이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사유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부모가 준 몸을 인(仁)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이나 그것을 평생 조심조심 다루겠다는 마음. 인(仁)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너희들의 몸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라고 말하는 스승. 이 스승의 말은 여전히 울림이 크다. 더구나 요즘처럼 과격하게 공사(!)를 진행해서 자기 부모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환골탈태하는 시대엔 더더욱! 아름다움이란 갖출 건 갖춰져야 하는 외모의 스펙(!)이 아니다. 맹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개나 소가 없어지면 찾지만 마음이 없어졌는데도 찾지 않는다. 그 마음[仁]을 찾아가는 길. 몸은 입구다. 몸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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