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나의 고전분투기

공자가 말하는 '강함'이란 무엇인가

by 북드라망 2016. 8. 25.


자로 강함에 대해 물었다(子路 問强)






자로(子路)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중(仲)이고 이름은 유(由)다. 그 많은 공자 제자 중에서 중용에 언급되어 있는 제자는 단 두 사람인데, 바로 안회와 자로다. 안회가 성인에 버금가는 제자라면, 자로는 무인출신으로 순박하고 강직한 인물이다. 이 두 제자는 모두 공자 보다 일찍 세상을 떴는데, 공자가 71세 되던 해에 안회가 죽고, 그 이듬해에 자로는 위나라에서 괴외의 난을 만나 죽는다. 공자는 자로를 무척 아끼고 신뢰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나라에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리니, 아마도 나를 따를 자는 유(由)일 것이다”(「논어』, 공야장)라고 하면서 자로에 대한 믿음을 표하고 있다. 일개 무뢰한이었던 자로는 공자에 의해 학문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다. 『공자가어』에는 공자가 자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자로는 본시 학문에는 별 뜻이 없었다. 공자가 무(武)에 능한 자로의 자질에 학문을 더하게 되면 감히 견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자로는 “학문을 하는 것이 무슨 유익함이 있습니까?”라고 당돌하게 받아친다.


공자가 다시 설득하기를, “대개 임금도 간하는 선비가 없으면 정직함을 잃어버리기 쉽고, 선비도 가르쳐주는 친구가 없으면 들은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길이 들지 않은 말을 모든 데는 채찍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것이며, 활을 잡자면 도지개를 바로 해야 하는 법이다. 나무도 먹줄을 받은 뒤에라야 비로소 발라지고, 사람도 간하는 말을 들어야만 비로소 선해지는 것이다. 배움을 받고 남에게 묻는 것을 소중하게 안다면 누구인들 나쁜 일을 하겠느냐? 만일 어진 사람을 헐뜯거나 선비를 미워한다면 반드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학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인간구실 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자의 요지다. 그런데 자로는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대꾸 했다. “남쪽 산의 대나무는 잡아주지 않아도 저절로 반듯하게 자라고, 그것을 잘라서 쓴다면 병기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말한다면 꼭 학문을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질이 갖추어져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 굳이 뭘 더 배우겠냐는 항변이다. 그러자 공자가 “화살 한쪽에 깃을 꼽고 다른 쪽에 촉을 박는다면 그 날카롭고 가벼운 것이 겸해져서 목표물에 들어가는 것이 깊어지지 않겠느냐?”라고 재차 설득하자, 자로는 공손히 두 번 절하고 공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자로가 강(强)에 대해 물었다(子路 問强)”라는 구절로 중용 10장은 시작된다. 이 물음에 대해 공자가 말하기를,

“남방에서 행하는 강함이냐 북방의 행하는 강함이냐 

아니면 너의 강함을 묻는 것이냐?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

너그럽고 부드럽게 가르치고, 상대방이 무도하게 하여도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는 이렇게 행한다.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 居之)

갑옷과 무기를 깔고 자면서 죽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북방의 강함이니, 억세고 거친 사람들은 그렇게 행한다.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


자로가 공자에게 강함에 대해 질문한 것은 그의 기질로 보아 당연하다. 짐짓 자신의 용맹함을 칭찬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공자를 만났을 때 자로는 “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공자의 질문에, “긴 칼을 좋아 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자로는 공자 덕분에 배움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억센 기질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자로는 종종 자신의 용맹함으로 공자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논어』의 「술이편」에 실린 일화는 이렇다. 자로는 공자에게 “선생님께서 3군을 통솔하시게 된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가 기대한 대답은 “바로 너 자로다”라는 것일 게다. 하지만 공자는 자로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 하며 죽음도 불사하는 자와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는 힘의 크기에만 의존하는 강함은 진짜 강함이 아니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자로가 강(强)에 대해 묻자, 공자는 자로가 생각할 법한 것과는 정반대의 강(强)을 제시한다. “너그럽고 부드럽게 가르치고, 무도(無道)함에도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는 이렇게 행한다.” 힘을 쓰지 않고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고, 폭력을 폭력으로 맞받아치지 않는 것이 바로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남방의 강(强)과 북방의 강(强)을 대비 시키는데, 전자는 군자의 강함이지만 후자는 억세고 거친 사람들의 강함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자의 말로 봐서는 남방의 강(强)은 군자의 강(强)이지만 북방의 강(强)은 군자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공자는 왜 자로의 질문에 “남방에서 행하는 강함이냐 북방의 행하는 강함이냐 아니면 너의 강함을 묻는 것이냐”고 반문했을까? 마치 남방의 강(强)과, 북방의 강(强), 너(자로)의 강(强)이 따로 따로 있는 것 같다.


큰 칼을 좋아한다는 그 기질로 보아 자로가 생각하는 강(强)은 필시 북방의 강함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통념적인 강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자의 반문으로 보아 통념도 한 가지가 아니다. 주자의 주석에 따르면, 남방의 사람들은 기질이 유약하기에 포용하고 참는 것이 다른 것을 이기는 강(强)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남방의 사람들은 유약하기에 포용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보전하면서 오래도록 살아낼 수 있었다면, 그것을 오히려 강한 것으로 여길게다. 그런데 북방의 사람들은 타고난 기질이 억세고 거칠다. 그래서 그들은 참지 않는다. 언제라도 전쟁에 뛰어나갈 수 있게 갑옷을 깔고 잘지라도, 전쟁에 나가 죽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방사람들의 그것을 강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까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강함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기질에 따라 달라진다. 공자는 남방 사람들이 강함으로 여기는 것이 군자의 강함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남방 사람들의 유약함이 오히려 득이 되는 셈이다.
 

물은 강한가, 강하지 않은가 - 우리가 생각하는 강함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기질에 따라 달라진다



기질이 유약한 자들은 상대방을 향해 무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자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외면적으로 포용하고 조화로울 수 있다. 하지만 약하기만 하다면 강한 자들의 등쌀에 버텨낼 수 있을까? 아마도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을 버텨내고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내는 것은 유약함 속에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강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남방의 강함은 버텨내는 힘이다. 하지만 자로는 기질적으로 유약한 자가 아니기에, 유약하지만 버텨내는 남방의 강함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자로는 어떻게 군자의 강함을 행할 수 있을까? 자신의 굳건한 기질을 바깥으로만 쓴다면, 한낱 칼잡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군자가 되기는 어려운 일일 게다. 하지만 그 기질을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데 쓴다면 자로는 누구보다 군자의 강(强)을 잘 실행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다. 기질적인 굳건함이 있기 때문이다. 자로는 자신의 굳건한 기질을 버리지 않고도 군자의 강함을 실천할 수 있는데, 그 굳건함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공자가 자로에게 제시하는 군자의 강함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여러 사람과 화목하되, 휩쓸리지는 않나니 강하다! 굳셈이여,

(故 君子 和而不流 强哉矯)

중용을 행하여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다! 굳셈이여,

(中立而不倚 强哉矯)

나라에 도가 있어

벼슬에 나아가도 어려운 시절의 그 뜻을 바꾸지 않으니 강하다! 굳셈이여,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

나라에 도가 없어 물러났을 때에도,

죽을 때까지 그 뜻을 바꾸지 않으니 강하다! 굳셈이여”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남방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다른 자들과 화목하지만, 그 속에 강함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화목하되 휩쓸리지 않는, 화이불류(和而不流)는 굳세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한 순임금의 중용의 정치는 대표적인 화이불류(和而不流)의 사례일 것이다. 그는 백성과 조화롭되 백성들에게 휩쓸리지 않았고, 백성과 같은 삶을 산 것도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쳐서 상대방에게 휩쓸려 버리거나 아니면 내가 남을 휩쓸어버려서는 중용을 행할 수 없다. 그러니 중(中)에서 딱 버틸 수 있는 강(强)이 필요하고, 그것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강함이다. 그런 강함이 있다면, 국정이 잘 운영되어 벼슬길에 올라도, 어려운 시절에 자신과 백성을 위해 품었던 선한 뜻을 바꾸지 않을 수 있고, 국정이 어지러울 때에는 죽을 때까지 앞길이 캄캄하더라도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그 뜻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자로에게 답해주는 강(强)은 바로 자신을 이기는 강(强)이다.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로는 공자의 가르침대로, 나라에 도가 없을 때(國無道), 곡학아세(曲學阿世) 하지 않는 강(强)을 행했던 듯하다. 자로가 위(衛)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에 위나라의 영공(靈公)이 아들 괴외를 내쫓았다. 영공(靈公)이 죽자 위나라 사람들이 괴외(蒯聵)의 아들 첩이 적손(嫡孫)이기에 왕으로 옹립했다. 그가 출공(出公)(輒)이고 자로는 그를 군주로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쫓겨나있던 괴외가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위나라에 들어 오려하자 그 아들 첩이 막았다. 말하자면 부자지간의 왕위 다툼이 생겼던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괴외의 난이고, 아들인 첩은 그 아비에게 쫓겨나는데, 그래서 출공(出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자로는 모시던 주군, 출공 첩의 세가 기울었다고 마음을 바꾸지 않고 그 마음을 지키다가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때 공자는 노나라에 돌아와 있을 때인데, 반란 소식을 듣고 자로의 죽음을 예견했다. 자로는 죽임을 당하여 젓갈로 담기는 수모를 겪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자는 집에 있던 젓갈을 모두 내다 버리고, 깊이 슬퍼했다고 한다. 자로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도 죽었다.


글_최유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