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발! 인문의역학! ▽/기탄동감

[기탄동감] 거울아, 거울아 내 몸에 어디가 아프니?

by 북드라망 2016. 4. 21.


[기초탄탄 동의보감, 첫 연재]

동의보감, 양생의 길을 비추는 거울




3년 전 『동의보감』 완역본을 구입했다. 무지 두껍고 비쌌지만 열심히 읽어 보리라 결심하고 망설임 없이 사들였다. 하지만 여태 ‘언젠간 저걸 제대로 읽어야 할 텐데...’ 하면서도 잘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기탄동감 세미나를 시작해서 원문까지 읽어가며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세미나에서는 한문 원문을 읽고 해석하면서 한 자 한 자 다시 짚어 나간다. 그러면 번역문으로만 읽었을 때 후루룩 읽고 지나가 버렸거나,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 갔던 부분들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몸 안에 있는 물을 말할 때도 수(水)라는 글자를 쓸 때와 습(濕:아래에 고인 물, 순환하지 않는 물)이라고 썼을 때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나 <잉태의 시초>에 나온 회태(懷胎)에서 ‘품을 회(懷)’라는 글자가 ‘항상 마음을 거기에 두고 있다’라는 것 등등. 작은 표현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그 뜻을 살려 세심하게 표현했다는 데 감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삶을 길러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이 보배로운 거울(寶鑑)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서문」과 「집례」부분을 가지고 한 번 파헤쳐 보겠다.


거울아, 거울아, 내 낯빛이 왜 이리 안 좋으니? 간이 문젠가..


『동의보감』은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있던 1596년 선조의 명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1610년에 완성되었다. 선조가 그 책임자인 허준에게 준 미션은 다음과 같다.


近見中朝方書  皆是抄集庸瑣  不足觀爾  宜裒聚諸方  輯成一書

요즘 중국과 조선의 의학책들을 보니 모두 베껴 모은 것으로 변변치 않고 자질구레한 것들이라 쉽게 살피기에 부족하니 그대는 여러 의서들을 모아서 (좋은) 책 하나로 편찬하라.           

- 『동의보감』 「서문」


이 책은 무엇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觀爾]하라”는 왕명에 충실했다. 그래서 목차만 훑어보고도 처방과 약물까지 훤히 알 수 있다. 게다가 <발병 시기의 특성>이나 <병명>, <질병의 여러 증상>, <관련 처방이나 약물>과 같은 여러 다양한 입구들 중 어디를 통해서 접속하든지 상호 연관된 내용들을 찾아가면서 살펴볼 수 있다. 누구든 일단 책을 펴고 궁금한 대목을 찾아보기 시작하면 실감할 수 있다. 고구마를 캘 때처럼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의보감』 특유의 연결망을.


또한 이 책은 ‘당시 의서들이 (임상 위주로) 경전을 베껴 쓰고 짜깁기해서 그 가르침의 요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抄集庸瑣]’는 반성을 바탕으로 편찬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준은 생명현상과 의학의 근본이치를 깊이 고민하였고, 기존 의서에서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대분류 체계를 세웠다.  
 

今此書  先以內景  精氣神臟腑爲內編  次取外境  頭面手足筋脈骨肉 爲外編. 又採五運六氣  四象三法  內傷外感  諸病之證  例爲雜編  末著湯液針灸  以盡其變.
지금 이 책은 먼저 내경의 정, 기, 신, 장부를 내편으로 삼고, 다음으로 외경의 두(頭), 면(面), 수(手), 족(足), 근(筋), 맥(脈), 골(骨), 육(肉)을 외편으로 삼고, 또한 오운육기, 사상(望, 聞, 問, 切)과 삼법(吐, 汗, 下), 내상(內傷)과 외감(外感), 모든 질병의 증상을 나열하여 잡편(雜篇)으로 삼고, 끄트머리에 탕액(湯液), 침구(鍼灸)를 덧붙여 그 변하는 이치를 다 밝혔다.  

- 『동의보감』 「집례」


동의보감의 목차. 「내경편」권1, <신형-정기신>으로 시작되어 쭉 이어진다.



『동의보감』이 구분해 놓은 생명현상의 기본 얼개는 다섯 편, 거기에 덧붙여진 「부인」과 「소아」까지하면 무려 7층짜리 거울인 셈이다. 먼저 「내경편」에서는 사람의 몸이 어떻게 갖추어지고 사라지는지 보여주고, 뒤이어 정, 기, 신이 나온다. 이 셋은 각각 달리 작용하지만 생명의 근본이 되는 본질적 요소들이다. 정기신의 작용으로 몸을 구성하는 실체적 기관이 오장육부다. 그것과 함께 인체의 내부를 살피는 게 첫 번째 거울이 비추는 모습이다.


두 번째 거울 「외형편」에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순서대로 몸의 외부에서 관찰가능한 생명현상과 병리를 낱낱이 비춰 준다.


세 번째 「잡병편」의 시작은 외부와의 관계성을 살피는 <오운육기>다. 인체의 생명활동은 자연환경과 사계절, 주야의 변화 등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시공간의 특성과 생리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 거다. 그 다음에 보고[望], 듣고[聞], 묻고[問], 맥을 짚는[切]의 4가지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변증(辨證)>이 나오고 약을 써서 땀 내고[汗] 토하게 하고[吐] 설사시키는[下] 기본 치법과 그 밖에 온갖 질병의 구체적인 증상과 치법 등을 총망라한다.


「탕액편」은 치료에 쓰이는 각종 약물에 관한 내용인데, 약리 이론은 물론이고 약물의 채취와 가공, 약물의 처방법, 약을 달이고 먹는 방법까지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네 번째 거울이다.


마지막으로 「침구편」은 기가 흐르는 통로인 경락과 혈자리, 침의 종류와 시술법, 뜸의 이론과 운용, 침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각종 방법과 금기 등을 다루고 있다.  


이 다층적 분류체계에 따라 허준은 그때까지 발간된 수많은 의서들 중에서 230여종을 골라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재배치하여 『동의보감』 25권을 완성했다. 이것은 이 책이 단순히 기존 학설과 처방을 가지런히 정리하는데 그친 게 아니라 독창적인 시선을 통해 조망한 생명과 질병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때까지 도교에서 중시해 온 양생의 전통을 중심에 두고 거기에다 다양한 의학 이론과 처방을 결합시키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25권에 양생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담았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은 왜 처방과 치료에 중심을 둔 임상의학적 접근이 아니라 양생을 이 책의 큰 줄기로 선택한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道家以淸靜修養爲本  醫門以藥餌針灸爲治  是道得其精   醫得其粗也.

도가에서는 맑고 고요히 수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의가는 약과 음식, 그리고 침구(鍼灸)로 치료를 하니, 이에 도가는 그 정미로움을 얻었고 의가는 그 거친 것을 얻었다 할 것이다.

- 『동의보감』 「집례」


이미 병이 난 다음에 약과 음식[藥餌]으로 다스리고 침과 뜸[鍼灸]을 쓰는 건 질병을 치료하는 기본이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그것을 연구하고 의서를 통해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다. 반면 맑고 고요하게 수양하는 도가적 방법은 일상의 활동에서 정기신을 조절해 타고난 생명력 자체를 고양시키는 양생을 말한다. 앞에서 “도가는 그 정미로움을 얻었고 의가는 그 거친 것을 얻었다”고 한 것은 허준이 생리와 병리현상을 파악하고 조절하는 데 있어서 양생을 핵심으로 보았음을 알려준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생리와 병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모든 사물의 물질적 근원을 “기(氣)”라고 본다. 이 기가 모여 우주만물과 인간을 이루고 살아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모든 병은 생명활동을 담당하는 기의 부조화 상태에서 비롯된다. ‘끊임없이 운동 변화하고 있는 기(氣)를 조화롭게 다스리며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대답으로 『동의보감』은 정기신을 다스려 생명력을 높이는 것을 중심에 놓고 몸의 부위와 각종 질병을 살피고 그 원인과 치법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허준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 거울에 각자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권하고 있다.  


使病人開卷目擊  則虛實輕重吉凶死生之兆  明若水境  庶無妄治夭折之患矣.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책을 펼쳐 보게 하면 (질병의) 허실(虛實), 경중(輕重), 길흉(吉凶), 사생(死生)의 징조가 물로 만든 거울에 비쳐 보이듯이 환히 알게 된다. 허망한 치료로 요절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동의보감』 「집례」


우리 몸에서는 질병이 진행되는 각각의 단계마다 다양한 징조들이 나타난다. 만약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보고 그 신호를 해석하면 병의 허실과 경중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후 각자 자기 상태에 맞게 심신의 활동을 조절하는 양생과 적절한 치료를 병행한다면 병이 계속 진행되어 ‘각자 타고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요절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는다’는 걸 피할 수 없고, ‘병이 든다’는 것도 당연히 겪게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어떻게 자신의 삶을 조절해 나가느냐에 따라 질병과 죽음을 겪어가는 구체적인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굳이 전문가와 약물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상생활 속에서 몇 가지 실천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몸이 보내고 있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생명력을 높이는 길을 보여줄 수 있는 밝은 거울[寶鑑]이 필요한 거다.


"자, 아~ 해봐. 네 증상엔 이게 딱이야."



사실 내가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5년 전 ‘이러다 곧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쓰러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전처럼 살면 안 되겠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까...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의역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쩌다 이 정도로 몸을 상하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스무 살 이후, 내 삶은 과속의 연속이었다. 하려고 마음먹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너~무 열(熱).심(心).히. 했던 거다. 심장이 열 받을 정도로 항진된 상태로 밤새는 걸 수시로 계속해 오기를 20년. 그러니 정기신이 고갈되어 몸이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방전되고 만 거였다.


그간 내가 겪었던 여러 가지 병증들, 족심열(足心熱)과 서병(暑病) 그리고 천식, 이명(耳鳴)과 신허요통 등등을 『동의보감』에서 찾아보았다. 모두 제각각 달라 보이지만 그 원인은 하나같이 ‘진액이 다 쫄여져서’라는 게 분명해졌다. 나를 둘러싼 시공간의 리듬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것도, 매사에 진이 다 빠지도록 과로를 반복해 온 것도...그렇게 사는 것이 ‘내게 좋은 거’라고 믿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생명을 갉아먹는 일을 열나게 해 온 것이었을 뿐.


여태까지 살아온 모습을 『동의보감』에 비추어 보았더니 내게 꼭 필요한 양생의 지침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욕심 부리지 않기, 여름에는 얼음 씹기 대신 음양탕 마시기, 마구 에너지를 써대는 걸 발견할 때마다 가슴을 두드리며 “워~워~ 이제 그만 진정해~”라고 말해 주기.” 이 세 가지가 그 안에서 찾아낸 나의 양생 실천 지침이다. 생명력(진액)을 다 쫄여버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마음을 다스리고 일상의 리듬을 조절하는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누구라도 각자 자신의 병증에서부터 출발해서 그걸 만들어낸 욕망과 행동들을 『동의보감』에 비추어 보면 어떻게 해야 일상에서 중(中 : 그때 그때 적합한 마음과 행동)을 잡아야 할 지 자기만의 변화지점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아픈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습관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잠깐 방심할 때마다 난 어느새 ‘에너지 대방출 모드’가 되고 만다. 결국 정신줄 놓치지 않으려면 자꾸 들여다보고 내 삶을 비춰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동의보감』을 펼쳐보며 이렇게 말한다. 거울아 거울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   



글_고은주(감이당 대중지성)



'출발! 인문의역학'에서 새로운 코너 <기탄동감>을 시작합니다. <기탄동감>은 '기'초를 ''탄하게 다지며 ''의보''을 읽어나가자-라는 뜻으로, 감이당에서 함께 『동의보감』을 공부하는 분들이 그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실 예정입니다. 격주 목요일에 연재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D

아, <기탄동감>에 올라오는 글들은 감이당 감성블로그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