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보다 더 재미있는 융의 심리유형 Ⅰ
정 기 재 (사이재)
사람은 자기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보게 된다. 틀림없이 형제의 눈에 티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눈에는 들보가 들어 있다. 이 들보가 그 사람의 보는 행위를 위험할 정도로 방해할 것이다. (카를 융, 『심리유형』21쪽)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얘기는 반박 불가의 진리다. 이 속담은 흔히 알다가도 모를 게 ‘남의 속’과 ‘남의 마음’이며, 그러므로 ‘남’을 믿지 말라는 훈계로 통용된다. 그러나 살다 보니 깨닫게 된 건, 오히려 믿지 못할 건 ‘남의 속’이 아니라 ‘내 속’, ‘내 마음’이란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들, 저 스스로 굴러가는 사고의 회로들….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이 낯선 타자인 ‘나’야말로 인류의 오랜 탐구의 대상이었다. 인류가 오랫동안 별자리, 사주명리, 애니어그램 등에 탐닉한 것도 그래서다. 생각해 보면 인류가 추구한 앎의 최종심급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다.
MZ들의 별자리, 사주 명리라고 하는 MBTI는 이런 자기 탐구의 계보를 잇는다. MBTI는 융과 동갑내기인 미국인 여성 캐서린 쿡 브릭스가 개발했다. 미국 젊은이들의 성공적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서다. 그런 캐서린이 보고 또 보며 참고한 게 바로 융의 『심리유형』이다. 캐서린은 융의 『심리유형』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 93개의 ‘자기보고’ 문항을 첨가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자기보고’란 말이다. 융의 『심리유형』과 MBTI에는 여러 차이가 있지만, 둘다 ‘자기’를 탐구할 주체가 ‘자기’여야 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자기 마음의 자기 탐구! 평범한 말 같지만 이 말의 의미는 깊다.
융의 저서 중 『심리유형』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 이전의 저서들이 학자나 전문의학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심리유형』은 ‘전문 영역 밖’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출간했다. 융은 정신의학자이자 학자이다. 학자가 자신의 연구성과를 대중서로 출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섣부른 일반화라는 동료 학자들의 비난을 감내해야 하고, 대중의 남용과 오해를 무릅써야 하기 때문이다. 학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이다. 그럼에도 융은 자신의 심리유형이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기준틀(칼 구스타프 융 지음,정명진 옮김,『심리유형』,부글books, 2022, 4-5쪽)’이 되기를 바라며 『심리유형』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프로이트와의 결별, 그리고 그에 대한 통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와의 결별과 심리유형의 탄생
융에게 프로이트의 존재는 특별했다. 융은 어려서부터 자기 안의 낯선 타자, 제2의 인격을 느꼈다. 어둡고 기이한 꿈을 꾸었고, 낮에도 환상을 보곤 했다. 어린 시절 융은 자신이 비정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정신의학을 택한 것도, 그런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융에게 프로이트는 구세주와 같았다. 프로이트는 누구에게나 낯선 자기, 즉 어두운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논증했고, 그 무의식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 프로이트 덕에 융은 비로소 도깨비같이 출몰하던 자기 제2의 인격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융은 용기를 내서 프로이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 프로이트는 천박한 ‘성욕망’을 공론화했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철저히 외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이 보기에는 프로이트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 당시 독일의 여러 교수들이 프로이트에 대한 지지를 철회라고 압박했을 때 융은 말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카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옮김,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278쪽)
그런 융이 1913년 프로이트와 결별했다. 융이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을 읽은 지 13년, 프로이트와 서신 왕래를 시작한 지 7년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융은 프로이트를 아버지라 불렀고, 프로이트는 융을 아들이자 후계자로 생각했다. 둘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지치지 않고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런 둘이 결별한 이유에 대한 썰은 분분하다. 그러나 융이 밝힌 결별의 이유는 프로이트가 갇혀 있는 협소한 관점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융에게 자신의 ‘성이론’을 따를 것을 요구하며, ‘성이론을 하나의 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281쪽) 여기서 융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성이론’이 아니라 ‘교리’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성이론’을 ‘유일한 진리’로 인정하라고 고집했고, 융은 노력했지만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융에게 무의식이란 다양한 욕망들의 복합체였고 훨씬 근원적이고 역동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융이 보기에 성이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집착은 병적이었다.
여기서 융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성이론’이 아니라 ‘교리’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성이론’을 ‘유일한 진리’로 인정하라고 고집했고, 융은 노력했지만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의 다툼은 격렬했다. 프로이트는 융이 ‘검은 진흙탕의 홍수’, 즉 주관적 신비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고, 융은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성욕’ 속에 욱여넣으려 한다고 반격했다. 둘의 마지막 편지를 보면 놀랄 정도로 신랄하다. 융은 자신을 주관적이라고 비난하는 프로이트에게, 자신은 프로이트의 ‘얄팍한 계략을 꿰뚫어 볼 만큼 객관적’이며 ‘프로이트의 눈’에는 ‘어마어마한 들보’가 들어 있어서 ‘신경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프로이트의 답변도 만만치 않다. 프로이트는 융에게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이 정상이라고 외치’고 있다며 ‘개인적 관계를 완전히 청산할 것을 제안’한다. 치열한 다툼, 완전한 결별! (지그문트 프로이트,칼구스타프 융, 정명진 옮김, 『프로이트와 융의 편지』,부글books,2018-1912년 12월18일 393쪽, 1913년 1월3일 395쪽)
생각해 보면 이상한 풍경이다. 융도 프로이트도 모두 당대에 내로라하는 학자들이다. 학문을 하다 보면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이견은 이성적으로 논증하면 그만이다. 적어도 냉철한 이성을 가진 학자들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자, 그것도 마음을 연구한다는 전문가들이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마치 헤어지는 부부처럼 서로를 저주하며 치고받고 싸우다니! 이런 상황에서 누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랬다. 이들이 서로의 이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 그러니까 심리의 문제였다. 당시에는 융도 프로이트도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 다른 스승과 제자들
감정적으로 치열했던 만큼 융이 받은 타격감은 상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융에게 등을 돌렸고 그의 책을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극한의 ‘방향 상실’! 당시 융은 취리히 대학의 강사직을 내려놓고 의사의 본분, 그리고 내적 탐구에만 몰두한다. 그리고 그 6년간의 세월 동안 끈질기게 ‘프로이트와 자신의 관계’를 묻고 또 묻는다. 융은 이해해야 했다. 무엇이 자신과 프로이트의 차이를 만들고, 어떻게 그 차이가 오해가 됐는지. 그래야 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 터였다.
프로이트와의 결별을 이해하기 위해 융은 20년간의 임상경험, 수많은 문헌을 꼼꼼히 검토한다. 무엇보다 도움이 된 건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관계였다. 융보다 5살 많은 아들러는 융과 함께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동료이자 제자였다. 프로이트의 좌청룡 우백호, 그들이 바로 융과 아들러였다. 그런데 아들러 또한 ‘성욕망’을 무의식의 유일한 본질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들러가 보기에 인간의 근본 욕망은 ‘성’보다 ‘열등콤플렉스’에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보다 우월해지려는 욕망이 있으며, ‘자아 우월감’이야말로 무의식의 중심이라고 본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동의하지 못했고, 둘 역시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장렬한 이별! 프로이트와 융이 헤어지기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융은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관계에서 자신과 프로이트의 관계를 본다. 프로이트의 이론도, 아들러의 이론도 모두 진실이었다. 어떤 환자들은 대상과의 관계가 중요했고, 어떤 환자들은 자존심을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더 잘 맞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들러의 이론이 더 적합했다. 둘의 이론은 대조적이었지만 배타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둘은 자신의 관점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확신하며 서로를 배척했다. 여기서 융은 ‘심리 유형’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내가 프로이트나 아들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견해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내가 거기에 관해 숙고했을 때 유형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판단을 애초부터 결정하고 제약하는 것은 심리학적 유형이기 때문이었다. 그 저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세계와의 충돌, 개인과 타인, 개인과 사물의 관계를 다루었다.(『카를 융, 기억 꿈 사상』, 375쪽)
정신은 저 무의식의 심층부터 표면의 의식까지 중층적인 구조를 이룬다. 그중에서 의식의 임무는 정신의 최전선에서 외부 대상을 탐색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이 의식만큼은 내 의도대로, 합리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의 의식적 판단도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인 경향성 위에서 움직인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늘 꽂히는 데 또 꽂히고, 생각의 패턴도 늘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면 이런 의식적 판단의 경향성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융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질적 차이에 주목한다. 우리는 누구나 선천적인 심리적 기질을 타고나며, 그 경향성에 의지해 세상에 적응한다. 그리고 후천적 경험은 다시 자신의 심리적 경향성을 조절한다. 이처럼 타고난 심리적 기질과 후천적 경험이 결합해 굳어진 심리적 패턴을 융은 ‘심리 유형’이라고 불렀다.
융이 보기에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갈등은 이런 ‘심리 유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심리적 유형이 달랐다. 프로이트는 외부 대상과의 합일을 욕망했고, 아들러의 관심은 주체를 향했다. 융이 보기에 프로이트는 외향형, 아들러는 내향형이었다. 이들의 심리적 기질은 각자의 경험 속에서 그 경향성이 더 강해졌다. 예컨대, 외향형인 프로이트는 어머니와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했던 프로이트는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욕망의 실현을 경험했다. 반면에 아들러는 어려서 구루병을 앓아 잘 걷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내향형의 아들러는 유난히 ‘자아 우월’ 문제에 집착했고, 그 결과 ‘열등 콤플렉스’를 인간의 핵심 욕망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타고난 심리 유형에 따라 세상을 경험했고, 다시 그 경험이 그들의 심리적 경향성을 견고하게 했다. 그 결과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각자의 심리 유형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자신의 좁은 울타리 안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으며 상대가 그르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프로이트와 아들러, 그리고 융의 갈등은 차이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차이를 보지 못하는 편향성, ‘네 맘이 내 맘’이라는 공감의 콩깍지가 상대의 다름을 ‘잘못’ 혹은 ‘오류’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융이 『심리유형』을 전문 영역 밖, 일반인들에게 널리 전파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로이트, 아들러, 융이 누구던가, 사람의 마음을 저 심층까지 탐구한 마음의 전문가들 아닌가. 그들조차 자신이 끼고 있는 심리적 색안경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피 터지게 싸웠다. 마음의 거장들도 그럴진대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진짜 무서운 건 ‘수소폭탄’보다 그 수소폭탄을 터트릴 수 있는 ‘다수의 마음’이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250쪽) 그래서 융은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리유형』을 통해 ‘이로운 것’, 즉 자기 이해에 이르는 나침반을 갖길 바랐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이 사실은 내 눈의 들보가 비친 그림자임을 알아야 미움과 적대의 악순환을 끝낼 것이 아닌가. 그래서 『심리유형』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자기 탐구서로 활용해야 한다.
나에게 몰두하는 내향형, 밖을 바라보는 외향형
자, 그러면 내 눈의 들보를 걷어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심리유형을 탐구해보자. 누누이 말했지만 융의 심리유형은 ‘개인과 사물’, ‘개인과 타인’, ‘개인의 세계와의 충돌’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375쪽) 심리유형은 기본적으로 관계의 심리학인 것이다. 그래서 심리유형의 질문들은 주로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묻는다. 당신의 의식은 어디를 향하는가? 주체인가, 객체인가? 대상을 탐색할 때 주로 쓰는 정신 기능은?
융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우리의 심리를 유형화한다. 하나의 축은 심리적 에너지(리비도), 즉 욕망이 향하는 방향을 본다. 우리가 ‘외향형’ 혹은 ‘내향형’이라 부르는 ‘일반적 태도유형’이다. 다른 축은 환경에 적응할 때 가장 먼저 출동하는 정신적 기능이 무엇인가를 따진다. 가장 발달된 정신적 기능이 사고(T)인지, 감정(F)인지, 감각(S)인지, 직관(N)인지에 따라 심리적 태도도 달라진다. 융은 우선 ‘태도 유형’을 씨줄로 삼고, 다시 4가지 ‘기능 유형’을 날줄로 엮어 심리 유형을 8가지로 구분했다.
먼저 ‘일반적 태도 유형’을 살펴보자. 우리는 보통 외향형은 적극적이고 활달하며, 내향적인 사람은 내성적이고 수줍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편견은 접어두자. 융의 외향형과 내향형은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내 욕망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먼저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여기 BTS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경탄하기 때문에 BTS를 사랑하지만, 어떤 사람은 평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에서 어떤 주관적 울림을 느꼈기 때문에 ‘아미’가 되었다. 전자는 외부의 대상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했고, 후자는 자기의 주관적 느낌에 충실했다. 같은 ‘아미’이지만 BTS를 바라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만일 이들이 함께 대화를 한다면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지 모른다. 앞서 보았던 프로이트와 아들러처럼 말이다.
요컨대 외향형은 관심과 욕망이 밖을 향하고, 내향형은 자기 내부를 바라본다. 그래서 언뜻 외향형은 적극적으로 보이고 내향형은 소극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향형의 지상과제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에 겉으로 표가 나지 않을 뿐이다. 스스로 내향형이라 밝힌 융만 봐도 그렇다. 융은 자신의 주관적 확신에 따라 때로는 전사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미치광이 소리를 감내했다. 내향형인 융은 누구보다 의지가 강했고 적극적이었다.
융은 심리 유형을 분류하는 데 외향형과 내향형의 구분을 가장 근본에 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일반적 태도유형’은 타고난 것이라 후천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외향형인지 내향형인지 파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성향과 다르게 살게 될 때 우리는 심각한 ‘생리적 손상’을 입거나 ‘탈진’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내향형의 사람이 억지로 인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외부의 압박을 어쩌지 못해 신경증에 걸릴 수도 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19세기의 여성들이 히스테리에 많이 걸렸던 것도, 자신의 외향성을 억누른 채 가정에 고립돼야 했던 그들의 비명인지 모른다.
외향형과 내향형의 차이를 조금더 들여다보자. 거듭 말했듯이 외향형은 중요한 결정이나 판단을 자기 주관보다는 객관적 조건에 맞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유연하고 공감을 잘하며 어디서나 잘 적응한다. 이들의 견해는 대체로 사회적 가치, 도덕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들은 몹시 ‘정상적이다’. 전망좋은 직업을 택하고, 사회적 가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안다. 엄친아, 엄친딸을 모아 놓는다면 아마 십에 아홉은 외향형일 것이다. 그러나 외향형의 문제는 바로 그 ‘정상성’에서 비롯된다. 정상성이란 외부에 설정된 어떤 기준에 근접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표준을 잘 따라가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살려면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되도록 억눌러야 한다. 결과는? 몸은 바쁜데 마음은 공허하고 결국 자기를 잃어버린 느낌적인 느낌? 외향형들이 워커홀릭이 되거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내적 공허감을 일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상하려 하기 때문이다. 혹시 일 때문에, 아니면 대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외향형일 가능성이 크다. 신체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것이라 외향형들에게 가장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하면서 가까운 가족에게 폭군처럼 구는 것도 외향적 성향이 과도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반면 내향형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주관이다. 내향형의 지상과제는 이 밀려오는 외부의 영향력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내향형들은 종종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큰 틀에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압도하는 세상의 힘으로부터 자기를 지켜 내려면 갑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 그래서 내향형은 조용하고 고집스럽게 객체를 밀어낸다. 세상을 위험하고 음모가 가득한 곳으로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내향형일 가능성이 크다. 세상은 미지의 위험을 숨기고 있는 객체들로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혹은 내심 남들을 유치하고 하찮은 존재라고 깎아내리고 있는가? 그 또한 내향형일 가능성이 크다. 객체의 영향력이 더 커질까봐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하찮은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향형들은 고집스럽게 자기 주관을 고수한다. 그래서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다소 불리한 위치에 서있다. 이성과 합리가 우대받는 시대인지라 ‘주관적’이라는 말이 거의 비난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고 있는 것은 주관적 사실은 물리적 사실만큼이나 생생하게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주관적 요인이란 ‘객체의 영향을 융합해 각자 고유한 정신적 사실을 만드는 심리의 작용 또는 반작용’(카를 융,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정신 요법의 기본 문제』, 솔, 2001,295쪽)이다. 외부 세계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가치에 따라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는 과정이 주관이란 말이다. 따라서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홀로 NO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 내향형이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 혁신성을 품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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