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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만나러 갑니다

[돼지 만나러 갑니다] 비질(vigil), 기어코 응시하기

by 북드라망 2024. 4. 16.

비질(vigil), 기어코 응시하기

 

글_경덕(문탁네트워크)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도축장 가는 길
도축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캘린더에는 '비질(vigil)1) 모임, 9:30, 오산역' 이라고 적혀있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하는 인간들로 꽉 찬 지하철에 탑승했다.
  
몸을 비집고 들어가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섰다. 한참을 가야 해서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은 금방 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자고 있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 태연한 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못마땅했다. 벌써부터 피곤하고 짜증이 올라와 눈을 감고 숨을 깊게 쉬었다. 같은 시간 트럭에 실려오고 있을 돼지들이 떠올랐다. 몇 시간 후면 만나게 될 존재들, 오늘 보고 다시는 못 볼 존재들이었다. 출근길 지하철 인파에 섞여 나는 도축장에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지 못해 피곤하고 짜증이 올라오는 상태로 나는 죽기 전의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낯설고 기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역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비질 모임을 주최한 사이 님2),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 개별적으로 비질을 신청한 사람들이 모였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 님3)도 나중에 합류했다. 각자 챙겨온 준비물을 점검했다. 돼지들에게 물을 주기 위한 페트병과 물 분사기, 찐 감자와 고구마를 꺼냈다. 물 조절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페트병 뚜껑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어 약간 어색했지만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함께 나들이 가는 청년들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시간이 다 돼서 인원을 체크하고 다 같이 도축장으로 출발했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맑은 날이었다.


도축장 인근의 공원에 도착해서 벤치에 둘러앉았다. 사이 님이 비질의 의미와 주의사항을 설명해주셨다. "비질은 애도와 저항의 차원에서 현장을 목격하는 행동입니다.", "돼지는 원래 멧돼지와 동일한 종인데 인간만을 위해 의도적으로 장애를 만든 것입니다.", "비질의 목적은 물과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동물의 위계를 체감하고 축산업 현장의 목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질 중에 누군가 시비를 걸어도 크게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축산업의 노동자들도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 추석을 앞두고 있어 오늘은 더 많은 돼지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에는 서로를 소개하며 비질을 시작하기 전의 마음을 나누었다. 비질이 처음인 사람과 여러번 참여한 사람, 돼지를 처음 만나는 사람과 꾸준히 만나온 사람, 비질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사람과 비질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 등이 섞여 있었다. 휴대폰 알람이 울려서 화면을 봤더니 아침 돌봄을 마친 무모 님의 일지가 새벽이생추어리 밴드에 올라왔다. 새벽이가 밥을 먹으러 뛰어오는 모습이 화면에 보였다. 비질에 모인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은 모두 새벽이와 잔디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새벽이와 잔디가 비질 현장에 계속 따라오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든든하면서도 그만 오라고 하고 싶었다. 

물을 받으러 공원 인근 화장실에 가는데 돼지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 도축장으로 이동했다. 돼지 울음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중간에 보이는 고가도로 기둥에는 전에 다녀간 비질 활동가들이 남긴 글과 그림이 희미하게 보였다. 코너를 돌자 큰 트럭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돼지들이 있었다.
 



다시 보기
비질을 다녀와서 그날 목격한 장면들을 바로 떠올리기 힘들었다. 기록한 사진과 동영상을 들춰보기까지, 그들을 다시 마주하고 그들의 눈을 다시 응시하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일그러진 얼굴들, 충혈된 눈빛들, 바닥에 깔려 엉켜있는 다리들, 구겨져 있는 몸들. 나는 그들 앞에 다시 섰다. 누구부터 물을 주어야 할지, 어떻게 물을 고르게 배분할지 같은 생각은 무의미했다. 우리는 손 닿는대로 물을 주기 시작했고 돼지들의 입을 향해 물을 쏘았다. 서로 물을 마시려는 돼지들, 물줄기를 향해 몸을 비집고 힘겹게 다가오는 돼지들, 움직일 힘도 없어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는 돼지들이 그곳에 엉켜 있었다. 돼지가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페트병 구멍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얼마나 역부족일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페트병을 최대한 기울이고 눌러가며 물을 주기 위해 애썼다. 물은 금방 바닥이 났고 물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화장실에 가서 다시 물을 채워왔다.

트럭 뒤쪽을 보니 또 다른 트럭이 있었다. 2층 트럭이었고 윗층에도 돼지들이 많았다. 조금 있으니 그 뒤에 또 다른 트럭이 도착했고, 시간이 흘러 트럭은 그 뒤로 길게 줄을 섰다. 죽음을 대기하는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계속 내 앞의 돼지에게 물을 줘야 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비질은 이들을 살리기 위한 응급 처치도, 구조하기 위한 직접 행동도 아니었다. 비질에 대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은 채로도 행동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급함은 점점 사라졌다. 그저 돼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그들의 눈을 응시했다. 그들의 코를 만지고 등을 쓰다듬었다. 살갗은 열이 올라 뜨겁고 끈적였지만 코는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생후 6개월 정도 되는 어린 돼지들이었다. 그들은 낯선 인간이 내미는 손을 피하지 않았다.

 


기어코 응시하기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었다. 기록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어떤 용도로 쓰일지 모른 채로. 한 손으로 물을 주고 한 손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밑에 깔려 얼굴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돼지의 얼굴을 찍었다. 물을 줘도 다가올 힘이 없는 돼지를 찍었다. 한 모금이라도 목을 축이기 위해 얼굴을 들이미는 돼지를 찍었다. 서로 마시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돼지를 찍었다. 그런 모습들을 눈으로 기어코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과의 접촉이 매순간 우리 신체에 기록되었다. 돼지들을 뒤덮고 있는 흙인지 오물인지 모를 것들이 풍기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들이 내뿜는 분비물이 손에 묻고 옷에 튀었다. 그리고 그들의 울부짖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경계가 있었다. 돼지들과 닿을 수 있는 거리를 최대한 좁혀 접촉했지만 펜스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설령 펜스가 없었다 해도 그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뒹굴 수 있을까. 펜스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과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을까. 그들을 펜스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나는 펜스 너머의 세계를 목격했지만 비질이 끝나면 집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었고,  펜스 너머의 그들은 모두 죽어서 고기가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비질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비질 이후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비질 현장에 계속 따라오는 것 같은 새벽이와 잔디를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만나야 할까. 

트럭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하고 태연한 일상이 펼쳐졌다. 도축장 직원들은 우리를 보고도 그러려니 했다. 어떤 트럭 운전사는 순서를 기다리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근처 족구장에서는 공 차는 소리와 기합 소리가 들렸다. 길 건너편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태우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비질이라는 경계 안팎으로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온몸으로 말하기
비질 마지막 순서는 애도의 시간이었다. 트럭은 차례로 도축장으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돼지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나와 몇몇 사람들은 울부짖는 돼지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동물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어느 때보다 마땅한 일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복잡했고 어떤 마음으로 절을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갑자기 뭔가 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도축장으로 향하는 트럭 뒷편에서 돼지가 코로 철문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철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고 조금 올라가다가 쿵 하고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다가 쿵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돼지는 온 힘을 다해 철문을 올렸다. 쿵. 쿵. 쿵. 돼지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를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트럭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울음소리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비질, 이후
비질을 마치고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이후에 커피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진지하지만 그리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다음 비질 모임에 대해서. 새벽이생추어리 이사에 대해서. 동물권 운동의 지형과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옷을 빨랫통에 넣고 샤워를 했다. 다음 날에는 일정을 취소하고 늦잠을 잤다. 비질 이후의 기이하고 낯선 감각의 여파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비질 현장을 벗어났지만 그날 입은 옷에서는 여전히 돼지들의 냄새가 났다. 태연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몸에 기록된 돼지들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죽은 자를 돌볼 수 있는 세계가 있을까. 어딘가에선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 새로운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을까. 나는 비질과 돌봄 사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있는 취약한 존재들과 함께,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비질을 다녀와서 며칠 후에 새벽이생추어리 돌봄을 갔다. 돌봄 전날에 돼지가 꿈에 나왔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처음엔 새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비질에서 만난 한 명의 돼지였을지도 모르겠다.

 



 
1) 비질(Vigil, 철야기도나 농성) : 도살장 앞을 찾아가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 (한겨레 21.2.16)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32789

2) 옥바라지선교회 생태순례 : 도살장 비질 (23.9.18)
https://www.instagram.com/p/CxFhY1Jpz7W/?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3) 도살 직전 돼지에게, 밥과 물을 주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23.9.23)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941996

 ** 사진은 비질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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