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책』 밑줄긋기
인문 고전 세미나를 지속해 간다면, 쌓여 가는 책들 덕에 책상은 어지러울지 몰라도 ‘일상’은 단순하게 정리됩니다. 주로 관심을 두는 것이 바뀌고, 주로 만나는 사람이 바뀌고,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달라지는 것 말고 무엇이 더 바뀌어야 ‘인생’이 바뀌는 걸까요?”
— 「1장 왜 세미나인가」, 41쪽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 할 수 있어야 자유롭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끝도 없는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속에서 허덕이다 보면 그게 ‘자유’가 아님은 분명해 보입니다. 외물에 휘둘리지 않고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하고자 하는 것’을 간략하게 하고, 욕망의 방향을 멈추고 성찰하는 방향으로 돌려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고, 공부는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니 세미나가 필요하고, 세미나를 하다 보면 친구가 생기고, 공간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답니다^^
‘공부가 의미를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내 공부의 영향력을 내가 실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읽고 쓰는 걸 혼자서 계속 해나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한다면 ‘지식’을 다루어 내 몸에 새겨 넣는 능력은 좋아질지 몰라도 그걸 밖으로 꺼내어 전달하는 능력이 자라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 자기를 평가하는 셈이지요. 어느 한계 이상으로는 공부가 나아가질 않습니다. 물론, ‘지식’은 계속 쌓여 갑니다. 다만 지식을 쌓는 방법이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그게 바뀌려면 몸에 들어온 지식을 한 번씩 밖으로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말이 닿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내 말이 추락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한계를 겪어 보아야만 내가 쌓은 지식의 성질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이건 고스란히 ‘나’라는 존재의 존재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말하자면 ‘사고방식’의 전환에도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연쇄적이어서 사고방식이 바뀌면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이는 ‘느끼는 방식’ 그러니까 ‘정서’도 바꾸어 놓습니다.
내가 내 지식을 ‘말’로 바꾸어 밖으로 내놓는 일의 힘이 그렇게 강력합니다. 여기엔 내 말을 듣는 ‘타자’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내 말의 한계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한계를 봅니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내 존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환시킬 수도 있습니다.
— 「10장 세미나와 말하기」, 160쪽
이 책의 이 페이지만 읽어도, 세미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뿜뿜이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책꽂이에 묵혀놨던 두껍고 무거운 책들이, 목침으로 쓰기도 어려운 책들이 눈앞을 스쳐갑니다. 혼자여서 하는 읽기의 방법도 좋지만, 여렷이 함께 세미나로 먹고 씹고 맛보는 읽기의 방법도 좋습니다. 책을 왜 읽는지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혼독도 좋지만 세미나책을 통해서 지금까지와 또 다른 길로 접속해보아요.
일단, 입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할 말을 못 찾겠어서 입을 열 수 없다면 ‘할 말’을 찾지 마시고, ‘모르겠다’ 싶은 문제를 찾으시면 됩니다. 전체를 다 모르겠다 싶으면 그중에서 특히 더 모르겠는 걸 찾아야 합니다. 어떤 걸 모르는지 모르겠다 싶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겠다 싶은 걸 찾아야 합니다. 거기가 출발점입니다.
— 「10장 세미나와 말하기」, 171쪽
할 말이 없는데 말을 해야 할 때만큼 곤혹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어떻게든 ‘할 말’을 만들어내야 하겠지요. 하지만 세미나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네요.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로 ‘할 말’을 먼저 찾다보면, 텍스트와 상관없이 자신의 선입견만 늘어놓다 끝나는 수도 있고, 세미나는 산으로 갈지도 모르니까요. 텍스트와 관련해서 모르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억지로 ‘할 말’을 찾다 보면, 말 한마디에 ‘심장’이 다 들여다보일 수도 있습니다ㅋ
말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현란한 말솜씨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말하기'에는 리듬이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리듬을 깨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토론의 맥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디서 끊어지고 어디서 이어지고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 「11장 세미나와 말하기 ② ― 말하면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중에서)
보통 말을 잘한다고 할 때 화려한 언변을 쉽게 떠올리지만,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평상시에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발화된 말만이 아니라 몸짓 언어까지 잘 듣는 사람이 결국은 말을 잘하는 것이지요. 이때의 말은 때와 장소와 상대의 마음에 잘 맞고 잘 와닿는 말일 겁니다. 일상의 말과 세미나 때의 말은 물론 다르지만, 기본은 다를 리 없습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중에도 상대가 하는 몸짓 말을 호응의 말을 부정의 말을 잘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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