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6)
『노자』의 주석 2 - 하상공 주
2. 하상공의 주.
지난 번에는 왕필의 주석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하상공의 주를 살펴볼 텐데, 하상공 주는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제왕의 학으로 『노자』를 읽는다는 점이다. 제왕의 학을 특칭해서 황로학(黃老學)이라고 한다. 하상공 주는 황로학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노자』를 해석했다는 말이다.
(1)황로학
황로학이란 무엇인가. 두 경로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정치사상으로서의 황로학이다. ‘황로’(黃老)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 보이는데 사마씨 부자(父子)는 황로학을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고 사용했다. 아마 정의할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한나라 초기에 유행했던 사상이어서 당대에는 누구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따로 정의를 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사상을 결합했다고 알려졌는데 강조점은 노자가 아니라 황제에 찍힌다. 노장(老莊)으로 칭해지던 노자의 주류는 은둔파가 대부분이어서 개인수양에 전념, 통치라는 사회적 행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로학은 세상에 참여해 치국을 논하는 것이었으므로 노자보다는 황제의 말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다. 황제의 말을 근거로 한다고 할 때 근거가 되는 문헌증거가 필수적인데 다행스럽게 1973년 마왕퇴에서 『노자』 백서본이 출토될 때 『황제사경』(黃帝四經) 백서본이 함께 발견되어 황로학을 좀 더 명확하게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황로학 연구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치국의 도를 탐색하던 일군의 도가 사상가들이 노자의 말에 춘추시대 이래 유행하던 황제의 말[黃帝之言]을 엮은 것이라 노자의 철학적 담론이 황제의 치국방략과 합치된 형태다. 통상 도법결합(道法結合)으로 설명한다. 『노자』의 우주론에서 연역된 무위자연을 정치적 주장의 철학적 기초로 삼고 여기에 법치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는 도가가 법치를 반대했지만 자연을 숭상하는 사고가 오히려 법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었다. 한비자가 『노자』에서 자신의 법치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찾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도와 법의 결합이라는 미증유의 사고 실험이 황로학으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황로학을 역사적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학자들은 황로학을 전국시대에도 존재했다고 보는데 연원보다는 전국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유행했던 역사적 실제로서 주목할 수 있다. 황로학이 후대에 큰 인상을 남긴 것은 한나라 초기에 크게 번성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는 통일제국을 건설한 후 ‘청정무위’(淸淨無爲), ‘여민휴식’(與民休息)을 국가정책으로 삼았는데 이 말은 모두 황로학에서 나온 것이다. 통일제국을 건설하기까지 수 십년 동안 쟁투를 벌이면서 숱한 인명 손실과 자원 소비, 긴장된 생활과 악화된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휴식하면서 숨 돌릴 절대적인 필요가 있었다. 소모된 모든 것을 재건하는 일은 휴식이후의 일이었다. 황로학의 유행은 시대의 절대 요청에 잘 부응해서였다. 사마천의 『사기』 ‘여후본기’(呂后本紀)에는 유혈 가득한 궁중암투가 묘사되는데 이것만 읽어서는 한나라 초기에 안정되지 못한 정치행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사마천이 논찬에서 궁중에서의 일이었을 따름이라고 평한 것은 독자들의 오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후가 유방 사후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역으로 한대 사회가 황로학으로 충분히 휴식을 가지면서 안정된 단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이후 문제(文帝) 치세기간 절정에 이르고 혈기왕성한 무제조차 초기에는 황로학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사마천의 기록에서 읽을 수 있다.
(2) 하상공 주의 정치철학적 의미
하상공의 주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와 정치사상을 기초로 씌여진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그의 주석을 볼 차례다. 철학적 함의가 짙은 제1장을 들어본다. “도를 체득하다”[體道]라는 제목 아래 유명한 문장을 다르게 해석한 게 눈에 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에 대해 하상공 주는 이러하다. “(道可道는) 경술정교(經術政敎)의 도를 말한다. (非常道는) 스스로 그러한 장생[自然長生]의 도가 아니다. 상도(常道)는 무위(無爲)로 정신을 돌보고, 아무 일을 만들지 않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빛은 머금고 빛나는 모습을 감추며, 흔적을 없애고 일의 단서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니 도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이다.[謂經術政敎之道也. 非自然長生之道也. 常道, 當以無爲養神, 無事安民, 含光藏暉, 滅跡匿端, 不可稱道.] (名可名은) 부귀와 존영(尊榮)을 말하며 높고 탁월한 명성이다. (非常名은) 스스로 그러한 상태로 항상 있는[自然常在] 명칭이 아니다. 상명(常名)은 어린아이가 말을 못하고, 병아리가 아직 알에서 깨나오지 못하고, 빛나는 진주가 조개 안에 있으며, 아름다운 옥이 돌 사이에 있는 것과 같아야 하는 상태로, 안은 빛나더라도 밖은 우둔한 듯한 것이다.[謂富貴尊榮, 高世之名也. 非自然常在之名也. 常名, 當如嬰兒之未言, 鷄子之未分, 明珠之蚌中, 美玉處石間, 內雖昭昭, 外如愚頑.]”
주석을 따라 본문을 읽으면 왕필의 독법과 전혀 다르다. “도를 나라를 다스리고 교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장생의 도가 아니다. 이름을 부귀영예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항상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때 상도(常道)는 “無爲養神, 無事安民”이라는 주에서 보듯 경술정교(經術政敎)의 인위적이고 제도적인 장치가 아니라, 무위를 추구하면서 안민(安民)을 목표로 한다. 안민이라는 말에서 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치자, 즉 임금임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무위를 행하면서 양신(養神)하는 주체 역시 임금일 수밖에 없다. 명(名)에서도 세속의 명예를 드러내지 않고 빛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임금을 상정하고 말한다. 도와 명칭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과는 다른 읽기다.
‘순박한 기풍(혹은 풍속)’쯤으로 풀이할 수 있는 제17장 ‘순풍’(淳風) 장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아랫사람이 임금이 있는 줄 아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친밀감을 느끼고 칭찬한다. 그 다음은 두려워하고 경멸한다”[太上, 下之有之; 其次, 親之譽之, 其次, 畏之侮之.] 정도로 중립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문장을 두고 풀이한 것을 보자. “‘태상’(太上)은 태고의 이름없는 임금을 말한다. ‘하지유지’(下之有之)는 아랫사람이 위에 임금이 있는 줄 알지만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질박하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그의 덕이 볼 만하고 은혜를 칭찬할 만해 그런 까닭에 친밀히 여기고 사랑하며 칭찬한다. (그 다음은) 형법을 만들어 다스린다. ‘모지’(侮之)는 금령이 많고 번거로워 진실로 돌아갈 수 없다. 때문에 속이고 업신여긴다.”[太上, 謂太古無名之君也. 下之有之者, 下之上有君, 而不臣事, 質朴也. 其德可見, 恩惠可稱, 故親愛而譽之. 設刑法以治之. 禁多令煩, 不可歸誠, 故欺侮之.]
하상공은 태고의 이름 없는 임금을 모범으로 삼아 정치하라는 암시를 깔고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 임금이 형법을 만들어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령이 많고 괴로워 윗사람을 속이고 업신여긴다고 했다. 두려워한다[畏之]는 말을 임금이 형법을 만들어 백성을 두려워하게 만든다로 풀고, 업신여긴다[侮之]는 말은 백성이 형법을 만든 임금을 속이고 업신여긴다로 풀어 임금과 백성의 상호관계로 보았다. 형법의 가능성을 끌고 들어왔다는 게 흥미로운데 상호관계를 설정해 통치행위가 명확하게 부각되었다. 왕필의 주석과 비교해 보자. 왕필은 ‘태상’을 ‘대인’(大人)으로 풀어 임금으로 보았다[大人在上]고 할 수 있는데 현재성에 방점을 두었다. 왕필본은 “其次, 畏之; 其次, 侮之”로 기록돼 단계를 하나 더 두었는데 “畏之”에는, “다시 은혜와 사랑으로 사람에게 영을 내릴 수 없어 권위에 기댄다.”[不復能以恩仁令物, 而賴威權也.]라 했고, “모지”(侮之)는, “올바름으로 백성을 평등하게 할 수 없어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니 백성이 이것을 알고 피해 임금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때문에 ‘업신여긴다’고 했다.”[不能以正齊民, 而以智治國, 下知避之, 其令不從, 故曰侮之也.]고 풀었다. 하상공이 형법으로 본 것을 왕필은 “위권”(威權)이라는 포괄적인 표현을 썼다. 위권을 권력의 위엄과 위세로 보아 형법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노자의 무위가 법과 상치되기에 법과는 다른 인위적인 상황을 상상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 업신여긴다고 할 때도 임금이 꾀[智]를 쓰니까 백성들이 작위인줄 알고 피한다고 한 것이다. 왕필이 쓴 지(智)를 하상공은 형법으로, 금령으로 명시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왕필의 해석이 좀 더 노자에 가깝다는 것도 노자의 무위를 깊이 이해했기에 가능했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하상공의 주를 왕필의 관점에서 보면 노자의 본 모습에 순수하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왕필의 관점에서 떠나 하상공이 살았던 시대에는 오히려 형법이나 금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바꿔 말하면 하상공의 이해방식이 왕필과는 다른, 순수하지 않은 게 아니라 바로 황로학의 해석 방법임을 알 수 있다.
(3) 하상공 주의 의의
『노자』 원문을 보자. 하상공 『노자』는 “太上, 下之有之;其次, 親之譽之;其次, 畏之侮之.”라고 했다. 왕필의 『노자』 텍스트는 “太上, 下之有之;其次, 親之譽之;其次, 畏之;其次, 侮之.”로 되어 있다. 하상공의 글은 6자씩 3단락으로 2+4형식으로 일관한다. 왕필은 4단락으로 6+6+4+4형식이다. 왕필의 경우 “其次”라는 두 글자가 끼어든 것이다. 어떤 것이 읽기에 혹은 듣기에 더 리듬감을 가질까. 하상공 『노자』가 왕필의 것보다 더 오래된 텍스트다. 『노자』 원문 자체가 리듬감이 뛰어나 왕필 『노자』처럼 글자를 끼워 넣어도 리듬감이 훼손되지 않는다. 어느 쪽 원문이 좋은지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하상공의 글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삼박자의 안정감이 4박자의 단순함보다 낫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하상공 주의 가치가 왕필의 명성에 가려 진가가 과소평가되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까지 하상공 주가 천년 동안 읽혀 왔다는 사실을 일부러 강조할 이유는 없다 해도 하상공 텍스트와 주(注)가 문자학 측면에서 보든 한대(漢代) 철학을 연구한다는 면에서 보든 왕필의 그것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나 연구자가 있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문의 쏠림현상이 혹은 부질없는 학계의 헤게모니 쟁투나 아카데미즘의 보수성이 복수로 전해지는 유산의 자유로움과 다양한 해석에 장애가 된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겠다.
왕필이 『노자』를 치국의 텍스트로 읽는 태도는 하상공과 공유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왕필은 유가적 가치 ‘성지인의’(聖智仁義)를 포기할 수가 없어 유가적 가치를 공격하는 언사로 읽을 수 있는 제19장의 경우 해석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음을 앞의 왕필주를 다루는 글에서 언급했다. 하상공의 경우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문제의 19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성인을 끊어버리고 지혜를 버려라. 백성의 이익이 백배가 될 것이다. 인을 끊고 의를 버려라. 백성이 효와 자애를 회복할 것이다.”[絶聖棄智, 民利百倍;絶仁棄義, 民復孝慈.]라는 본문에, “(絶聖은) 성인이 만든 제도를 끊고 처음으로 돌아가 근원을 지키는 것이다. 오제(五帝)가 형상을 전해 주어 창힐이 글을 만들었으나 삼황(三皇)이 끈으로 매듭을 지어 문자가 없었던 것보다는 못하다. (棄智는) 지혜와 은혜를 버리고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絶仁棄義는) 인(仁)이 은혜를 보여주는 것을 끊고, 의(義)가 화려한 말을 숭상하는 것을 버리라는 말이다.”[絶聖制作, 反初守元. 五帝垂象, 蒼頡作書, 不如三皇結繩無文. 棄智惠, 反無爲. 絶仁之見恩惠, 棄義之尙華言.]
하상공은 유가의 가치를 공격하건 개의하지 않고 무위(無爲)를 기준으로 해석한다. 인의(仁義)를 드러내 보이고 과시하는 거짓스러움을 없애야 한다는 말로, 형식화된 인의라는 가치를 배격한 것이다. 앞서 “道可道, 非常道”에서 본 ‘감춘다’는 테마가 여기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노자』는 하편 즉 덕경으로 불리는 38장부터 철학적 담론보다 실천적 논의가 풍부해 한비자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몇 번 언급했다. 하상공의 『노자』 읽기는 하편에서 특징이 두드러진다. 38장의 유명한 첫 구절, “최상의 덕은 덕같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덕이 있다.”[上德不德, 是以有德]에 대해, “덕을 말한다”[論德]는 제목하에 “상덕은 태고의 이름 없는 임금을 말한다. 덕이 커서 그 이상이 없기 때문에 상덕이라 했다. 부덕은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모습[自然]을 따라 사람들의 본성과 생명을 돌보기에 그 덕이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덕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두번째 구절은) 그 덕이 천지와 합쳐져 온화한 기운이 가득 차 움직이기에 백성들이 온전할 수 있음을 말한다.”[上德, 謂太古無名號之君, 德大無上, 故言上德也. 不德者, 言其不以德敎民, 因循自然, 養人性命, 其德不見, 故言不德也. 言其德合於天地, 和氣流行, 民得以全也.]라고 했다. “是以有德”의 주체를 백성으로 본 점이 특이한데 여기서도 임금과 백성관계를 염두에 두고 통치의 관점에서 풀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덕성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정치의 이상적인 행태를 나타내는 글로 읽었는데 도가의 이상을 잘 구현한 아름다운 해석이다.
임금의 행동을 직접 논하는 63장의 경우는 어떨까. 하상공은 “임금의 자리에서”[居位]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첫 구절이 인구에 회자되는,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하라”[治大國, 若烹小鮮.]이다. 하상공은 “선(鮮)은 생선이다.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비늘을 벗기지 않고 감히 뒤적거리지 않으니 문드러질까봐 그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번거로우면 아래가 어지러워지고, 자신을 다스리는 게 번거로우면 정기가 흩어진다”[鮮, 魚也. 烹小鮮, 不去腸, 不去鱗, 不敢撓, 恐其糜也. 治國煩則下亂, 治身煩則精散.]라고 했다. 이 글의 묘미는 대국(大國)과 소선(小鮮), 즉 ‘큰 나라’와 ‘작은 생선’이라는 비교되기 어려운 대상을 병치시킨 데서 온다. 하상공은 두 가지 사물의 접점을 번거로움[煩]이란 글자로 요령 있게 캐치했는데 번거로움은 황로학의 이념에서 무위와 반대되는 글자이기에 핵심을 찌른 말이다.
『노자』에는 이와 비슷한 말로,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하라”[小國寡民]고 했다(80장). 63장에서 말한 대국은, 대국을 다스릴 경우, 혹은 대국을 다스리더라도, 정도의 말로 이해해야 할 듯한데 80장의 이 말이 노자가 상상하는 세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상공은 이 말에, “성인은 대국을 다스리더라도 작다고 생각해 검약하고 사치하지 않으며 백성이 많더라도 적은 것처럼 보아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聖人雖治大國, 猶以爲小, 儉約不奢泰, 民雖衆, 猶若寡少, 不敢勞之也.]고 했다. 왕필의 경우도 그렇지만 하상공의 경우도 대제국을 산 사람이라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상공은 이 말을 임금에게 하는 조언으로, 검약하고 백성을 수고롭게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풀었다. 통치관계를 이면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4) 하상공 주의 특징
하상공 주의 특징을 정리해 보자. 하상공 주는 왕이라는 통치자를 듣는 사람으로 상정하고 글을 이끈다. 노자는 철학적 언사와 통치의 문제, 양생에 대한 견해, 심지어 병법에 대한 논의까지 다양한 주제를 압축된 언어로 펼쳐 놓았다. 양생의 경우 개인적인 자기 수련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상공은 양생의 주체를 왕으로 명시해 양생론 역시 통치의 한 줄기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양생론의 해석에서 노장학파의 일부가 『노자』 해석을 통치론과 결합하면서 각 학파의 여러 면을 흡수했다는 혼합적인 면모를 감지할 수 있다. 『노자』 텍스트를 통일적인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담론이 모인 저수지와 같다는 의견도 존재하는데 텍스트 자체가 혼합적인 해석이 가능한 토대를 제공하기에 가능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철학적 언사의 경우도 통치(자)의 이상적인 상태, 혹은 통치의 당위성으로 독해해 치자(治者)의 거울로 작동하도록 풀이했다. 하상공의 이런 일관된 해석이 왕필의 해석과 구분되면서 독자성을 갖는 지점이 된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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