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지 않은 땅을 의지하기
희수(고전비평공간 규문)
1.달라진 출근길
벽돌이 든 것 같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혜화역에 내린다. 중얼중얼 논어의 문장을 암송한다. 자왈, 불환인지부기지 환부지인야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근심해야 한다. 논어, 학이 16장),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옹야 18장) 논어를 읽고 각 챕터마다 자신이 픽한 문장 가운데 선정된 다섯 구절을 암기하는 과제를 수행 중이다. 올해 초부터 사서와 노장을 일요일과 수요일에 공부한다. 혜화역에서 규문까지 가는 길은 춥기도 했고 덥기도 했으며 이제는 서늘해져서 제법 걷는데 기분이 좋다. 수업이 없는 날은 공부방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떠들고 밥을 해 먹으며 하루를 지낸다. 가끔 점심 먹고 성균관으로 산책도 한다. 문득 하루의 대부분을 일이 아니라 밥 먹고 공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2.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작은 병원의 약제 팀장으로 일하던 나는 2019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고 나서 수술 날짜를 잡을 때만 해도 당장 그만두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직장 안에서의 관계들이 걸리고,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자식들이 걸리고, 남편은 곧 정년인데 나까지 바로 그만두기는 어려웠다. 나의 건강을 우려하는 마음과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 생계는 어쩌나 하는 두 마음이 나와 가족들에게 동시에 있었다. 수술 후 항암 없이 방사선 치료만으로 가닥이 잡히니 마음이 좀 가벼워진 이유를 대며 다시 돌아갔다.
마치 개선장군이 귀환하기라도 것처럼, 치료를 마치고 6개월 만에 복귀한 병원에서는 함께 일해왔던 동료들이 기쁘게 맞아 주었고, 쓰나미처럼 미뤄두었던 일들도 함께 몰아쳤다. 복귀하자마자 병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인 인증 평가를 준비했고, 무사히 마쳤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일은 일대로 하며 온갖 준비로 힘들었지만, 결과가 나왔을 때는 다 같이 해냈다는 기쁨을 함께 누렸다. 그렇게 널뛰듯 바쁜 시간을 지나 조금 평온해질 즈음 갈등이 시작되었다.
인증 평가를 위해 조제실에 필요한 설비들을 들이려니 공간이 협소하여 팀장 방을 별도로 분리했는데, 소규모인 조직에서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간이 분리되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직원들이 사사롭다고 여겨 보고하지 않은 일로 타 부서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고, 일일이 보고하라는 지시는 내가 지나치게 참견하는 양상이 되어 버렸다. 직원들은 나의 요구가 과하다고 했고 나는 그 정도도 안 하겠다는 그들이 못마땅했다. 나만큼 부서 일에 신경 쓰고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라는 억울함도 한몫했다. 그들은 아무 고민 없이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인증 통과라는 큰 과제 앞에서 애써 온 노력들을 보았는데도 말이다.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웃으며 일했던 적이 언제 있었나 싶게 오만가지 인상을 쓰게 되었다. 폼은 좀 나지만 복도를 가운데 두고 동떨어진 방에서 나는 외로웠다. 그러니 약국 안에서의 관계 역시 불편하고 어색했다.

더는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니 계속하기 힘들었다. 한 사람이 아닌 거의 모든 직원의 다른 면들이 못마땅했으니, 이건 비단 그들의 문제만은 아닌 게 확실했다. 당시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모른 척하고 분리된 방에서 적당히 맞춰가며 지내야 할 텐데 그러기도 싫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입사 이후부터 사표를 내겠다고 온 동네 소문만 내고 철회한 적도 여러 번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염려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이전과 달리, 그만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두어도 당장 나와서 할 수 있는 공부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살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엔 건강, 돈, 관계로 좁혀지는 것 같다.
돌아보니 옷장에 옷은 그득했고, 살고 있는 집도 있었고, 통장의 잔고도 조금 있었다.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직장을 다니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남은 시간엔 정말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하겠다고 말했다. 결심을 밝히자, 가족들은 애썼다며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다. 마음이 정리되니 직장에서의 일들도 다르게 보였다. 그들의 애씀이 보였고, 내가 떠날 시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아팠을 때 같이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었던 이들이었다. 힘들어도 서로를 돌아보고 결과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나 혼자 오해하고 미워했던 게 부끄럽기도 했다. 한 사람씩 붙잡고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고, 그들은 제일 그럴싸한 옷을 입은 내 사진과 함께 나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글귀를 담은 플래카드까지 마련해서 떠나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대학 졸업 후 한 직장에서 35년을 일하다 지난해 퇴직한 남편과는 서로에게 재취업을 강요하지 말자고 했다. 대신 각자의 용돈과 생활에 필요한 최소의 비용을 스스로 그리고 함께 해결하자고 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영혼을 탈탈 털어가며 노동한 그와 나에게 이제는 좀 여유를 주고 싶다. 그렇게 가족들과 합의가 끝나니 신이 났다.
3. 밟지 않은 땅을 믿어야 걸을 수 있다
아직 정년이 몇 년 남은 시점이었기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은 내게 든든하게 준비가 되었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않냐며 부러워했다. 든든한 준비? 그게 만약 돈과 관련된 문제라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관한 마음의 문제라면 나는 준비가 된 것 같다. 삶이란 미리 주어진 게 아니고, 인생이란 나라는 몸을 가진 실체가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란 걸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발이 땅을 밟는 부분은 비록 좁지만 밟지 않은 땅을 믿은(恃) 후에야 잘 걸어갈 수 있다. (故足之於地也踐 雖踐 恃其所不蹍而後善博也. 장자 <잡편>, 서무귀, 김원중, 588쪽)
장자에 따르면, 우리가 걷는 데 의지하는 것은 지금 밟고 있는 땅이 아니라 밟지 않은 땅이다. 밟고 있는 땅이 아니라 밟지 않은 땅을 의지하라니. 그곳은 지금 발 딛고 있는 땅처럼 평평할까? 혹시 움푹 꺼진 웅덩이는 아닐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데 무엇을 믿으라는 말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한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또 아는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펼쳐질지.
퇴직하고픈 마음이 들 즈음, 작년에 썼던 에세이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질문했었다. 더불어 사는 존재에 대해 묻고,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반백 년 넘게 살아온 습관들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고 경직되어 있음을 수시로 확인하지만, 글을 쓰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 견고함에 금이 가기 시작함을 느낀다.
밟지 않은 땅은 아무도 알 수 없어 불확실하다. 확실한 건 걷기 위해 발을 떼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걷기 위해서는 밟을 수밖에 없다. 머물기를 희망한다면 모를까 나는 걷고 싶다. 그래서 무엇을 만날지 모르지만, 밟지 않은 땅을 의지하며 한 발을 떼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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