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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동체가양생이다]굶지 않겠어!

by 북드라망 2021. 7. 20.

굶지 않겠어!


 
신문에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라는 칼럼의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제목 참 절묘하다싶었다. 뚱뚱한 몸의 삶을 정말 리얼하게 대변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뚱뚱한 몸으로 습관처럼 저렇게 다짐하고 매번 어기고 마는 익숙함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굶지 않는’ 다이어트라는 제목을 보면 일단 클릭해본다. 굶고 자야한다는 다짐과 굶고 싶지 않은 욕망이 충돌하는 일상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딸은 둘만 되어도 천대받는다고 생각했다는 어머니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고 만족하셨다고 한다. 단 하나뿐인 딸을 곱게 키울 자신이 있었는데 점점 뚱뚱해지는 걸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간다는데 옷집에서 맞는 사이즈가 없는 곤란이 계속되자, 예쁘고 자시고 일단 큰 사이즈가 눈에 띄면 사게 되었다. 그래서 식욕이 왕성한 나를 보면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를 일삼아 하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초리를 피해 급하게 많이 먹어치우는 데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먹는데도 나의 위장은 거뜬하게 소화해 주었고 그만큼 정직하게 뚱뚱해졌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당시만 해도 ‘비만’이 그리 흔치 않던 시대였다. 그래서 대놓고 놀림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지만, 뚱뚱한 여자라는 외모는 비호감이라는 눈치는 챌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한’ 걸로 인정받기로 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 바람대로 잘 되지 않았고 식욕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상식’이 통용되고 뚱뚱한 몸은 정상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고? 나에게 공부를 잘해서 똑똑해지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비정상이라는 몸만 남았다. 다이어트를 해서라도 이 살들을 빼고 싶었다.
 

<나의 변천사 1 -2011년>


 
단식으로 경험한 변화들


첫 다이어트로 매일 강냉이와 물만 먹으며 격렬한 에어로빅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눈을 떠보니, 집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어서 이러다 죽는 건가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저녁밥부터 챙겨 먹었다. 저렇게 많이 먹으니 당연히 뚱뚱하지라는 시선을 의식하느라 남들 앞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하다보니, 혼자 있으면 억눌렀던 식욕이 폭발 했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활동가그룹에서 뚱뚱한 몸도 당당하게 드러내자며 미모 선발대회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스크랩 해놓고 도전해볼까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뚱뚱한 몸을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케이블 채널에서 뚱뚱한 여성들을 모집해서 ‘기적’에 가깝게 날씬한 몸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두가 뚱뚱한 여자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뚱뚱함에 대한 그런 해석이 좀 억울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절제한 나를 계속 자책하는 모순에 휩싸여 애꿎은 식욕만 탓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변천사 2- 2014년>


 
  공동체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읽게 된 텍스트에는 이런 나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가령 남송 유학자인 주희는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은 천리(天理)이고, 맛이 있어서 먹는 것은 사욕(私欲)”이라고 했다. 마치 주희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내리치는 죽비처럼 읽혔다. 자기 몸의 변화에 고민이 많은 친구들과 함께 단식을 해 보기로 했다. 사과와 청국장, 감잎차로 세 끼를 해결하는 해독 단식과 보식까지 한 달 정도 걸리는 단식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매일 점심에 모여서 단식을 하면서 느끼는 몸의 변화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먹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러자 맛있다는 감각을 좇아 시도 때도 없이 먹었던 습관이 보였다.
 
 한 달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연이어 백일 동안 금주를 하고 밀가루 음식까지 끊었다. 점점 턱 선이 살아났다. 예전에는 앉은뱅이책상에서 뱃살은 눌리고 다리는 저려서 세미나를 하는 시간 내내 몸을 뒤척였었다. 손발 저림도 점점 심해졌고 뒷골까지 욱신거려서 난생 처음 두통약까지 복용했었다. 단식 후 백일이 지났을 즈음엔 이런 증상들이 다 사라졌다. 이문서당 수업 중에 우샘께서 나의 몸놀림이 날렵해졌다고 놀라워하셨다.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중고품 가게에서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입고 친구들 앞에 서면 예쁘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그 차림이 내 눈에도 마음에 들었다. 단식에서 유지했던 식이요법을 일 년 쯤 지속했을 때, 내 몸은 단식 전보다 삼십 키로의 살이 빠졌다. 어머니는 당신 생전에 살 안 뺄 거다 포기했었다며 변한 나를 보고 감격하셨다. 주변의 이런 반응으로 뚱뚱한 몸 때문에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회복되는, 그래서 몸을 둘러싼 억압의 시선에서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이제 다시는 단식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변천사 3- 2016년>


 
살만 빠지면 뭐하나 자기배려도 못하면서
 
단식이후에도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아예 안 먹었다. 그러다보니 탄수화물에서 섭취했던 당분이 줄어든 탓인지 초코렛, 아이스크림 같은 단맛이 계속 당겼다. 친구들은 밀가루는 끊었다면서 초코렛만 보면 반색을 하는 나를 대놓고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초코렛으로 가는 손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단식을 하느라 현저하게 줄였던 음식의 양도 차츰차츰 늘어났다.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대는 습관으로 되돌아가면 당연히 몸무게가 늘어났고 다시 단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몸의 건강을 개선하는 만족감이 컸던 단식은 점점 살을 빼는데 만족하는 쪽으로 치우쳤다. 그렇게 해마다 한번 씩 단식으로 몸무게를 줄였다가 다시 늘렸다가가 반복되었다.
 
푸코가 쓴 『성의 역사』에 의하면 디오게네스는 육체(몸)와 영혼(인식)을 동시에 훈련시켜야 진정한 자기배려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식으로 몸이 건강해짐과 식욕이 조절되는 인식이 동시에 작동하는 데도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읽혔다. 단식을 할 때도 배가 고픈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먹는 일상이 사라진 허전함 때문인지 자꾸만 음식이 떠올랐다. 그러면 온갖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먹방에 눈이 갔다. ‘맛있는 녀석들’의 김준현이 쉬지 않고 음식을 ‘순삭’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맛이 다셔 졌다. 몸은 먹지 않으면서 인식은 먹고 있었다. 단식을 하면서 단식을 하고 있지 않는 분열이 일어났다. 몸과 인식이 분열되는 모순에서는 변화를 감당하는 힘을 축적할 수 없었다. 그러니 몸이 예전의 식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단식 이후 아침에 한 시간씩 걸어서 공동체로 출근하면서 꾸준히 걷는 습관을 들였다. 올해 초에 여섯 번째 단식을 하면서도 걸었다. 단식 삼일 차엔가 삼십 분이 넘어가자 걸음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단식 중에도 걷는 데는 별다른 지장을 느낀 적이 없었다. 체력은 점점 예전 같지 않은데 단 기간에 살을 빼겠다는 욕망으로 그 체력을 더 떨어뜨린 것이다. 살만 빼면 뭐하나. 나는 여전히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고 강요하는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몸무게가 몇 키로만 늘어나도 전전긍긍 불안해졌다. 건강을 위한 단식이라고 내 자신까지 속이면서 살빼기에 집착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몸과 화해하는 힘이 필요해
 
이러한 자각으로 요즘 내가 어떻게 먹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공동체 밥상을 차리는 일도 중지되었다. 집에서 혼자 먹은 밥상이 점점 늘어났다. 허기가 진다 싶으면 가장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음식을 찾았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나 과일, 혹은 밖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차려놓고 넷플릭스 등을 보면서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위가 더부룩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 매실 효소까지 한 잔 타 먹으면서 소화를 시켰다. 건강 회복은커녕 있는 건강도 못 챙기게 생겼다. 이럴 수는 없다!
 
일단 천천히 먹는 훈련부터 다시 시작했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스톱위치를 켜놓고 먹는 시간을 기록했다. 아무 소리도 없는 게 어색하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먹는다. 친구들과 함께 먹을 때는 의식적으로 씹는 횟수를 헤아리며 천천히 먹는데 집중했다. 조리해야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사려고 애썼다. 며칠 전에는 샐러리를 사다가 유튜브를 보고 따라서 볶음을 해 보았다. 날 것으로 먹을 때와는 다르게 올리브기름이 밴 쌉쌀한 맛이 제법 훌륭했다. 공동체 밥상을 차리면서 음식을 만드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었다는 기억이 다시 환기되었다. 그 재미가 혼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활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맛있게 천천히 먹는 또 하루의 식욕 훈련을 마쳤다.
 
왕성한 식욕은 타고난 위장이 큰 탓이라고 애꿎게 몸을 탓하기도 하고, 뚱뚱한 것이 무슨 죄냐고 어깃장을 놓으며 내 몸과 오랫동안 불화했다. 내 몸과 화해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좌충우돌했다. 공동체에 살면서 내 일상을 돌아보고 친구들과 함께 했던 단식 등으로 내 몸을 인정할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을 지속하고 싶어서 오늘 밤은 굶어야지 다짐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식욕은 굶어서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먹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그 식욕을 내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야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생긴 그대로의 나의 몸을 인정하는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질 것이다. 나의 몸과 화해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지금은 잘 먹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훈련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굶지 말고!
 

<나의 변천사 4- 2021년>

 

글_기린(에코n양생실험실 인문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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