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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동체지금만나러갑니다] <감이당> : 무식하다고 혼나는 게, 실수가 들통나는 게 좋은 사람들

by 북드라망 2023. 12. 15.

<감이당>: 무식하다고 혼나는 게, 실수가 들통나는 게 좋은 사람들


감이당에 도착하니 만나기로 한 세미나실 안에서 선생님들이 계셨다. 자세히 보니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희진 쌤, 경아 쌤, 주란 쌤 외에도 몇몇 분이 더 계신다. 유리창 너머로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세미나실 문이 열리며 나를 향한 인사와 서로를 향한 말이 엇갈려 문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서 오세요!” “우리 얘기 더 해야 돼!” “일찍 오셨네요.” “아직 얘기 다 안 끝났어.” 자못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들이라 나는 걱정 마시라고, 위층에서 쉬고 있겠다고 말씀드리고 어서 자리를 피해드렸다. 그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조금 걱정했는데, 이제 와 보니 그리 큰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인터뷰하며 이분들이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희진 쌤, 경아 쌤, 주란 쌤은 감이당의 살림을 3년째 도맡고 있는 멤버다. 세 사람이 인터뷰에서 자주 인용한 그들의 사주에 따르면 비겁이 약하고 식상이 강한 사람, 비겁만 강한 사람, 비겁과 관성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표현이 아주 많은 사람, 불(비겁) 같은 사람, 공동체적 마인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전에 인터뷰했던 다른 공동체의 살림 멤버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이들이 중장년이라는 것이다. 희진 쌤, 경아 쌤, 주란 쌤은 어떻게 감이당에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오래 남게 되었고, 또 살림 멤버까지 하게 되었을까? 

 

왼쪽부터 희진 쌤, 주란 쌤, 경아 쌤




십 년째 감이당을 지키는 세 여자
고은  세 분 다 감이당에서 공부하신 지 거의 10년이 다 되셨지요. 왔다가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남게 되셨나요?


희진  처음에는 곰쌤이 쓰신 《동의보감》 책을 소개받았어요. 제가 병원 가는 걸 싫어하거든요. 이상하게 정서적인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의보감》에서 내가 몸의 주인이니까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반했죠. 그 이듬해에 친구가 생일선물로 제가 좋아하는 저자의 새 책을 사놨다더라고요. 제가 “내가 좋아하는 저자가 누구냐” 했더니 고미숙이래요. “고미숙이 누구냐” (웃음) 저는 《동의보감》은 허준이 썼다고 생각했어요. 글쓰기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선물 받아 읽었더니 감이당에 가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원래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애들도 어리고 돈도 없었으니 엄두가 안 났죠.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어요. 고민했죠. 한 동네 사는 친정언니들이 다 박근혜를 찍었을 텐데, 언니들 만나기는 싫고. 이민을 가고 싶은데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감이당 수강료를 만들어서 여길 온 거예요. 와보니까 공부가 재밌더라고요. 많이 배운 사람이나 처음 공부하러 온 사람이나 다 똑같이 계속 혼났어요. 누구나 다 무식한 취급, 욕망덩어리 취급을 받으니까 용기가 생겼죠.


경아  저는 회사를 오래 다녔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하고 주변을 봤더니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두는 선배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비슷한 걸 느껴서 그만뒀는데, 그만둬도 할 게 없었어요. 성당 봉사도 했는데 재미가 없었고요. 어느 날 이 에너지를 나한테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고미숙이라는 이름이 생각났죠. 회사 그만두기 직전에 했던 자연 공부의 선생님이 고미숙 쌤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왔어요. 곰쌤 책 한 권도 안 읽고, 여기가 뭐 하는 데인지도 모르고요. 

 

일하느라 시사 잡지만 일주일에 6~7개씩 읽었는데, 인문학 책을 읽으려니까 잠이 왔거든요. 곰쌤이 결석만 하지 말라고, 공부는 때가 되면 한다고 하셨어요. 그건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4년을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했어요. 책은 이해를 못 해도 말을 들으면 됐으니까. 그리고 집에 가면 바로 실천할 수 있었어요. 애들, 남편, 부모님, 돈과 맺는 관계가 달라지니까 충만감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사주에 말이 세 마리인데, 여기서는 제 속도를 멈추게 해준다는 걸 알았는지 오기만 하면 몸이 편했어요. 여기서는 생각하고 외워야 하니까 속도를 낼 수가 없잖아요. 


주란  저는 사주에 관성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스무 살 때 종교도 없었는데 공동체, 영성에 꽂혀 있었어요. 그 뒤로도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고 싶어서 소소하게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애들을 대안학교 보내고 동네에서 생협 운동을 하면서 되게 재밌게 살았죠. 동네에 책 모임이있었는데 한 달에 한 권씩 읽었는데, 그때 《호모 쿵푸스》를 다 같이 읽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 흥분을 한 거에요. 그전에는 고전을 읽을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래서 동네 친구들이랑 《논어》를 읽다가 애가 조금 크고 여기에 온 거예요.

 

처음에는 애도 어리니까 1년만 해보자 하고 왔어요. 그런데 그때 곰쌤이 미국에 간다고 했었거든요. 저는 원래 저를 우선순위에서 뒤에 두는 편인데요. 이 공부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 할 수 있을 때 해야 겠는 거예요. 처음으로 우선순위를 바꿨어요. 그게 지금까지 중에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러고도 몇 년만 있다가 동네에 배운 걸 실천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정화 스님 멘토링 시간에 질문을 했더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홀가분하게 여기로 무게 중심을 딱 옮기게 됐어요.


삶으로 연결이 되는 공부

고은  올해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희진  올해는 제가 맡았던 반이 열리지 않아서 다른 반에 강사로 들어가면서 밥벌이를 했어요. 안 열린 반의 수업은 오전에 《홍루몽》을 읽고 오후에 《천 개의 고원》을 읽는 컨셉이었어요. 한 학기에 《홍루몽》을 3번 읽는 걸 목표로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홍루몽》을 가지고 3년 동안 책을 썼거든요.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 북드라망, 2021) 이 책을 통해서 주역을 공부하면 좋고, 양명학, 동양철학도 같이 공부하기 다 좋아요. 꺼낼 주제가 많아요. 《홍루몽》에는 여자들이 많이 나오고, 남성을 중심으로 한 메이저 정치가 아니라 규방을 중심으로 한 마이너 정치 이야기고, 남자 주인공도 여성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인생에 대한 정수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서 《천 개의 고원》과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죠. 올해는 톨스토이로 글을 써보고 있어요.


경아  지금은 ‘화요 대중지성’에서 담임을 맡고 있고요. 감이당 공부는 9년째고 살림 멤버로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주력으로 공부하는 건 토마스 머튼이라고, 20세기 카톨릭의 영적 스승이에요. 제가 성당을 오래 다녔었거든요. 그런데 감이당의 공부는 대부분 동양 철학이고 서양 철학을 하더라도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 기독교에 비판적이잖아요. 그걸 배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예수님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분은 일반적인 제도 기독교와 다르게 자기를 비우고 에고를 버리라고 하세요. 또 다른 종교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하시고요.


주란 제가 옆에서 증언을 해드리면, 그전에 하던 공부는 경아 쌤 안에 있던 걸 부정하는 방식이었잖아요. 그러다 제대로 된 스승을 발견하고 나서는 눈물을 흘렸어요. 왜 그걸 빼놓고 얘기해. (웃음) 진짜 인연이 있나 보다 싶었거든요. 딱 맞아요.


경아 곰 쌤이 추천해 주셨을 때 마침 제가 그걸 읽고 있었어요. 이민 가시는 분이 책을 여러 권 주셨는데, 그중 제일 얇아서 들고 다녔거든요. 너무 좋았어요. 이분이 굉장히 열정적이에요. 제가 병화인데, 저랑 기질적으로 닮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주란  ‘목요 주역 스쿨’이라고 왕초보 주역반의 담임을 하고 있어요. 주역과 불교가 제가 주로 하는 공부예요. 예전부터 불교에 관심은 있었는데, 그때 알고 있었던 건 아마 선불교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감이당 세미나에서 불경을 실제로 처음 보고 매료됐어요. 초기 불경을 읽었거든요. 그건 이야기에 가깝잖아요. 그때 내 공부의 가장 큰 방향은 불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부처님의 빅 팬이 됐어요. 


불교와 주역 공부는 감이당의 공통 언어에요. 주역은 예전에 한 주에 한 괘씩 공부했어요. 그때 곰 쌤도 같이 배우셨는데, 곰 쌤까지 해서 다같이 시험을 다같이 봤어요. 외워서 쓴 다음에 옆에 사람이랑 바꿔서 채점했죠. 저는 이 방식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주역 공부가 못 왔을 거예요. 외우고 나면 그 말들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 안에서 이렇게 만나고 저렇게 만나면서 삶으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위에서부터 희진 쌤, 주란 쌤, 경아 쌤 책장

 

 

실수가 들통나면 배움이 일어나는 곳

고은  살림 멤버로 세 분이 함께하신 지 3년이 되셨다고요. 어떻게 이렇게 꾸려지게 된 거예요?


주란  모르죠. 그냥 이렇게 된 거예요. 곰쌤이 그러셨어요. “할래? 안 할 거면 지금 말해.”


희진  저희는 “할래?” 그러면 해요. 고민하는 척 좀 하다가요. (웃음)


주란  뭔지 잘 모르면서 하죠. 내가 잘하든 못하든 어쨌든 공부가 되겠구나. 그런 경험이 몇 년 쌓이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책 보는 것보다 이런 게 더 공부가 되거든요. 마음 쓰는 법, 돈 쓰는 법, 사람 보는 법, 그런 거 하나하나를 살림하고 강좌 열면서 배우는 거예요.


경아  이렇게 관계 안에서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배우니까 책을 봐도 다르게 보게 되고, 글 쓰면서 자기를 보는 데도 도움이 되죠. 책에는 갈등 같은 건 잘 없잖아요.


주란  살림을 한다는 건 사실은 혼나는 일이에요. 어딘가 구멍이 나고, 잘못 생각하고 있고, 놓치고 있는데 그걸 계속 들키는 과정이거든요. 그게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 중 핵심인 것 같아요. 밖에서는 실수를 안 하려고 하는데, 여기서는 실수가 드러나도 ‘그래서 배웠다’고 생각하게 돼요. 혼내는 분들은 힘드실 테니까 좀 죄송해서 그렇지 (웃음) 우리는 배운다는 생각이에요. 


경아  덕분에 배운 거죠. 그리고 셋이니까 한 사람이 혼나면 둘이 배워요.


희진  맞아요. 혼나는 사람은 사실 그 당시에 ‘배워서 좋다’ 이러지 않거든요. 약간 억울하고, 선생님이 너무 화내시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저러면 안 되는구나.’ 그리고 선생님을 걱정하죠. 혼난 사람은 걱정 안 해요. ‘저 말 들었어야 돼.’ 하죠. (웃음)


주란  뭐 때문에 혼났는지 서로 되게 자세하게 얘기해줘요. 그래야 배우니까요. 그게 진짜 좋아요.


희진  여기서 혼나면서 느낀 특이한 지점이 뭐냐면요, 뭘 모르고 있으면 혼나는 거예요. 정보에서 소외돼 있으면요. 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무슨 특식이 있는지 같은 걸 모르고 있으면 혼나요. 예전에 사건이 정말 매일 있었을 때는, 아침에 나오면 가방 놔두고 모여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듣고 그날 할 일을 해요. 


경아  공동체가 돌아가는 걸 모르면 안 되니까요. 근데 그렇게 들어도 못 듣는 게 또 있어요. 공유해야지 뭘 하더라도 마음이 맞고, 지금 어디서 뭐가 어긋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주란  그래서 오다가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계속 모여서 얘기를 해줘요.


희진  공동체에 처음 접속하신 분들은 정보를 알아야 된다고 말씀드리면 자꾸 회의하려고 해요. 회의하고, 수업만 듣고, 자기 할 일만 하고 가려고 하는데요. 곰 쌤은 그런 걸 통해서 정보가 오가는 게 아니라고 하시거든요. 그냥 밥 먹고 산책하고 하면서 공통 감각을 키워야 되는 거예요. 여기에 자기 공부를 하러 오면 여기가 독서실이냐고 혼이 나거든요. 물론 공부만 안 해도 혼나지만요. (웃음)

 



인터뷰에 앞서 선생님들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한 시간 반 안에 이야기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자 말에 말을 보태며, 말이 말을 부르며 두 시간을 꽉 채우고도 훌쩍 넘을 기세로 이어졌다. 특히 감이당 살림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세 선생님의 호흡이 순식간에 빨라졌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변주되며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 이야기 끝에서 세 사람은 이 셋의 조합이 좋다고 했다. 서로 너무 다르다고, 다르기 때문에 다른 지점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지는 길에 선생님들이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하겠다고, 원하는 걸 골라가라고 하셨다. 나는 서가에 꽂힌 책을 훑어보다가 세 분이 사주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래서 북드라망의 근간인 《간지서당》을 골랐다. 혹시 나도 《간지서당》을 읽으면 그렇게 다른 데도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살림을, 그러니까 공동체를 꾸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_김고은(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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