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 자란다, 배운다
― 모든 인간은 ‘호모 쿵푸스’다 _ 엄마편
눈 깜짝할 새에 매트 위 저쪽 끝에 옮겨 놓았던 딸이 이쪽 편 끝에 있는 식탁 아래에 와서 고개를 들고 씩 웃는다. 아직 정식으로(?) 팔다리를 들어서 기지 못하고, 배를 바닥에 붙인 포복 자세로―마치 군인들이 적진 침투 훈련이라도 하는 듯한 그런 자세로―기는데도 전광석화와도 같다. 하, 이제 200일을 갓 넘겼을 뿐인데…. 태어나 먹고(빨고), 자고, 싸고, 울고―이 네 가지만 할 줄 알던 아기가 그 200일 동안 습득한 배움은,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다. 누웠던 자리에서 옆으로 살짝 돌리지도 못하던 몸뚱이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알고는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생명의 ‘본능’에 관련된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아기를 매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데에. 아니다. ‘배워야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배우는 존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배워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존재 자체가 곧 ‘배움’과 분리되지 않는 존재. 호모 쿵푸스다(‘호모 쿵푸스’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를 보시길).
내게 먼저 눈에 띈 딸의 노력 분야는 그녀의 손과 팔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신생아는 팔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제멋대로 휘둘리는 팔을 꼭 싸매줄 속싸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심지어 팔을 몸에 꼭 붙여 싸매 주어야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는 아기가 신생아를 벗어날 무렵쯤부터 낮에는 딸의 팔을 풀어주었다. 그러면 제멋대로 휘둘리는 팔은 이따금 딸의 머리 쪽으로 가서 머리카락이 자기 주먹에 걸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자기 손에 자기 머리채를 잡힌 딸은 ‘앵앵’ 운다. 그러기를 하루에도 몇 번. 또 바운서에 앉혀 놓으면 주먹을 휘두르며 입 쪽으로 가져가려 애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먹을 입으로 가져가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입 주변부만 훑다가 어쩌다 입에 가져가면 할짝할짝 신나게 핥아댔다.
뒤집기는 또 어땠던가. 몸을 들썩들썩 기우뚱 기우뚱 옆으로 세워 보는 데만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어느새 몸을 들썩이며 옆으로 세우려 애쓰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그로부터 2주쯤 뒤에 뒤집기에 성공했다. 그 2주 동안 하루에 수십 번을 들썩였다. 아주 간단히 수치로 환산해 보면, 하루에 50번씩만 들썩였다고 하고, 그것을 딱 2주 동안만 했다고 해도 700번이다. 이건 그냥 최소한의 추산임에도 700번이다.
목과 등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기까지는 또 어떠했으며, 주먹을 펴고 손가락을 입에 넣기까지는 또 어땠던가. 그리고 또 가장 큰 장벽 같았던 ‘전진’, 몸을 옮겨 가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모두 최소 수백 번, 1천 번은 족히 넘는 연습을 통해서 이루어낸 것들이다. 저것들을 배워야 아기는 생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바로 그렇기에 사는 것이 곧 자라는 것인 딸의 성장은 배움과 함께 간다. 처음엔 저 단순한 걸 하는데도 저렇게 애를 써야 하는 딸이 안쓰럽기도 했고, 지치지 않는 노력이 대견하기도 했다. 지금은… 매일매일 배우고 연습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씩 자라는 딸이 나에게 온몸으로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엄마, 당신도 이렇게 지치지 않는 배움과 연습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그 말이… 지금, 작은 벽 앞에서도 금방 쪼그라들고, 마음 같지 않은 살이에 금방 황량해지는 마음을, 한번 더 펴보고, 한번 더 축여볼 힘을 내게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지치지 않고 몸을 들썩여 마침내 뒤집기를 하던 아기 때의 마음을 내보게 된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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