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신생아 돌보기 3탄 _ 신생아의 부모도 신생아

신생아 돌보기 3탄

의 부모도 신생아



이제 이 세상에서 170여 일째 살고 있는 딸아이가 최근에 보인 변화 중에 내 눈에 가장 극적인 것은 ‘판단’ 비슷한 것이 생겼다는 점이다. 생후 두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본능이나 단순한 원시적 반사 같은 것에서 벗어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판단’이 개입되었다고 느낀 건 정말 최근의 일이다. 그러니까 엄마나 아빠를 보면 웃음을 짓고(특히 두 사람이 모두 자기 눈앞에 보이면 더 좋아하고), 물건을 보면 호기심을 갖고 손을 뻗고 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원한다’는 느낌 같은 것이 생겼다.


이를테면 딸이 요즘 가지고 노는 장난감 중에 오볼과 치발기가 있는데, 이전에는 어떤 것을 내밀든 덥썩 쥐려고 했다면(물론 그 이전에는 쥐는 동작 자체를 하지 못했다. 쥐는 것도 부단한 연습을 통해 이룬 성과다), 이제는 오볼은 쥐고 치발기는 쥐려고 하지 않는 식이다. 물론 어떤 때는 그 반대로 치발기는 주면 손을 뻗고 오볼을 주면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때그때 원하는 것이 생긴 것이다. 마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볼이 아니라 치발기요, 라고 말하듯이.


왼쪽 노란 물체부터, (일명) 갈비 치발기, 오볼(소), 오볼 딸랑이


신생아 때의 딸과 비교하면 이것은 정말 (과장을 좀 보태면) 경천동지할 변화다. 신생아는 태어나서 생후 4주(28일)까지의 아기인데, 이 시기의 아기는 먹고 자는 데 온힘을 다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숨 쉬고 먹을 수 있었지만,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호흡도 먹기도 어느 것 하나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되는 것이 없다. 


언젠가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이사’가 꼽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는 것은 설사 그것이 완벽하게 좋은 의미(그런 게 있는진 모르겠지만)에서 온 변화라 할지라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는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느 날 불현듯 180도 달라진 환경을 맞이하게 된다(그 환경을 만나기까지 좁고 긴 산도를 나오는 고통은 또 어떤가). 


폐로 호흡하고, 입으로 먹고, 배설했을 때 기저귀의 불쾌감을 호소하고 하는 세 가지 일만으로도 벅찬데, 피부에 와 닿는 감촉도 밝기도 소리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신생아 때는 알 수 없는 울음이 자주 터지는데(막 배부르게 먹었고, 기저귀도 뽀송하고, 기온도 습도도 쾌적한데 아기가 운다), 아마도 이런 감각들이 아기에게 불안감 혹은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후 4개월 이하의 영아가 주로 저녁이나 새벽에 이유 없이 발작적으로 울고 보채는 증상”인 ‘영아산통’이 주로 1~2개월에 많이 나타나고 3~4개월이 되면 잦아드는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아기를 낳기 전 육아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고 미리 숙지할 것은 숙지해 두면서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아기가 영아산통을 앓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영아산통은 치료법이 없다. (육아 관련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시간이 약이다. 아기는 고통으로 자지러지게 몇 시간 동안 우는데,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행하게도 딸은 영아산통을 겪지는 않았지만 신생아기에 밤에 잘 때 심하게 용을 쓰거나(콩알만 한 아기가 얼굴이 터져나갈 듯이 벌게지도록 용을 쓰는 걸 보면 별일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이유없이 우는 일이 잦았다. 특히 산후관리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신생아는 대부분 울다가도 안아주면 그치는데, 우리 아기는 마치 울려고 마음먹은 만큼까지는 계속 울어야겠다는 듯이 안아주어도 그치지 않았다(초반에는 순한 아기인 편이라고 하셨던 관리사님이 이런 모습을 몇 번 보시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기”라고 말씀을 바꾸셨다^^;;).


강력하게, '자기 주장' 중...



영아산통도 보기 애처로운 용쓰기도 모두 아기가 온몸으로 세상에 적응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신생아 잠투정도 어떻게 잠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칭얼대는 거라고 한다. 아기는 먹기도 자기도 모두 새로 배워 가야 하는데, 아직은 엄마‧아빠와 아기 간에 충분한 소통방법이 마련되지 못했으니, 아기는 울고 엄마‧아빠는 그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볼 뿐이다. 육아책에는 아기가 우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써 있다. 지금으로서는 아기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울음을 아기가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해 본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확실히 마음의 무거움이나 당황스러움이 좀 덜해진다. 그러면 나도 아기에게 나의 언어로 말을 걸 요량을 내보게 된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아니면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냐고, 아니면 지금 햇빛이 너무 밝게 느껴지냐고… 그저 당황한 마음으로 “왜 그러니”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갓 나온 아기에게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어떤 느낌일지를 상상하며 말을 걸어 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늘 나에게 뜻밖의 깨우침을 주기도 하고 상냥한 위로를 주기도 하는 친구가 얼마전에 보내준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오늘 강의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이 홈스쿨링을 시작했던 큰딸이 2~3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멍~때리기만을 해서, 그 시간을 함께 견디기가 힘이 드셨었다고요.

그런데 나는 어른이기는 하지만, 아빠로서의 나이는 딸과 같으니… 무언가를 더 해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친구는 내게 엄마로서의 나이는 생후 5개월이라는 것을 알려 주며 여유를 가지라고, 좀 실수해도 괜찮다고, 어느 공동체를 이끄는 목사님의 강연 이야기를 전하며 돌려서 말해 준 것이다. 그렇다. 모든 부모는 꼭 그 자녀의 나이만큼 부모로의 나이를 먹어간다. 그렇다면 신생아의 부모는 역시 부모로 막 태어난 참인 신생부모다. 아기가 세상에 온몸으로 적응해 가려 애쓰는 만큼, 부모도 아기에게 온몸으로 적응해 가는 시기―신생아기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그러니, 터무니없는 부모로서의 용쓰기도 영아산통 같은 부모산통도 기꺼이 겪어갈 일이다. 날마다 울어도 괜찮다. 3개월이 되고 4개월이 되면 환하게 웃는 법도 배워갈 테니.


끝으로 역시 친구가 전해 준 시 한편을 옮겨 놓는다.  


_엄마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

 

                                              박노해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애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 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인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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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삐꼼 2017.10.14 10:30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신기하고 따뜻한 글 매주 기다리며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