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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발영화이야기]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 2022. 12. 13.
43인의 시인들이 직접 손으로 쓴 시 모음 『시인이 시를 쓰다』 시인의 글씨와 시를 함께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집 ― 43인의 시인들 『시인이 시를 쓰다』 참 신기하게도 글씨는 그 사람의 성격을 닮아 있다. 단순히 예쁘게 쓴 글씨냐 못 쓴 글씨냐를 떠나서 크기나 획의 모양, 글씨 사이의 간격(업계 용어로 ‘자간’) 등을 보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성정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편집과정 중에 저자교정지를 받아서 보는 과정이 재미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필자들의 글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실 좀처럼 그 사람의 글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다. PC, 개인용 컴퓨터가 생활필수품이 되기 전만 해도 친한 사람이면 그 사람의 글씨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친해져도 서로의 글씨를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 2016. 7. 8.
[약선생의 도서관] 『문학이란 무엇인가』- 쓰기는 독자의 읽기를 통해 완성된다 읽기는 창조다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사르트르가 데모에 나섰다가 우연히 함께 찍힌 사진을 좋아한다. 그 사진에서는 들뢰즈가 푸코를 바라보고 있고, 사르트르가 뒤에서 그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순간이 절묘하게 잡혀 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푸코나 들뢰즈 보다, 사르트르에게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이들 젊은 세대에게 수모를 당한 사르트르의 처지가 저 알 수 없는 시선에 묻어나 보여서다.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맑스주의가 얼마간 파문을 일으킬지는 모르겠으나 기껏해야 ‘찻잔 속의 폭풍’(tempêtes qu'au bassin des enfants, ‘아이 세숫대야의 폭풍’)에 불과할거라고 좀 세게 조롱했었다. 맑스주의가 서양의 인식론적 배치(disposit.. 2016. 4. 19.
2015년 추석 연휴 마지막날 나누는 시 한편 먼저 건네 보는 다정한 말 다정다한 다정다감(多情多恨 多情多感) 박성우 내 어머니도 ‘김정자’고 내 장모님도 ‘김정자’다 내 어머니는 정읍에서 정읍으로 시집간 김정자고 내 장모님은 봉화에서 봉화로 시집간 김정자다 둘 다 산골짝에서 나서 산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다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가 아까운 터에 봉화 김정자와 함께 정읍 김정자한테로 갔다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를 위해 간고등어가 든 도톰한 보자기를 챙겼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를 위해 시금시금 무친 장아찌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 내외에게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한 방을 내주었으나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 방으로 건너갔다 혼자 자는 김정자를 위해 혼자 자지 않아도 되는 김정자가 내 장인님을 독숙하게 하고 혼자 자는 김정자 방으.. 201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