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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4

벤야민의 『문예이론』에서 베껴두었던, 글쓰기와 삶에 관한 생각들 최근에 ‘직업적 글쓰기’를 접겠다고 한 고종석은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다. 소설을 많이 쓴 편은 아니지만, 그의 단편들(『제망매』와 『엘리아의 제야』로 묶여져 있다)은 나름의 맛이 있는 좋은 작품들이었다(고 기억한다). 얼마 전 그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광고문구를 단 『해피 패밀리』 속 한민형의 다음과 같은 말은 글쓰기와 그 주체에 대해 잠시 상념에 잠기게 만들었다.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2013. 3. 15.
몸을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다르지 않다? 정치신학(政治‘神’學)을 넘어 정치신학(政治‘身’學)으로 자, 이제 본격적으로 ‘몸과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그럼 그동안 뭐한거냐?ㅡㅡ;) 일단 코너 제목인 ‘몸과 정치’에 대해서 ‘그게 뭐냐?’는 말 많이 들었다. ‘몸’과 ‘정치’ 서로 잘 안 어울리는 단어들이긴 하다. 몸이라고 하면 흔히 의학에서 다루는 분야만으로, 정치는 사회과학에서나 다루는 용어로 생각하기 쉽다. 좀 더 넓게 잡더라도 몸은 의학사나 문화사에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를 정치와 연관시켜 사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권력이 어떻게 개인의 신체를 규율화하는가, 신체의 욕망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코드화하는가의 문제는 있지만 이는 정치에서‘의’ 몸, 혹은 몸‘의’ 정치라 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것만으로 몸‘과’ 정치라고 하기에.. 2013. 1. 16.
이게 다 정치인 때문? 정치란 대체 무엇인가? 새로운 연재 가 시작됩니다. 슈미트, 푸코, 루쉰, 맑스, 홉스와 루소, 아렌트, 모스, 클라스트르 등등 많은 사상가들의 사유와 만날 수 있는 이 코너! '몸'과 '정치'라는 이 조합이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정치 뉴스에 관심이 없는 북블매도 이번 코너를 통해 호모 폴리티쿠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 격주 수요일에 여러분을 만나러 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해주실거~죠? 그럼 첫번째 글, 바로 시작합니다! 호모 폴리티쿠스를 위하여 정치? 당신의 정체를 보여줘 가끔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고 학교를 들어가다 보면 기사님께서 무슨 공부하냐고 묻곤 한다.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대답하면 바로 나오는 말. “우리나라 정치 문제 참 많지요?”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이렇고… 잘못했다가는 택시 타고 오는 내내 시달릴.. 2012. 12. 5.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을 욕망하는 욕망 들뢰즈는 일찍이 프랑스 문학은 치유불능일 정도로 지적이고 비판적이라서 그것들은 삶을 창조하기보다는 삶을 흠잡기 더 좋아한다는 로렌스의 혹평을 소개(질 들뢰즈,『디알로그』 98쪽)한 바 있다. 들뢰즈가 이를 소개한 맥락은 프랑스 문학이 갖고 있는 히스테리컬한 면모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을 끈 것은 프랑스 문학에 대한 이해보다 그것이 삶을 창조하지 않고, 삶을 흠잡는다고 하는 들뢰즈의 관점이었다. 들뢰즈는 프랑스작가들과 등장인물들 중에 히스테리 환자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증오와 사랑받으려는 욕망은 많은 반면, 사랑하고 사모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능한 상태에 있다고 덧붙였다. 아마도 들뢰즈는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물들과.. 2012.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