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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34

[쿠바이야기] 뎅기열을 공부하다 뎅기열을 공부하다 9월의 뻬스끼싸 9월 하순, 동맥 해부학을 막 끝내고 우리 모두 죽어가는 얼굴로 정맥 해부학에 돌입하던 무렵이었다. 갑자기 희소식이 들렸다. 수업을 잠시 멈추고 뻬스끼싸(Pesquisa)에 돌입하겠다고 학교가 공표했던 것이다. 뻬스끼싸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문의, 탐구, 조사를 뜻한다. 그러나 쿠바의 의대에서 ‘뻬스끼싸’를 한다는 것은 연구실에 앉아서 신체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게 아니다. 할당된 지역에 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각 가정의 건강에 대해 문의하고 보고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 지역에 전염병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뻬스끼싸란 당국의 입장에서는 학사일정을 멈추고 학생들을 동원할 만큼 전염병 사태가 심각하다는 소리다. 1학년 때도 뻬스끼싸를 몇 번 했었다. 뻬스끼싸 때문에 일.. 2020. 10. 27.
쿠바 귀환 24시간 - 물탱크와 인간다운 삶 쿠바 귀환 24시간 귀환 8월 29일 새벽. 비행기에서 내려서 숨을 들이쉬니, 내가 쿠바에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내 몸이 기억하는 쿠바의 첫 번째 흔적은 공기의 냄새다. 쿠바를 떠나면 잊어버리고 쿠바에 살면 익숙해지고 마는 이 섬나라의 짙은 체취는, ‘귀환자’가 되는 순간 콧속을 사방에서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온다. 덩달아 내가 얼마나 동떨어진 세상의 구석으로 되돌아왔는지도 실감난다. 끈적거리는 공기를 가르며 공항 택시를 타고 아바나 시가지를 달리는데, 작년 이 즈음에 했던 개고생이 영화의 장면처럼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작년 ‘아디오스, 엘람’ 편을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다. 이제는 쿠바의 교육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 2020. 8. 25.
[쿠바리포트] 신경 이야기 – 2편 신경 이야기 – 2편*신경 이야기 1편 보러가기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동물이다. 우리는 이 간단한 명제를 두고 치고받고 싸운다. 이 한 문장을 도대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화라는 나무의 곁가지에서 뻗어 나온 ‘호모 사피엔스’ 종(種)이라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 없이 ‘옳다’고 말하는 때는, 글쎄, 생물학 시험 때나 되려나. 그렇게 머리로는 외워도 가슴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패드를 블루투스 키보드에 연결해서 이 원고를 타이핑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개, 쥐, 바퀴벌레, 물고기(따위)와 동질한 존재라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딱 봐도 내가 더 우월하지 않은가? 자고로 인간이란, 이 세계를 초월하는 ‘무엇’(그것이 신이든, 진화의.. 2020. 7. 28.
[쿠바이야기] (신경 이야기 2탄이 아닌) 바라데로 이야기 (신경 이야기 2탄이 아닌) 바라데로 이야기 ‘신경 이야기 2탄’(1탄 보러가기)을 쓸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야기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지금은 대망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D-2다. 내 머릿속은 현재 별별 잡다한 지식들이 뒤죽박죽 섞인 채 불안하게 진동하고 있다.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고, 봐도 봐도 모르겠다. 태아 시절에 뇌하수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내가 알게 뭐냐. (과연 의사들은 학생 시절에 시험 보았던 내용을 아직도 계속 기억하고 있을까?) 하지만 재시험을 보는 짓만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다시 초점 잃은 눈으로 책을 편다. 시험을 본 후 화장실에서 변기 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이 모든 지식들을 내 머릿속에서 방류할 예정이다. 여하튼 이런 상태에서는 ‘신경’에 대한 사랑이 1도 ..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