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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나는 이렇게 SF를 읽었다27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내가 진짜 인간이고, 너는 아니야?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내가 진짜 인간이고, 너는 아니야? 시선에 대해 생각한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 길가에 카악 침 뱉는 자를 흘겨보는 차가운 시선, 퇴근길 정체 속에 잽싸게 끼어들기 하는 얌체를 향한 고까운 시선, 그 얌체에 대항해 끈질기게 차선을 방어하는 앞 차를 향한 경탄의 시선. ‘눈으로만 보세요’ 표지판이 붙은 마블 캐릭터 등신대 피규어를 향한 아이들의 간절한 시선, ‘덕질’ 하는 연예인을 향한 우리들의 열망어린 시선. 그리고, 또. 노숙자를 향한 냉랭한 시선,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혐오의 시선, 피부색 어두운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깔보는 시선, 장애인을 향한 공포의 시선, 조선족을 향한 배척의 시선. 종합하자면, 다른 사람들을 한층 깔아뭉개는 .. 2017. 12. 27.
존 윈덤, 『트리피드의 날』 식물원에서 트리피드를 말하다 존 윈덤, 『트리피드의 날』식물원에서 트리피드를 말하다 나의 부모님은 식물을 좋아하신다. 아주. 집 앞 마실이건 가벼운 공원소풍이건 캐리어 챙겨든 장거리여행이건 간에, 두 분과 함께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불시에 가르침이 치고 들어오고(“저기 저거, 뭔지 아니? 저건 우묵사스레피나무란다”), 느닷없는 퀴즈의 고비들을 숱하게 넘겨야하기 때문이다 (“자, 어제 저 나무 이름 가르쳐줬지? 맞춰봐.”). 그리고, 재작년 어느 날의 나처럼 이랬다가는 끝장이다. “오목이었나 볼록이었나. 아... 볼록사슬 어쩌구 칡나무?”짠, 이제 우묵사스레피나무가 보일 때마다 놀림당하기 연간회원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제주도 여행 스케줄에 부모님이 유료 식물원 방문을 꾹꾹 욱여넣으신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 2017. 12. 13.
조지 R.R. 마틴, 『샌드킹』 - 지능이 있는 것은 반드시 반격을 한다 조지 R.R. 마틴, 『샌드킹』 - 지능이 있는 것은 반드시 반격을 한다 호러는 참 신기한 장르다. 아무리 비슷한 이야기를 아무리 반복해 접해도 그 매력이 바래는 법이 없다. 마력이라고 해야 할까 요력이라고 해야 할까. 까마득히 어릴 때 이미 중독되어 교과서 밑으로 『오싹오싹 괴담선집』을 몰래 숨겨 읽고 헌책방 서가에서 『어셔 가의 몰락』을 날쌔게 움켜쥐던 그 손으로, 지금도 여전히 ‘괴담’ 게시판을 클릭하고, ‘옥수동 귀신’을 클릭하고, 영화 『그것(it)』의 예고편을 클릭하고 있는 것이다. 30분도 안 걸려 백 퍼센트 후회할 줄 사무치게 잘 알면서도! 인과응보를 확실히 실현시키는 게 호러물의 특징 아니던가. 따라서 내가 치를 후유증은 불 보듯 뻔하다. 침실에서는 불 끄고 누워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 2017. 11. 29.
『신들의 사회』 - 무엄하고도 불경스러운! 로저 젤라즈니, 『신들의 사회』 - 무엄하고도 불경스러운! 내가 생전 처음 인도에 도착했던 밤, 델리 국제공항은 정전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게 잦은 일이라고 해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항 경비원들이 구불구불한 길목에 드문드문 늘어서서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 출구를 안내해 주었다. 여정을 시작한 인천공항, 경유해온 홍콩공항과 비교하면 안 그래도 터무니없이 초라했을 시설이, 희미한 손전등 불빛 아래 더욱 괴괴해보였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은 어둠속에 얼굴만 동동 떠있었다. 그 ‘다른’ 이목구비에 새겨진 선명한 음영과 부리부리한 눈 때문에, 그들은 얼핏 무시무시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걸으며 나는 지금 제의를 위한 가면을 쓴 제관들이 이끄는 대로, 신에게.. 2017.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