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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발 영화이야기

[청량리발영화이야기]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by 북드라망 2022. 9. 26.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짐 자무시 ,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 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행복하고 유머러스한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죠. 미국에서의 생활은 왁자지껄하고 화려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뉴욕의 뒷골목에서 그들이 하는 일이란,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고 인스턴트로 끼니를 해결하고 할 일 없이 텔레비젼을 쳐다보는 것뿐입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그들의 무미건조하고 암울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무미건조한 일상. 그러나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건 아닌지. 너무 바쁜 일상보다 낯선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영화가 ‘80년대 미국’이 배경이라는 점, 그리고 당시 작가주의 영화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은 이 두 가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의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었습니다. 근데 이건 80년대 미국을 상징했던 로널드 레이건(1981~1989)이 사용했던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Let’s’만 빼고 의도적으로 갖고 온 것이죠. 게다가 레이건 대통령은 링컨을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 1위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미국 사회는 80년대에 대한 어떤 향수가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84년에 개봉한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서 드러나는 미국의 모습은 전혀 위대하지 않습니다. 첫 장면, 이민자인 에바가 공항에 도착해서 윌리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수평트래킹으로 계속 따라갑니다. 헌데 짐 자무시가 담은 뉴욕의 모습은 마치 전쟁 직후의 도시처럼 스산하고 황량할 뿐입니다. 원룸에서 에바와 윌리가 함께 지낸 열흘 동안, 그들의 일상도 도시의 모습처럼 그저 건조하고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미국이 갖는 80년의 향수는 어쩌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른 양극화와 가부장 질서의 이면을 감추어야 맡을 수 있죠.

헝가리에서 온 이민자인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윌리의 미국인 친구 에디(리차드 에드슨) 역시 경마장에 들락거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이건 그들이 지내는 ‘뉴욕’뿐만 아니라 윌리의 숙모가 살고 있는 ‘클리블랜드’도, 우연히 셋이 휴가를 떠난 ‘플로리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흑백영화라서 더 그런지, 영화 속에서 보이는 각 도시들의 모습은 어디가나 다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에디는 클리블랜드가 처음이지만 한 바퀴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윌리, 이거 웃기잖아, 우린 여기 처음인데 다 똑같은 거 같아.” 허나 어쩌면 겉모습 보다는 거기에 사는 그들의 일상이 똑같이 건조하고 암울한 것이겠지요. 어딜 가도 달라지지 않는 자신들의 삶처럼 말입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가서 느끼는 건 여기와 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미국의 영문학도였던 짐 자무시는 졸업 전에 건너 간 프랑스에서 로베르 브레송, 장 뤽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 등의 영화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엉뚱하게도 영화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죠. 그런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짐 자무시의 영화에 대해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유럽의 감수성으로 재구성했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미국의 이미지와 유럽의 감수성이라니요. 알 듯 모를 듯합니다. 그럼 <미나리>(2020)는 미국의 이미지를 한국의 감수성으로 버무린 영화일까요?
 
하나의 양식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그의 영화적 혼성요소들은, 80년대라는 시기와 맞물리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자본과 획일적인 이데올로기의 80년대를 대항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위기에 빠진 극장을 위한 구원투수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의 재현을 부정하지만 모더니즘이 갖는 정치-계몽적이고 비대중적 취향도 거부하기에 일종의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즉 할리우드 내러티브도 싫지만 그렇다고 작가주의 영화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강렬한 이미지는 겹쳐지고, 내러티브가 사라진 시간은 뒤섞이며, 여러 기법들과 장르는 혼재됩니다.  하지만 동시대에 개봉된 <천국보다 낯선>은 그에 비해 절제된 최소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우리의 삶은 뮤직비디오가 아니죠.

 

플로리다 해변에서 썬그라스도 써 보지만, 그게 전부다. 결국 세 사람은 각자의 길을 혼자 걷는다


에바는 윌리의 원룸에서 숙모가 있는 클리블랜드로 떠났지만, 뉴욕에서 보낸 열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냅니다. 그들의 일상은 일탈을 꿈꾸지만, 마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암전 화면처럼, 순간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고 계속 어둠 속에 묻혀 버립니다. 막상 뉴욕에서 클리블랜드로, 다시 플로리다로 즉흥적인 일탈 속에서도 그들의 삶은 어디서나 똑같이 건조하고 암울하고 황폐해질 뿐입니다. 그 이유가 마지막에 각자의 길로 헤어지는 것처럼 그들이 일상 속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짐 자무시의 2016년 영화 <패터슨>은 그에 대한 답을 하는 듯합니다. 넉넉한 일상 속 주인공이 세상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분신과도 같은 자신이 쓴 시가 빽빽이 적힌 노트를 우연히 강아지 마빈이 모두 찢어버리는 사건 앞에서 패터슨은 절망합니다. 강아지라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개XX야!!!  욕을 뱉는 대신에 혼잣말을 주억거릴 뿐입니다. "난 네(마빈)가 너무 싫어"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와도 떨어져 잠시 혼자 있고 싶어 합니다. 세상을 시로 노래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때 패터슨 앞에 나타난 낯선 시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윌리와 에디 그리고 에바가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조차 건조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보낸다면, 패터슨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다른 낯섦을 발견합니다. 그건 아마도 텅 빈 페이지 같은 삶의 여백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글_청량리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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