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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와 함께 하는 신화 탐구

[레비스트로스와함께하는신화탐구] 신화는 지렁이를 부르네

by 북드라망 2022. 9. 5.


신화는 지렁이를 부르네 

 


그 많던 지렁이는 어디로 갔을까?
8월 중순에 한반도에 큰비가 내렸습니다. 9월 첫째 주,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북상중입니다. 매일의 뉴스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전세계를 강타하는 기후변화입니다. 알래스카에 화재가 나고 남미에 눈이 내리는 등, 기후대 자체를 뒤흔드는 예측불가의 변화가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별은 어찌 되려는 걸까요? 이런 세상에 아이들이 크고 있다니 두렵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 한 사람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재앙인 것 같아 무력감도 듭니다. 

 

세종에 한참 비 많이 내리던 날 쓰레기 분리를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섰습니다. 지렁이 한 마리가 힘차게 비를 맞고 있었어요. 문득, 지렁이 본 지가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오는 날, 길 지렁이 피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절이 아득합니다. 그 많던 지렁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지렁이 보기 어려움은 간단한 사태가 아닙니다. 다윈은 죽기 한 해 전 지렁이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진화론의 아버지는 자신의 테라리움을 만들어 지렁이가 오물과 썩은 낙엽을 어떻게 흙으로 바꾸는지 연구했습니다. 다윈은 지렁이의 식생을 관찰했지요. 지렁이가 먹고 싸는 일이 토양과 경작지, 그리고 숲에 미치는 전체적인 영향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작물을 기르는 것은 땅입니다. 땅을 살찌우는 것은 지렁이이지요. 지렁이는 누가 키우나요? 꽃피우고 열매 이룬 뒤 죽어 떨어진 잎입니다. 다윈은 빈틈없이 살리고 죽으며 공생하는 자연 전체의 사슬을 경이의 눈으로 연구했습니다.  

 

풀로 뒤덮인 벌판을 보면서, 우리는 그 아름다움의 원천인 평탄함이 대부분 지렁이들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게 펴 놓은 덕택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떤 벌판이든 지표의 흙 전체가 몇 해 단위로 거듭 지렁이 몸통을 거쳐 왔고 앞으로도 거쳐 갈 거라고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쟁기는 사람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소중한 것에 속한다. 하지만 사실 사람이 지구에 살기 훨씬 오래 전부터 지렁이들이 땅을 규칙적으로 쟁기질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땅을 갈고 있다. 세계사에서 이 하등동물들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일을 한 동물들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다윈, 1881; 데이비드 몽고메리,『흙』, 23쪽 재인용) 

 

다윈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이해와 깨달음이 수행되어야 할 곳임을 알았습니다. 크고 작음을 가르는 기준, 전체와 부분을 가르는 기준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자리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구분되지 않지요. 다윈은 지렁이의 한 살이를 통해 우리가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관계맺으며 더 적합한 방식으로 변용하고 변용받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논증했고, 그 노력을 ‘진화’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렁이를 볼 수 없다는 사태가 심각한 것입니다. 자연 전체의 진화 사슬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싸인이니까요. 데이비드 몽고메리라는 지형학자는 흙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지는 과정을 문명화라고 보았습니다(데이비드 몽고메리,『흙』). ‘흙’은 지렁이의 활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지구의 피부입니다. 그래서 몽고메리는 지렁이가 아니라 쟁기로 대지를 갈아엎으며 이룬 인류 최고의 혁명, 신석기 혁명을 ‘생태학적 자살’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식물의 단종화도 문제지만, 잉여 생산을 위해 동물이 가축화되고 인간 자신이 노동력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어갈 때, 생명은 숨을 잃은 사물이 되지요. 지렁이를 볼 수 없는 곳은 ‘살리고 살리는 회로’가 망가진 세계입니다. 

 

 

사물의 생명력
‘사물화’란 무엇일까요? 인공장기의 활용이라든가 복제인간의 도래 같은 의학적 상황은 사람을 사물처럼 다룬다고 해서 우려를 낳습니다. 저도 앞에서 생명과 사물을 반대말처럼 다루었어요. 그런데 사물이 정말 어떤 활력도 없어 숨 죽어 있기만 할까요? 자연의 모든 것이 맞물려 있다면 생명과 사물 사이의 경계도 따로 없지 않을까요? 진화론적으로 볼 때 ‘사물’은 또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화의 세계에서 생기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소개하는 토리팡족의 신화 M272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불을 몰랐던 시절 펠레노사모라는 한 늙은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아궁이에 나무를 모아놓고 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때 그녀의 항문에서 불길이 솟아나와 나무에 불이 붙었다. 그녀는 익힌 카사바(마니옥)을 먹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카사바를 태양 열기에 넣어놓아 데워 먹었다. 한 여자아이가 늙은 여인의 비밀을 폭로했다. 그녀는 불을 나누어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녀의 팔다리를 묶어 나무 위에 걸어놓고는 그녀의 항문을 우격다짐으로 열었다. 결국 그녀는 불을 배설했고, 불은 돌 와토로 변했는데, 사람들은 이 돌을 서로 부딪칠 때 돌은 불을 배설한다.(『신화학2』, 346쪽)  

 

토리팡족은 불을 늙은 여인이라고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항문에서 뿜어나오는 불에 카사바를 익혀 먹었어요. 헉! 항문에서 물질이 터져 나와 음식을 익혀 입으로 들어가는 구조의 몸이라니! @.@ 자웅동체(雌雄同體)라든가 인수공통(人壽共通)이라든가 하는 이중체 결합모델 중에 생명과 사물이 결합된 토리팡족 불-할머니처럼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몸의 일부를 인공장기로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히프에 태양을 붙인 느낌이랄까요?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을 것 같은 신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토리팡족은 불-할머니가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할머니의 몸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이래로 인류의 옛이야기는 기술의 사적 전유를 경계했습니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을 연결하는 기술은 그 매개성 덕분에 개체의 유한성을 넘어선 잉여적이고 초월적인 힘을 낳아버립니다. 잉여와 초월은 존재의 동등성을 파괴합니다. 이것은 잉여생산을 목적으로 시작된 신석기 혁명이 결국 계급사회를 낳았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증명됩니다. 자기 몸으로 자기를 먹인다는 것을 우리 식으로 바꿔 말하면 독립이고, 자족이겠지요. 타인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자기가 뭐든 다 알아서 하는 상태이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에서 소외가 일어납니다. 토리팡족은 그런 상태를 ‘탐욕’이라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할머니는 불을 나누어주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억지로 그녀의 항문을 열어 마을 전체가 불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물질이지만 생명인 불은 오직, 나이지만 너인 관계의 장에서만 타오를 수 있습니다. 토리팡족은 높은 곳에서 홀로 멋지게 타오르는 이를 경계했습니다.  

 

 

사물화와 관련해서 목적과 수단의 문제를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신화의 세계에서 인간의 몸은 종종 목적의 수단이 됩니다. 즉 인간의 사물화인데요,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고대의 인신(人神) 개념입니다. 고대 왕국의 왕들은 자신의 노쇠와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습니다. 왕 육체의 쇠락이 왕국의 영락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왕이 병들어 눕기라도 하면 가축이 병들 것이고 농작물은 마를 것이며 사람도 질병으로 절멸하게 됩니다. 그래서 왕비와 후궁은 왕의 정력을 예의 주시하며 질병과 노화의 기색을 읽기에 바빴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든가 흰머리가 올라오면 끝입니다. 그녀들이 사랑했던 것은 왕일까요? 왕국의 힘일까요?   

 

늙어가는 왕은 공동체의 노쇠를 상징했기에 신민들은 왕의 힘이 떨어지자마자 그를 살해했습니다. 심각한 부패로 영력이 완전히 못쓰게 되기 전에 활력 넘치는 후계자에게 옮겨가야 합니다. 중앙아프리카 부뇨로 왕국에서는 왕이 중병을 앓게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관습도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자살을 감행하지 못하는 왕이 있다면 가족들이 협력을 했고요. 어떤 나라에서는 왕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자 신하들이 나서서 왕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왕이된 자는 인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도구로서 살아야 합니다. 무시무시한 운명이지요. 그가 궁극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은 인간인 자기, 늙어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기입니다. 여기서 잠깐, 왕의 사물화가 어떤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프레이저의 설명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무시무시합니다. 

 

거기에는 이교도들의 신전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사람들이 끔찍이 숭배하는 한 우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12년마다 큰 잔치를 베풀고, 그날을 축제일로 정하여 모든 이들이 신전을 참배한다. 그 신전은 광대한 영지를 가지고 있으며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아무튼 이 축제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였다. 이곳을 다스리는 왕의 통치 기간이 바로 축제일과 축제일 사이의 12년이었기 때문이다. 이 왕의 생활양식은 이렇다. 즉 12년의 세월이 지나 축제일이 되면 많은 이들이 모여 브라만에게 음식을 바치느라 엄청난 돈을 쓴다. 왕은 나무로 만든 교수대를 세우게 하고 거기에 비단 차양을 씌우도록 지시한다. 축제 당일에 왕은 장엄한 의식이 집행되고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목욕재계한 다음, 우상에게 예배를 올린 뒤 교수대에 오른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퍼렇게 날선 단도를 잡고 자신의 코와 귀, 입술, 사지 등을 차례차례 도려냈다. 이때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살점을 떼어내는데, 이윽고 다량의 출혈로 인해 실신할 때쯤 되면 마침내 자기 목을 벤다. 이런 식으로 그는 저 우상 앞에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다음 12년간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다가 우상에 대한 사랑으로 이 같은 순교를 하고자 하는 후보자는 반드시 이 처참한 의식에 참여하여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그 후보자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다.(프레이저,「24장. 신성왕의 살해」,『황금가지1』(을유문화사), 645~646쪽)

 
왕국의 영광을 위해 자기 살을 도려내야 하는 삶이 부와 명예를 거머쥔 권력자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프레이저는 살왕자 모티프를 통해 고대의 영성 개념을 분석했습니다. 위대한 영혼은 자기가 담길 그릇을 고르고 바꾸기 때문에, 영력을 체화할 뿐인 인간에게 개체적이고 자율적 삶은 불가능합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을 다 쥐고 있는 만큼 왕은 국력을 상징하는 존재로서만 살아야 하며, 언제라도 국가의 위세를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토록 극단적인 자기 부정이 감행되는 야생입니다. 

 

왕의 도구화는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의 도구화와는 다릅니다. 전자는 왕국에 속한 모든 것의 안녕을 기린다는 목적을 갖습니다. 영광의 수단인 왕은 자신의 신체를 우주적 풍요의 상징으로 바꾸어냅니다. 반면 산업사회에서 임금노동자는 사적 소유에 집중한 자본의 축적을 위해 자신을 생산라인의 부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둘 모두에서 인격은 무시되지만, 고대의 왕은 자신의 사물화를 통해 우주적 관계성을 확장하려고 했던 반면 자본주의에서의 사물화는 인간을 우주적 미아 상태로 유실시킵니다.       

  

매년 대지의 표현에 일어나는 변화의 위대한 장관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그처럼 광대하고 경이로운 변화의 원인에 대해 사색하도록 부추겼을 것이다. 거기서 인간의 호기심은 온갖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원시인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자연의 생명과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강물을 얼게 하고 대지의 식물들을 시들게 하는 자연의 과정이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멸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 발전의 어떤 단계에 있어 위협적인 재난을 피하는 수단이 바로 자기 손 안에 있으며, 주술을 통해 계절의 이행을 더 일찍 앞당기거나 혹은 늦출 수 있다고 여긴 듯싶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를 내리게 하고 태양을 빛나게 하며, 또는 가축을 증식하고 토지의 수확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고 주문을 외웠던 것이다.(프레이저,『황금가지 1』, 앞의 책, 756쪽)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을 넘어서 
사물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가 이토록 견고하게 구분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일까요?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생명과 사물의 이분법은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이기도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사와 비-인간사인 사회와 자연의 이분법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를 인간만의 활동영역으로 보고 자연을 사회 법칙과 무관한 과학 법칙 일반이 무차별적으로 통용되는 세계로 파악하는 요즘에 그렇습니다. 

 

부뤼노 라투르에 따르면 서양의 17세기에 대지에 대한 근원적 사랑을 찌그러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결벽증적인 구획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을 단지 이용가능한 대상으로 사물화시켜버렸습니다(『우리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라투르가 꼽은 두 사건은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의 화학 실험과 홉스(Thomas Hobbs; 1588~1679)의 정치학입니다. 보일은 실험실에서 ‘재현(표상)’ 개념을 만들었고, 홉스는 사회 안에서 인간의 주권대리자인 ‘대표’ 개념을 발명했습다. 전자는 인공적 척도이고 여기에는 개개의 인간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보일이 만든 것은 자연의 힘과 매커니즘을 잴 수 있는 도구이고, 그 도구에 기댄 진리였습니다. 후자는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는 명목하에 하나의 얼굴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 인간은 자신을 대표자로 만들어준 개개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능력을 보유하지요. 

 

라투르는 초월성과 내재성의 차원에서 홉스와 보일의 논리가 어떻게 모순적인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초월성이란 자연과 사회 각각을 지배하는 논리가 자연과 사회 그 바깥에 있다는 의미이고요, 내재적이라 함은 그 논리가 자연 안에 사회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라투르는 보일과 홉스가 펼친 논의에 깔린 논리를 ‘헌법(constitution)’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사법에서 말하는 헌법 개념보다는 큰 것으로 ‘구성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표의 왼쪽은 보일의 실험이 품고 있었던 전제들입니다. 오른쪽은 홉스의 정치학의 전제들이고요. 이 둘을 순서대로 붙여 놓았을 때, 각각의 전제들이 갖는 모순과 억지가 드러납니다. 

     

첫 번째 역설의 단계에서 보일은 자연은 초월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그는 법칙을 알기 위해서는 인위적 조작체인 실험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에 대한 두 개의 설명이 모순을 일으키게 됩니다. 전제는 초월적이라고 해놓고, 실험을 통해서는 그 내재성을 입증하려 하니까요. 

 

다음으로 홉스의 모순을 살펴보겠습니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만인에 대해 만인이 투쟁한다고 말했지요. 그런 인간들은 서로 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리바이어던’을 주권자로 내세우게 됩니다. 여기서 전제는 사회란 인간 개개인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내재적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옹립된 ‘리바이어던’은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강력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월적이 됩니다. 

 

보일에 의한 자연법칙과 홉스에 의한 사회법칙은 각각의 층위 상태에서 서로 모순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실험실 역시 특정한 인간에 의한 조작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보일의 실린더를 제대로 조작하려고 엄청 고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홉스의 리바이어던 역시 인간만의 작품인 것 같지만, 인간만의 그 사회 안으로 비-인간들이 늘 난입한다는 것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비-인간이란 투표권을 가지지 않은 존재를 지칭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사회법은 늘 사회 구성원들의 존재를 규정하면서 만들어지기에 규정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회와 비-사회가 생산됩니다. 이렇게 비-사회적 존재로 생산된 것들은 사회 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19세기로 예를 들면, 노예, 흑인, 여성 등이 비-사회적 존재였지요. 근대는 이들 비-인간들의 인권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은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를 개진했고 그에 맞추어 사회는 재구성되어 갔습니다. 인간만의 사회란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 자체가 비-인간과의 공조 속에서 출현합니다. 

 

이런 모순이 늘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과 사회가 이분법적으로 정확하게 나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라투르는 자연과학의 실험은 과학자 한 사람에 의해서 발명된 사건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사실 17세기에 보일과 홉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신과 왕권의 문제, 영혼과 천사의 문제, 물질의 속성, 자연 탐구법, 과학이나 정치적 논의의 한계 같은 사회적 힘과 과학적 힘을 함께 다루었습니다. 그랬지만 이후 논의의 모순은 자연과 사회의 견고한 구분에 가려 은폐되고 말았습니다.  

 


고기에 미치면 고기가 되리니
우리 시대에는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이 너무나 철저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지렁이의 일은 지렁이의 일로,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로 파악해야 한다는 상식이 팽배합니다. 비오는 날 달팽이쯤 보고 살지 않아도 괜찮다며 뉴스 속 지구 재앙을 관조하지요. 다윈이라면 발밑의 지렁이를 찾아 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했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다윈이라면 타카나족의 신화 ‘고기에 미친 여인’을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①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사냥 실력은 형편없었고, 할 수 없었던 여인은 스스로 사슴을 쫓았다. 사슴은 사람이 변한 것이었고, 그는 자신을 쫓아오는 여인에게 청혼했다. 남자는 그녀가 결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그녀는 사슴-남자와 결혼하기를 포기하고 추적만 했다. 

② 여자는 자신도 몰랐지만 3일이 아니라 3년 째 사냥만 하고 있었다. 사슴-인간은 뿔로 그녀의 몸을 뚫어버렸다. 버려진 그녀의 시체는 가죽을 제외하고 표범이 먹었다. 그녀의 가죽은 빽빽하게 털이 난 덤불숲의 늪식물로 변했고, 머리카락 속의 서캐는 야생벼가 되었고, 골수에서는 흰개미와 흰개미집이 나타났다. 

③ 오만한 아내를 비웃었던 남편은 그녀를 찾았다. 도중에 먹이를 쫓는 새들을 만나 아내의 죽음에 대해 들었다. 새들은 이제부터 인간들은 늪식물로 둘러싸인 흰개미집을 지날 때마다 흰개미의 휘파람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새들은 말렸지만 남편은 계속 아내를 찾아다녔고 결국 큰 강가에서 물에 휩쓸려 진흙에 파묻혀 죽었다. 그의 시체에서 수컷과 암컷 두 마리의 카피바라(스컹크과)가 생겨났다. 스컹크는 엄청난 냄새를 풍겼다.(『신화학2』, 478쪽) 


탐욕스런 여인은 표범의 일부가 되고 늪식물이 되고 야생벼가 되고 흰개미가 됩니다. 오만한 여인이 사슴-남자와 결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먹은 고기가 남편의 가족이라는 것을, 자기가 낳을 사슴-아기는 육식에 빠진 인간의 먹이가 될 것을 깨닫고 이전까지의 탐식을 깊이 반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슴과의 결혼을 거절했습니다. 고기에 대한 탐식은 생명력에 대한 독점욕을 뜻하지요. 신화는 우리 각자의 왕성한 식욕이 쓰일 곳은 오직 만물을 살리는 일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대칭성을 강조합니다. 대칭적이라 함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라면 자연에도 적용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지렁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이라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렁이의 섭생과 인간의 섭생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맞물리며 온 삶을 펼치기에 공존의 양식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타인이란 ‘내가 살아볼 수도 있을 그 삶을 사는 자’라고 정의했을 때(『슬픈 열대』), 그 타인이 인간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분할불가능하게 만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수단이 되기에, 인간이 지렁이의 먹이라는 사실은 놓칠 수 없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지렁이를 찾으러 나갑시다!   

 


 글 _ 오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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