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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1) _『손자』라는 책

by 북드라망 2021. 8. 6.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1)

 —  『손자』라는 책


병법의 대명사, 『손자병법』

병법책은 한 가지가 아니다. 『손빈병법』, 『오자병법』, 『울료자』(尉繚子, 위료자로도 읽는다),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이위공이 당 태종의 군사관련 질문에 대답한 책), 『사마법』(司馬法), 『육도』(六韜), 『삼략』(三略) 등등. 이 병법서들은 모두 중요하고 후대에 연구가 적지 않으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병법서 가운데 『손자병법』이 가장 중요하다. 왜 그럴까.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 구양수는, “군사는 끝없음을 기[奇. 기奇는 중요한 개념이다. 후술하기로 한다]로 삼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하다”[兵以不窮爲奇, 宜其說者之多. 「손자후서孫子後序」]라고 했다. 끝없이 변하는 기발함을 병법의 핵심으로 본 진술이다. 구양수의 말은 『손자』에 주석자[其說者]가 많은 것을 가리킨다. 춘추시대에 이미 13편으로 온전한 텍스트로 존재했던 『손자』는(사마천 『사기』史記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보이는 말이다) 한나라 때는 82편이라고 기록된다(『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사마천이 본 13편은 한나라 이전 기록일 텐데 『한서』를 편찬할 시기에는 이본들이 무수히 출현했다는 말이다. 한나라 이후 송나라 때까지 생각해 보면 주석서도 많았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구양수의 발언은 엄밀한 판본대조나 고증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통찰력 있는 견해다. 『손자』에는 그만큼 파고들 여지가 많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구양수의 말은 『손자』의 주석서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발언을 『손자』 주석서에 한정하지 않고 병서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 글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중국역사에 비춰보면 『손자』 이외에 많은 병법서가 씌어졌을 거라는 예상은 무리도 아니고 위에 언급한 책 이외에도 병법서는 다양했다. 병법은 경험이건 이론이건 여러 사람이 쓸 수 있고 많은 저자들이 여러 갈래로 병법서를 저술했다. 위에 언급한 저서를 중심으로 무경7서(武經七書)라 일컫는 일군의 저서들만 떠올려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손자


유독 손자의 병법서만을 병법의 대명사처럼 칭하면서 손자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서』에는 병서를 넷으로 분류해 1)병권모(兵權謀), 2)병형세(兵形勢), 3)병음양(兵陰陽), 4)병기교(兵技巧) 순서로 나누고 첫 번째로 “『오손자병법』(吳孫子兵法) 82편, 도(圖)9권(잔殘)”이라 하고 다음으로 “『제(齊)손자병법』 89편, 도4권(망亡)” 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한나라 때 『손자』라는 제목이 아니라 『손자병법』이라는 제목으로 확정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병법서의 수위(首位)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른 시기부터 손자의 책이 병법서의 으뜸으로 추앙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모편에는 13가(家), 형세에는 11가(家), 음양에는 16가(家), 기교에는 53가(家)가 목록에 올라 있다. 권모편에 수록된 일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책들이 후세에 거의 전해지지 않는 걸 보면 손자의 책이 가장 먼저 꼽히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청나라 때 저명한 학자 손성연(孫星衍)은, “병가에서는 손자만이 가장 오래된[最古] 책이라 한다”[兵家言唯孫子十三篇最古.]라고 하면서, “옛 사람들의 학문은 전통을 이어받는데 손자의 학문을 두고 황제(黃帝, 병법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전설에는 『이법』[李法]을 저술했다고 전해진다)에서 직접 나왔기 때문에 그 책은 삼재(天·地·人)와 오행을 통하며 인의에 근본을 두고 권모로 보충했다고 하는데 설명은 매우 정확하다”[古人學有所受, 孫子之學或即出於黃帝, 故其書通三才·五行, 本之仁義, 佐以權謀. 其說甚正]라고 논평하고, “옛날 명장들은 『손자』를 쓰면 전쟁에서 이기고 『손자』와 어긋나면 패했다고 하면서 병법의 고전[兵經]이라 칭했으니 유교의 육예에 견주어도 진정 부끄럽지 않다”[古之名將, 用之則勝, 違之則敗, 稱爲兵經, 比於六藝, 良不媿也]고 말했다. 손성연이 『손자』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두 가지다. 역사적으로 황제(黃帝)로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전통을 계승했고 실전에서 실패가 없었다는 것. 한 마디로 이론과 실천이 완벽하다는 말이다. 손성연은 『손자십가주』(孫子十家注)를 펴낸 학자로 우리가 현재 통용되는 『손자병법』을 볼 수 있도록 가장 좋은 판본의 책을 출판한 사람이니 공로가 크다. 특히 『손자』의 주석 중 가장 뛰어나다고 일컬어지는 『위무제손자주』(魏武帝孫子注)를 출판했다. 『위무제손자주』는 원전이 실전된 상태인데 손성연의 책을 통해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안목은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의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의례적인 말에 혹해서 눈길을 줄 필요 없다. 핵심은 권모에 있다. 병법은 권모에 대한 책이고 권모는 한마디로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예문지」에서 『손자병법』을 권모편에 분류한 것을 상기해 보라. 인의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다. 인의는 상대하지 않는 대담함, 이것이 병법서의 특징이고 『손자』의 핵심이다.) 손성연의 평가를 보면 전통시대 사람들이 『손자』를 높이 쳤던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다. 손성연은 이 말을 책임질 수 있을까. 손성연의 말에 동의한다면 이론과 실천에서 뛰어난 점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이 글의 임무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낼 수만도 없다. 『손자』가 전통시대에 유명한 책이고 고전이라 칭해졌다면 그만한 가치를 많은 사람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그 경로를 따라 『손자』에 대한 주석서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책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군사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철학적인 공헌 쪽에 무게를 둔다. 손자의 사고를 따라간다면 군사와 철학은 다른 세계가 아니다. 손자는 군사운용의 기(奇)를 추구하면서 실전에 운용되는 현실적인 기술(art)을 통해 그에 따라 다른 개념을 만들어 재정의하고 융통성 있게 사용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용병의 구체성이 중국고전 특유의 ‘개념적 유동성’이라 할 수 있는 추상의 세계에까지 진입하는 것을 손자에게서 볼 수 있다. 내가 매혹된 지점이 여기다. 군사의 구체적인 기동성이 추상적인 개념의 유동성으로 변모하는 곳. 중국 고대의 고전을 읽을 때 부딪치는 난점 가운데 하나는 동일한 개념이 끊임없이 변하고 유동하며 응용되고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같은 글자를 쓰면서 개념어였다가 어느 때는 서술어로 스위치 하는가 하면 개념어가 고정되어 차곡차곡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건축적 논리가 아니라 방사형으로 변해 독서를 어렵게 한다. 손에 잡았다 싶으면 바로 다른 형태로 변용하고 이동하는 글쓰기라니. 당혹감. 『손자』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그에 대한 해답을 얻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었다. 


서양에서의 『손자』 번역

먼저 『손자』가 서양에서는 어떠한지 영어로 번역된 책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손자병법』의 최초 서양어 번역은 프랑스어로 알려져 있다. 예수회 선교사인 아미오(J.J. Marie Amiot, 한자이름은 錢德明)의 번역으로 18세기 중반 이후, 나폴레옹 전쟁 전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영어 번역은 늦어서 중국의 마오쩌둥이 전쟁에 승리한 이후에 관심을 받게 된다. 미국은 장제스를 지원했음에도 마오쩌둥에게 패배했는데 이는 미국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중국의 상실은 훗날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광신적 마녀사냥에 한 빌미가 되는데 이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전문가들 대부분이 행정부를 떠나면서 동아시아 정책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 다른 한편 군부에서는 중국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가운데 『손자병법』이 시야에 들어온다. 『손자병법』의 부상은 정확히 마오쩌둥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오쩌둥이 능란하게 구사했던 새로운 전투방식―게릴라전―의 바탕에는 『손자병법』이 존재했다는 정보와 판단 때문이었다. 번역자도 해군제독을 지낸 새뮤엘 그리피스(Samuel B. Griffth)라는 게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피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국군사사(military history of China)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상당한 식견을 갖춘 전문가였다. 『손자병법』은 The Art of War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는데 『손자병법』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말이다. 전쟁의 기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영어에 The Art of ~하는 식의 제목은 일반적인데 art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 기원을 둔 단어로, 테크네(techne)라는 말은 한 갈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로 변하고, 다른 한 갈래는 아트(art)로 변한다. 최첨단 기술(technology)이건 예술이라는 말로 흔히 번역하는 art건 모두 숙련된 기술·기예를 의미하는 techne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라는 말은 예술은 영원하다는 의미로 흔히 쓰이지만, 그리스어 문맥에서 보면 배워야 할 기술(techne)이 너무 많아 그걸 다 배우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말로 볼 수 있다. 여하간 서양사람들에게 병법은 전쟁의 기술로 이해됐고 『손자』의 원의를 나름대로 소화한 말이라 하겠다. 영어 번역은 20세기 초에 영국에서 이미 번역이 나와 있었다. 주석이 붙은 전문적인 번역서인데도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그리피스는 영국사람 L. 자일스(Lionel Giles)의 앞선 번역을 알고 있었고 도움을 받았지만 『손자병법』이 널리 알려진 것은 그리피스의 번역을 통해서였다. 그리피스의 번역에는 영국의 유명한 전략가 리들 하트(B. H. Liddell Hart)가 74쪽에 달하는 긴 서문을 썼는데 가치가 높은 글이라 『손자병법』의 성가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아마존 바로가기)

 

그리피스 번역 영문판  『손자병법』

 


구미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동양의 책을 들라면 『노자』와 『손자』일 것이다. (물론 공자의 논어도 포함되지만.) 『논어』가 1만 5천자 가량인데 비해 『노자』는 5천자, 『손자』는 6천자 정도다. 양으로 볼 때 『손자』는 『노자』와 함께 만만한(?) 책이다. 언어도 함축적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크니 응용범위도 임의로 정해 써먹을 수 있다. 처세술이나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오랜 역사를 견뎌왔다는 고전의 아우라를 품었지, 초기 번역은 시대적 절박함이랄까 번역 이유도 선명해 당대적 호소력을 지녔지, 일상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의 언사들이 곳곳에 박혀 있는데 신비롭고 간결한 언어 속에 잠겨 있어 실용성에서도 뒤지지 않으니 여러모로 탐낼 만하고 당연히 번역서가 많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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